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에도 자격이 있다

술안주 말고요

by 호단

겸손이 미덕이라 불리는 유교사상이 몇 백 년 동안 이 나라에 흘러서인지


당신 [단점이라고 명명된 특징]을
가지고 있나요?


라고 물었을 때,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든 아니라고 답할 사람은 몇 없을 거다. 이렇게 스스로를 낮추는 게 좋다고 배워왔으니까. 물론 이 경우보다 자신의 단점을 쭉 꿰고 있어서 정답이 '예'뿐인 사람이 훨씬 많겠지. 자신에게서는 부족한 면과 타인의 뛰어난 점을 습관처럼 견주어 대는 게 현대 사회의 규칙인지라.


서두는 이렇게 열었지만, 오늘 꺼내고 싶은 주제는 <타인과 비교하는 나>가 아니다. 저기 저 [단점이라고 명명된 특징]에 들어갈 수 있는 수많은 후보 중에 하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게으름.


'게으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할 일이 있는데 최대한 미뤄뒀다가 겨우 마감일에 맞춰 끝내는 사람? 움직이기를 귀찮아하는 사람? 침대에 누워있기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 다 맞는 표현이다. 여기에 내가 생각하는 의미 하나를 얹어 본다.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


그런데 제목대로라면 현실에 안주하는 것도 자격이 있다는 뜻인데, 말도 안 되지 않는가? 당장이라도 일을 그만두고 싶다가도 이걸 관둬서 뭘 해 먹고살 수 있나 하며 퇴사의 꿈을 살포시 접고 묵묵히 분노하는 대다수가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닌가? 대다수가 해당한다면 자격을 논할 수 있는가? 자격이 있다는 것은 특정 부류만이 무언가를 누린다는 말인데.


놀랍게도 벗어나고 싶은 상황에 울며 겨자 먹기로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건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그렇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아주 피치 못할 사정으로 절대 관두지 못하지 않는 이상(어쩌면 그럴지라도) 사람은 결국 본인 뜻대로 움직인다. 이 예시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 불안정하고 위험한 것을 기피해서 퇴사를 꿈으로만 생각하던 내 친구가, 그 회사에 뼈를 묻고 살 것 같다고 친구들과 입 모아 얘기했던 그 친구가, 5년 차에 직장을 관뒀다. 그리고 전혀 다른 업종을 택했다. 겨우 한 사례로 의견을 뒷받침하기란 터무니없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은 취미로든, 아니면 한 번이라도 시도는 해보았다는 사실. 바라는 모든 것을 해보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두어 개는 해봤을 것이다.


자, 그런데 여기 '게으름'이라는 특권을 가진 자가 있다. 매일이 무탈해서 느적느적 게으르게 산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 상황에서 변화를 만들지 않아도 괜찮다. 먹고살고 놀기 충분하다. 무엇보다 이 게으른 생활에 익숙하다. 익숙한 것은, 특히 돈 문제가 거의 없는 데 익숙해지면, 벗어나기 힘들다. 문득 불편함이 들이닥쳐도 그냥저냥 견딜 만하다. 그래서 그 자리에 계속 머문다. 다른 말로 하자면 안주한다.


반복하자면, 자신이 익숙함을 느낄 안정적인 버팀목이 있으니까 안주할 수 있다. 그래서 안주는 특권이자 특혜다. 아무나 얻지 못한다.


꽤 부럽다. 게으름에 매몰되어 생각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편한 일인가. 하지만 세상은 이상하게 공평하다. 장점이 있다면 단점도 있는 법. 익숙함은 지루하다. 반복적이고 뻔하고 지겹다. 변화가 없으니까. 내가 게으른 삶을 살아왔다면 이 생각마저 못했을 것이다. 나를 바꾸려 하고, 내가 얽힌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다른 현실을 꿈꾸다 보니 어딘가에 안주할 수 있음이 마냥 좋아 보이지 않는다.


다시 보니 [불안정함]도 나름 재밌는 성질이다. 예측할 수 없어서 무섭다. 그래서 마음껏 기대하고 불안에 떨고 안도하거나 괴로워할 수 있다. 온갖 감정을 느낄 수 있기에 삶도 풍요로워지지 않은가.


그러니 감사까지는 못하더라도, 게으름을 택할 수 없는 현실을 달갑게 맞아주련다. 지루할 법한 내 삶에서 우당탕탕 거리며 예상도 못할 일들을 만들어 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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