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펜서>
영화가 시작하기 전,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연기한 주인공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짤막한 인터뷰가 나왔다. 그가 말했다. 다이애나 관련 영상을 ‘다’ 보았다고. 호기심이 잔뜩 일었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납득할 만한 연기력을 처음으로 볼 수 있으려나.
그가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들을 꽤 보았다. 2016년 <카페 소사이어티>와 <퍼스널 쇼퍼>, 2018년 <리지>, 2019년 <찰리스 엔젤스(미녀 삼총사 3)>, 2020년 <크리스마스엔 행복이>. 감상은 늘 비슷했다. 과하지도, 약하지도 않다. 그런데 인상적이지도 않다. 꾸준히 작품을 해온다는 건 배우로서 욕심이 있고, 그만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인데. 괄목할 만한 성과가 안 보여 내심 응원했던 것 같다. 구설수 말고, 뛰어난 연기력으로 이슈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스펜서>를 보던 중 문득 생각했다. 이래서 다이애나비 영상을 ‘모두’ 보았다고 자신 있게 말했구나. 디테일한 버릇, 몸짓, 말투, 태도까지. 그 인물을 잘 모르는데도 이 사람 특유의 제스처와 걸음걸이, 시선처리까지 한눈에 보였다. 물론 이 모든 걸 계산했다면 한계가 있었을 거다. 왜, 그런 캐릭터들이 있지 않은가. ‘나 지금 연기하는 중’ 임을 온몸으로 뿜어내는 캐릭터들.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막상 촬영에 들어가서는 자신이 알게 된 사실들을 모두 잊었다고 했다. 덕분에 연기가 아주 자연스러웠다. 애를 쓴다는 느낌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그냥, 그 사람을 보는 듯한 느낌. 한 인물의 감정선을 집중적으로 표현하는 영화에서 연기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 물론 있다. 연출.
이제 영화 내용을 살펴보면서 몇 가지 인상 깊었던 대목을 짚어보려 한다. 비극적인 이야기를 토대로 한 허구이기 때문에 스포일러라고 해야 할지 모호하다. 게다가 실화를 다룬 이야기는 내용을 알고 보아야 더 좋기도 하다. 예를 들면,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
영화의 색감은 전체적으로 노랗다. 이건 몇 가지 효과를 만드는데 1) 색 바랜 느낌을 준다. 2~30년쯤 지난 옛날의 분위기 말이다.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사망일이 1997년이니, 과거의 이야기를 바탕에 두었다고 표현한 것일 수 있겠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라는 영화의 주요 키워드와 연결되기도 한다. 자세한 이야기는 뒤에서 이어가기로 한다. 2) 따뜻하다. 부드러운 햇살이 주는 따스함은 부정할 수 없다. 여기에 보여주는 이미지들은 삭막하고 엄숙하다. 이미지 간의 대비가 극명한 영화다. 다이애나의 화려한 겉모습과 썩어 문드러진 속(마음, 혹은 신체적 장기)을 대조한다고도 볼 수 있다.
적막한 시작이었다. 배경이 넓게 보이는 롱샷으로. 군용차를 아주 조그맣게 보여준다. 차가 지나가는 소리만 고요히 울렸다. 그리고 카메라의 움직임은 드론 같았다. 차 문이 열리고, 군인들이 나오는 장면까지 말이다. 멀찍이서 비춘지라 인물 개개인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고로 한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 표정을 들여다보지 못한다. 게다가 똑같은 군복 차림이라서 구별하기도 어렵다. 그들은 하나의 존재처럼 턱, 턱, 턱, 묵직한 발걸음 소리를 내며 계단 아래로 향했다.
그곳은 널찍한 주방. 철제 테이블이 즐비한 곳이다. 무표정한 얼굴로 이곳저곳을 걷다가 말한다.
Clear.
군인들이 나가고, 요리사들이 들어온다. 새하얀 요리복을 차려입은 그들과 군인들과 다를 바 없다. 셰프의 지시에 맞춰 움직인다. 무슨 전쟁 중의 만찬도 아니고,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가족끼리 오래간만에 모이는 자리였다. 정해진 순서, 정해진 역할, 정해진 준비. 숨이 꽉 막히는 상황. 배경에 깔린 음악이 불안하고도 불편했다.
