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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려 Nov 12. 2021

'살기 힘들다'는 감정

예민 서점 책 이야기 1

 도서 "예민한 게 아니라 섬세한 겁니다" 도서 "예민한 게 아니라 섬세한 겁니다"

예민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예민하다는 것은 삶의 태도일지 모르지만

예민한 사람들에게 예민하다는 것은 때론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 예민 서점 점주 생각.


다카다 아키카즈의 책 "예민한 게 아니라 섬세한 겁니다."

책 표지에서 도도하게 카펫 위에 서 있는 고양이를 다른 고양이들이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부제 '뇌과학자가 말하는 예민한 사람의 행복 실천법'.

솔직히 표지를 보는 순간 '땅기지가' 않았다. 예민한 걸 괜히 특별한 것처럼, 겉멋 부리는 것처럼 보고 있는 것 같아서다. 그래도 나는 예민 서점 점주니 책을 읽어야지. 책을 펼쳤다.


'책을 쓰면서' 네 번째 줄.

"나는 '살기 힘들다'는 감정을 안고 살았다."

이 구절을 읽은 순간, 작가와 책이 다르게 다가왔다.

이 사람도 힘들었구나. 예민하다는 걸로 치장을 하고 변명을 하려는 것이 아니구나. 이 사람도 '신명 나게 살아야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든지에 대한 답을 구하고 숨이라도 좀 편히 쉬고 살려고 애쓰는 거구나.


다시 책 표지를 보았다. 여전히 제목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카펫 위의 고양이가 다르게 보였다. 앞 발을 꼬고 꼬리를 치켜 세운 채 작은 타원형 카펫 중간에서 꼼짝을 못 하고 서 있다. 입술도 꼭 다문 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주위의 고양이들을 돌아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다른 고양이들의 눈요기 거리가 되고 있다.


작가는 말한다.

"남들이 보면 힘들어할 이유가 없는 인생이다. 하지만 나는 항상 남들의 눈을 의식하며 자신감 없는 삶을 살아왔다."

이 글을 읽고 '왜?'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나도 그래'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절대로 그 강은 건널 수 없다. 다른 세상, 다른 마음속에서 사는 서로를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할 필요도 없다. 이해를 원하는 사람도 이해를 강요당하는 사람도 힘들 뿐이다. 단지 서로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존중이 필요할 뿐이다. 아 저 사람은 저렇구나. 나랑 다르구나. 그럼 예민한 사람도 그 옆에 있는 사람도 편하게 숨을 내쉴 수 있다.


작가는 이제는 많이 알려진 HSP(High Sensitive Person)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체크 리스트가 뜨는데 22 가지 중 12 개 이상이 적용되면 '이 책을 꼭 읽어야만 하는 사람'이란다.

'주변 분위기의 미묘한 변화를 잘 알아차린다'로 시작하는 목록 22 개를 읽는 내내 나는 궁금했다.

"이렇지 않은 사람도 있어?"

그렇게 나는 만점을 받았고 이 책을 꼭 읽어야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 책을 외워야만 하는 사람이 아닌가 고민에 빠졌다. 뭐, 책을 외워서 좋아진다면 외우고 싶다.


자신이 예민한지 아닌지는 이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예민한 사람들은 '나도 그런데'를 끊임없이 중얼거릴 것이고 예민하지 않은 사람들은 '말도 안 돼' 혹은 '이건 당연한 거 아냐? 왜 머리로 생각해야 해?' 하며 거부감을 느낄 테니까.


책은 편하게 잘 읽힌다. 문체도 편하고 번역도 잘 된 것 같다.

하지만 해답을 제시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결국 마음먹기에 따라 예민함이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할 때면 화가 나기도 했다.

"그놈의 마음먹기. 누가 몰라서 안 하냐고."

책 마지막 표지의 글은 너무 쉽게 결론을 내려버리는 것 같았다.

"... 그렇기 때문에 예민함은 지금까지 인간에게 이어져온 훌륭한 기질이다. 어제의 나를 힘들게 한 예민한 기질을 사랑하자. 예민함은 재능이다! 예민한 나를 인정하면 삶이 행복해진다!"

예민하다는 것 자체로 힘든데 훌륭한 기질이니 사랑하고 재능으로 받아들이라니...


책을 썼고 거기에 뇌과학자라는 타이틀까지 있으니 작가도 뭔가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에 힘들었겠다. 그것만 빼면 책은 좋았다.

의사들이나 심리학자들이 임상결과를 토대로 쓴 책과는 달리 이 책은 작가 본인의 경험담을 담고 있다. 솔직하게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고 보여줌으로써 자신처럼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 한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 당신은 예민한가요? (나의 대답 - 네, 저는 예민합니다.)

2. 예민하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나의 대답 -글쎄요, 안다고 뭐 달라질까요?)

3. 예민한 게 뭐 어때서요? (나의 대답 -아뇨. 예민하면 사는 게 힘듭니다.)

 

구시렁대긴 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우울증과 예민한 것을 구분할 수 있어서 좋았다.

