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타고남을 거부해 온 당신
지난 학기, 학교에서 진행하는 집단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매주 화요일, 오후 세 시 반, 상담실. 어색함과 낯섦, 왠지 모를 설렘을 안고 갔던 첫날부터 끝이라는 사실이 전혀 실감 나지 않던 마지막까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큰 소득을 얻었다. 첫째, 스트레스로 잔뜩 오그라든 근육을 이완시키는 과학적인 방법을 배웠다. 둘째, 나는 불안을 타고난 사람임을 확인했다.
사람들은 '좋은 것'만 타고나길 바란다. 긍정, 재능, 체력, 에너지, 건강처럼. 그래서인지 '나쁜 것'을 타고났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고 싶어 한다. 설령 인지하여도 그것에 '고칠 점', '단점'이라는 꼬리표를 붙이지. 나도 사람인데 뭐 다를 바 있었겠는가.
눈에 보이는, 혹은 몸으로 느끼는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오히려 그것을 가졌다는 확인 사살을 당하여 괴로워한다.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 비관에 빠지며.
사실 비관에 빠질 필요 없다. 당신은 완벽을 요구하는, 즉 불가능을 바라는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이기에 사회의 틀에 몸을 욱여서라도 넣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산다. 먹고살려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 적어도 당신 성격, 당신의 타고남을 틀 안에 맞추려고 망치질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상담을 통해 기질검사를 했다. 상담사 분은 결과를 나의 기질, 즉 선천적인 성질과 후천적인 노력으로 나누어 해석해 주셨다. 기질검사에 불안 항목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러이러해서 당신이 불안을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중에서 이러이러함에 해당하는 항목들이 있었을 뿐.
수치로 따지자면 100 중 98이었다. 구십 팔. 숫자 두 개를 보고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이렇게 불안함에 벌벌 떨면서도 살아가고 있다는 게 대단할 지경이었다. 기특하기도 했다. 인간 사회에 적응하고자 스스로 만든 내 모습은 나의 타고남이라고 믿을 만큼 감쪽같았다. 한때 자존감이며 자신감이며 모든 것이 바닥 친다고 느낀 적도 있었지만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고 줄곧 애써온 것이다. 감동 휴먼 스토리가 따로 없다.
이런 경우가 있다. 나의 결점을 마주하면 더 힘들어질 것 같아서 일부러 보지 않는다고. 틀린 말이다. 나의 결점은 직접 보아야 받아들이기가 쉬워진다. 포기나 체념이 아닌 받아들임 말이다.
나도 이해할 수 없던 나의 행동, 말, 생각을 98이라는 수치를 보고서야 이해했다. 겁먹어서 그랬구나, 관심의 표현이구나, 싫어서 그랬구나. 당신이 사람인 이상 그 결점을 어떻게든 안고 가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했을 거다. 아닌 게 아니라, 당신이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생각해주자.
타인보다 자주, 쉽게 가지던 불안이 잘못된 것이 아니고 단지 나의 타고남이었음을. 그 불안을 달래기 위해 내가 노력했음을. 앞으로는 외면하지 않고 나의 일부라고 의식하며 어디 한 번 잘 데리고 살겠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