옳고 그름을 따지는 무수한 선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이유는 몇 가지 혹은 몇십 가지로 나뉠 테지만, 문장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태초부터 인간사회에 섞여 들어간 우리는 다른 인간 없는 삶을 모른다. 의도하든 그렇지 않았든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산다.
시작은 아주 오래전, 태초의 인간이라 불리는 종족들이 육지를 누빌 때부터다. 당시 일생의 목표는 생존이었다. 생존 위협을 피하기 위해 인간은 똘똘 뭉쳤다. 씨족, 부족사회를 거쳐 도시와 국가가 탄생하고 오늘까지 왔다. 익히 알고 있는 내용에 간과하기 쉬운 사실 하나를 덧붙여 본다.
인간은 선을 그었다. 나와 닮은 우리 편, 동족. 나와 다른 상대 편, 적. 같은 부류는 포용하고 다른 부류는 배척했다. 안전을 위하여.
시계를 빠르게 돌려본다. 문명의 탄생과 혁명, 기술의 발전 등으로 인간 사회는 전보다 풍족하다. 인간이라는 종족도 진화했을까?
생존은 더 이상 생의 목표가 아니다. 살아있음은 기본 전제로 깔고, 그 이상의 가치를 갈구한다. 이제 생존을 위한 선 긋기는 의미가 없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에는 무수한 선이 있다. 좋다/싫다, 괜찮다/나쁘다, 멋지다/별로다. 전자에 해당하지 못한 이들은 배척한다. 이상하고도 싸하다는 불분명한 근거를 들고서.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떠올려보라. 사람들의 시선은 어디를 향해 있는가? 아마 모를 것이다. 핸드폰에 고정된 당신의 눈이 다른 방향으로 향했을 리 없다. 하지만 보지 않아도 알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핸드폰에 푹 빠져 있었으리라는 것을.
몇 년 새 관찰형 예능, 브이로그, SNS 등이 유행하면서 다른 인간의 삶을 엿볼 기회가 늘었다. 그리고 댓글란에 한 마디씩 얹는다. 태도, 자세, 말투, 옷차림, 습관, 외모 등 영상에서 보이는 모든 것을 체크한다.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정해진 기준을 근거로 옳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나눈다. 기준이 적절한지 따져볼 생각은 않는다. '틀렸다'는 판단을 내릴 만한 사람을 찾고, 그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 최종 목적이다.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사회는 개인의 합이므로, 대다수가 동의한 룰은 소수의 의견보다 타당하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인간사회에 던져진 존재다. 그런데 사회의 암묵적 기준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알 수 있는가? 역사가 기록한 법이나 시행령과는 다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관념들. 대체 누가 동의했길래 맞다고, 옳다고 따르고 있는 것일까.
학창 시절을 생각해본다. 반에서 '이상한 애' 취급받던 아이는 엉뚱한 말을 하고 어설픈 미소를 지었다. 깨끗하고, 이해할 수 있는 말만 해대는 우리들과 달랐다. 집단 내의 다름은 특별함이 아니다. 배척 대상이다. 위협을 받지 않았는데도 위험하다고 인지한다. 덜 자란 생각이 모인 결과다. 나이 때문이 아니다. 생각이 어리기 때문에 다름과 위협을 혼동한다.
이처럼 외관으로 옳고 그름을 가리고, 선을 긋는 모습을 극적으로 표현한 드라마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밝고 유쾌한 이미지에 속아 우리가 무엇을 놓쳤을까.
ㅡ다음 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