한편, 다이애나는 홀로 운전 중이다. 도무지 알 수 없단 얼굴로 지도를 들여다 보고, 식당에 들어가 여기가 어딘지 묻는다. 길을 잃은 다이애나. 그가 물리적으로 처한 상황은 심리적 상황과 동일하다.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 딴에는 최선의 저항일 수도 있겠다. 한 번쯤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억지로 참석해야 하는 자리에 최대한 늦게 도착하려고 이런저런 핑계를 만든 적. 사방에 널린 불편함을 감내하기는 쉽지 않을 테다.
아주 느지막이, 왕실에 다이애나의 차가 들어선다. 그리고 그 위로 타이틀 <SPENCER>가 얹어진다. 현재 ‘다이애나’라고 불리는 그의 가문 이름, ‘왕세자비’에 가려진 그의 뿌리.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다룬 영화는 이전에도 있었다. 공통점이 있다면, ‘다이애나’ 혹은 ‘프린세스’가 들어가던 것. 왕실에서의 삶을 이름으로 붙였지, 그의 과거가 담긴 패밀리 네임은 제목으로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스펜서> 포스터를 보고서도 누구의 이야기인지 예측할 수 없다. 얼굴도, 익숙한 이름도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웅크린 상반신과 끝없이 펼쳐진 드레스 자락만이 마주하는 전부다. 왠지 모를 무거움이 느껴지는 뒷모습.
즐거운 크리스마스에는 한 가지 풍습이 있다. 로비에서 몸무게를 재고, 크리스마스가 지난 후 다시 몸무게를 재서 얼마나 무게가 늘어났는지 확인한다. 잘 먹었다는 게 그만큼 시간을 잘 보냈다는 의미인 것처럼. 다이애나에겐 곤혹일 수밖에 없다. 명분뿐인 자리에서 즐거움은 찾아볼 수 없고, 무시와 조롱을 묵묵히 견뎌야만 한다. 3일. 3일만 버티자. 스스로에게 되뇌는 수밖에.
이제 환각 같은 일들이 드문드문 일어난다. 제가 앉을 의자에 각자가 맞춰 앉은 식사 자리. 남편 찰스 공이 준 진주 목걸이를 성가시다는 듯 계속 만지작대다 힘으로 뜯어낸다. 자연히 진주들은 하나씩 떨어져 일부는 수프에 퐁당 들어간다. 다이애나는 그것들을 목구멍으로 꿀꺽 삼킨다. 딱 하나가 아니라 하나씩 여러 개를.
반짝이는 진주 목걸이. 보는 사람 눈에는 아름답지만, 착용하고 있는 사람에겐 무겁기만 하다. 목을 감싼 모양새가 목줄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곳을 ‘집’으로 명명해야 하는 다이애나에게 주어진 상징물. 게다가 진주 목걸이는 찰스가 불륜 상대에게 먼저 준 것이다. 결국 다이애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간다. 알고 있는데 모르는 척해야 하는 답답함. 뭐라도 뱉어내고 싶지 않을까. 애석하게도 얼마 먹지도 못한 수프가 뱉어낼 수 있는 전부다. 차라리 목을 꽉 막고 있는 진주였다면 좋았을 텐데.
무너진 그를 어떻게든 지탱하는 건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들이다.
윌리엄과 해리, 두 아들들과 함께일 땐 다이애나가 밝게 웃는다. 평소에도 몸에 밴 웃음기가 있지만, 표정에 생기가 돈다. 장난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왕실을 비꼬는 상황극을 이어간다. 두 아들의 나이대는 다이애나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며 떠올리는 자신의 모습과 비슷하다. 마냥 행복했던 지난날. 자신의 진짜 집이 있던 때. 마구 달릴 수도, 웃을 수도, 있던 때.
두 아들은 현재에 머물면서 다이애나에게 과거를 느끼게 해 준다면, ‘앤 불린’은 말 그대로 과거의 사람이다. 온갖 누명과 추문을 뒤집어쓰고 끝내 사형당한 영국의 16세기경 왕비. 의아한 건 다이애나가 앤 불린의 언니인 메리 불린의 후손이라는 거다. 왜 자신의 선조가 아닌 앤 불린의 환영을 보고, 살아갈 힘을 얻었을까.