예민한 것은 천성이고 우울증은 없다가 생기는 병이란다. 예민한 사람들이 우울증이나 정신질환에 걸릴 확률은 높지만 예민한 것 자체가 질환은 아닌 것이다. 한 예로 예민하다고 자살을 실행에 옮기지는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우울증은 자살을 시도할 확률이 높아진다. 그리고 우울증은 약으로 증상이 완화되지만 예민한 것은 약으로 완화되지 않는다. 오히려 약을 복용하면 몸이 예민하게 반응해서 더 예민해질 수도 있다고 한다. 물론 이 사례는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이고 정신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것이지만 난 이 의견에 동의한다.


작가가 나의 허를 찌르기도  한다.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다"로 시작하는 챕터가 내게는 '힘들면 억지로 참지 말고 피해라'로 들렸다.

사회의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피하는 것은 용기가 없고 무책임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견뎌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다 보면 무뎌지고 아무 일도 아닌 거라고 웃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작가 말대로 '우리처럼 예민한 사람들은' 힘들다. 계속 힘들다가 자신을 끝으로 몰아버릴 수도 있다.

매일 도망칠 수도 없고 매번 도망쳐서도 안 되겠지만 정말 참기 힘들 때는 도망가자.


여기에 하나 내 말을 덧붙이면 돌아올 때는 도망쳤다는 죄의식 같은 것은 갖지 말자는 것이다. 나 이렇게 잘 살아 있다고 칭찬해주자, 그 일에 대해서는 완전히 마음을 비우자. 이런 잔소리를 하는 이유는 '우리 같은 예민한 사람들은' 도망쳤다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또 힘들어할 테니까.


그래서 요즘 내가 쓰는 방법은 저울질이다. 피하고 나면 내 마음이 가벼울지 무거울지를 저울질한다. 피하고 난 후에 밀려들 자괴감이 더 크다면 힘들어도 참는다. 반대로 그 자리에 있을 때의 자괴감이 더 크다면 피하기로 마음먹었다. 세상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간다. 억지로 참으면서 남의 세상을 짊어질 필요는 없다. 당연한 소리 한마디 더하자. 내가 있어야 내 세상이 존재한다.

사람마다 경우의 수가 다르겠지만 '참지 말고 피하는 것'도 용기다. 그리고 '우리처럼 예민한 사람들은' 함부로 도망치지 않는다. 안 되겠다 싶으면 억지로 참지 말고 도망치자. 그리고...

"씩씩하게 돌아오자."


피하는 것도 요령이 있다. 작가는 '두 가지 스트레스'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스트레스에도 동적인 스트레스와 정적인 스트레스가 있다. 동적인 스트레스는 외부활동에서 오는 스트레스고 정적인 스트레스는 내 속에 침몰되는 스트레스다. 동적인 스트레스는 정적인 방법, 좌선이니 명상 같은 방법으로 정적인 스트레스는 오히려 외부 활동으로 풀어주란다. 그리고 꾸준히 스트레스를 풀라고 덧붙인다. 이 말은 예민한 사람, 예민하지 않은 사람 모두에게 적용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예민한 것이 아니라 섬세한 겁니다"라는 책 제목이 거슬렸다. 작가는 센서티브(sensitive) 단어 뜻을 설명하면서 센서티브에는 '예민한'이란 뜻과 함께 '주의 깊은, 사려 깊은'이란 의미가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예민하다는 것을 부정적인 뜻으로 받아들이고 거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예민하신가 봐요?"

"아니요. 예민한 게 아니라 섬세한 겁니다."

예민하다는 것은 기질이고 재능이라면서 끝내 작가는 거부하고 싶은 것이 아닌가?

아니면 문장의 맥을 내가 잘못 잡고 있는 것일까? 제목을 너무 확대 해석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야, 책 제목을 함부로 정하지는 않았을 거야. 아니면 아직도 예민하다는 것을 거부하고 싶은 내 마음을 투영한 것일까?


나는 내가 예민한 것이 죄 같았다. 전생에 무슨 잘못을 했길래 예민이란 업보를 지고 태어났나 싶었다. 남들보다 '나약'한 내가 싫었고 지금도 그다지 좋지 않다.

스스로도 예민한 나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래도 '너만은' 하며 남편과 친구들에게 나를 이해해달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나보고 예민하다고 말하는 사람들한테는 도와주는 것도 없으면서 왜 구박이냐며 달려들고도 싶었다.


작가의 말대로 예민하다는 것은 천성이고 기질이다. 신조차 고칠 수 없는, 그래서 신이 주신 '재능'인지도 모른다. 어쩌겠는가. 예민한 것을. 평생 같이 살아가야 하는 '나'인 것을.


"예민한 사람들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이 예민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 그렇다면 조금씩 노력해보자. 작가의 말대로 다른 방향으로 써먹어보자. 주어진 재능을 발휘해보자. 주의 깊게, 사려 깊게, 섬세하게 살아보자. 스스로를 그만 볶고 예민하게 '나'를 돌보자.

우선은...

예민한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자.

 

내 마음대로 책 제목을 바꿔 봤다.

"예민한 게 아니라 섬세한 겁니다"에서

"예민해서 섬세한 겁니다"로.



* 참고 문헌

"예민한 게 아니라 섬세한 겁니다."  다카다 아키카즈 지음. 신찬 옮김. 매일경제신문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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