아마 자신과 비슷한 삶이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 싶다. 자신을 둘러싼 헛소문과 음해를 알면서도, 끝내 사형대까지 몰린 사람. 찰스의 경멸 어린 눈빛, 낮잡아 보는 태도, 미친 사람 보듯 하는 왕실의 신하들. 이러한 환경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는 건 생각만큼 어렵다. 게다가 왕실의 말을 듣지 않아서 죽게 된 선례가 버젓이 있으니, 압박감은 엄청날 테다.
그러나 비슷한 환경에 처한 사람끼리만 이해할 수 있는 면이 존재한다.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아는 셈이다. 사행 집행일에’ 나는 목이 얇으니 금방 죽이겠다’고 농담한 앤 불린의 담대함. 표적이 되었음에도 당당한 자세. 앤 불린은 사형당했으나 불쌍히 여길 사람은 아니다. 왕실이 그를 죽인 건 절대 움츠러들지 않았기 때문이니까.
크리스마스 만찬을 벗어난 다이애나는 자신의 옛날 집으로 향한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상태가 나빴다. 꼭 다이애나처럼. 위험한 곳이라고 왕실의 소령에게 알리고, 그는 웃으며 답한다. 썩은 계단을 밟아 죽는 건 다이애나의 선택이라는 듯이. 그곳에서 죽으려던 다이애나는 앤 불린의 환영이 걸어오는 말을 듣고, 꿋꿋이 살아가기로 한다.
그의 옛날 집 주변에는 허수아비가 있는데, 아버지의 낡고 해진 재킷이 걸려있다. 다이애나는 언젠가 그것을 깨끗이 만들어 놓으라고 재단사 ‘매기’에게 말했다. 하지만 매기 또한 환영이다. 말끔하게 바뀐 줄 알았던 재킷은 여전히 더럽고, 매기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앤 불린의 환영으로 생을 다짐한 다음 날, 환영이 아닌 진짜 매기가 나타난다.
환영과 실제의 차이는 화면 구도에서 보였다. 환영에서는 인물의 얼굴이 명확하게 보인다. 하지만 실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다이애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매기의 눈과 몸은 관객, 즉 정면이 아닌 다이애나를 향하기에. 그러니까, 다이애나는 몰랐던 거다. 자신과 몇 없는 주변 인물들 사이를 갈라 치기 하고, 헐뜯고, 미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대척점에 서있는 사람도 있음을. 환영의 여성, 그리고 실존하는 여성에게서 힘을 얻은 다이애나는 두 아들을 꿩 사냥에서 빼내오기로 한다.
방법은 간단했다. 평소처럼, 그러니까 ‘미친 것처럼’ 보이면 되었다. 꿩 사냥을 하는 한복판에 나타나 아들 둘이 자신에게로 올 때까지 이곳에 서있겠노라고. 역시나 찰스는 끔찍하다는 얼굴이다. 다이애나는 그 눈빛에 개의치 않는다. 자신과 따스한 감정을 나눌 줄 아는 사람들이 있으니, 충분한 것이다.
그렇게 세 사람은 여행을 떠난다. 목적지는 없다. 영화 초반, 다이애나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던 길과는 다르다. 그 길은 하나 빼고 모두 닫혀있었고, 이 길은 모든 방향으로 열렸다. 얼마나 열렸는가 하면 드라이브 스루로 치킨을 주문할 정도로. 그리고 이때, 다이애나는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말한다.
스펜서.
모두가 그를 다이애나라고 칭하지만, 그는 자신을 스펜서라고 칭한다. 엄연히 다른 이름, 다른 존재. 스펜서의 마지막 표정은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마지막을 떠올리게 한다. 파파라치, 교통사고. 이로써 마냥 좋은 결말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러나 해방감을 느낀 순간이 무의미하지도 않다. 허수아비처럼 왕실 한 자리를 지키고, 정해진 옷을 순서대로 입어야 하고, ‘좋은’ 겉모습을 꾸며내는 데에 급급한 삶에서 단 한 번이라도 자유를 얻었다면.
매기가 말하기를, 당신에게 필요한 것.
Love 사랑
Shock 충격
Laughter 그리고 웃음.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청 받아, 참석 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