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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려 Nov 05. 2021

신내림

예민 서점 점주 이야기 1

그 무속인 참 용하다

7년 전 일이다. 앞 집 아주머니가 차 한잔 마시고 가라고 전화를 하셨다. 매번 거절하기 미안해서 걸음을 했다. 그 집에는 거의 매일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날은 웬일인지 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 물으니 더 올 사람 없단다.

편하게 앉아 차를 마시고 쿠키를 먹으며 마당의 꽃들을 눈에 담았다. 마당에는 소나무 분재부터 각종 난들과 각양각색의 꽃들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개 두 마리는 잔디에 누워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이곳은 동네에서는 이미 유명한 마당 맛집이었다. 그래서 항상 놀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상하다 싶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사람들 만나는 것을 힘들어하는 나에 대한 배려 같았다.


난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너무 피곤해서 한참을 쉬어야 한다.

"사람들한테 너무 잘하려고 애써서 그래, 잘하려고 애쓰지 마."

친한 친구가 매번 조언을 했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나? 특히, 친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면 내 온몸은 털을 세우고 구석구석 잠들어 있는 세포들을 깨운다. 저 사람들 말 한마디라도 놓치면 '나비효과'처럼 세상 한구석이 무너져 내리고 나를 덮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고 오면 그날 대화를 되새기면서 밤을 새우곤 했다.

'그 사람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앞으로 그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등등. 어릴 적 이런저런 생각으로 끙끙 앓고 있는 내 뒤에서 친정어머니가 한 말씀하시곤 했다.

"밴댕이 속 알 딱지."

속이 좁은 걸 어쩌라고? 혼자 울던 날들도 많았다.

그래서 내가 택한 방법은 꼭 필요하지 않으면, 웬만하면~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것이다. 지금은 코로나로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안타깝지만 원하지 않는 의식적인 만남이 줄어든 것은 좋다.


그렇게 마당에 앉아 앞집 아주머니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눴다. 믹스 커피 한 잔을 다 마실 때쯤 서서히 아주머니가 본론을 꺼냈다.

"내 사촌 조카가 신내림을 받았는데... 신내림도 종류가 다양하다네. 조카는 돈을 관장하는 신이 내려서 많은 사람들한테 조언도 해주고 돈도 많이 벌었대."

"잘 됐네요."

맞장구를 쳤지만 그날따라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아주머니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내 예민함은 촉을 세우지 않았다. 이 정도 말했으면 무슨 이야긴지 알려니 싶은 여자가 '네, 네' 하고만 있으니까 아주머니가 침을 꿀꺽 삼키더니 말을 이었다.

친척도 신내림을 거부하다가 아프고 아파서 끝내는 신내림을 받았다. 그래도 결혼 생활을 잘 유지하면서 잘 지내고 있다. 이젠 아프지 않으니까 남편이 오히려 좋아한단다.

네, 네.

늦은 봄날 오후, 바람은 적당히 따뜻했고 꽃냄새는 향기로웠지만 몸은 여기가 어딘가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멍하니 대답만 하는 나를 보고 아주머니가 안 되겠다 싶었던지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

"'소려'씨도 아무 이유 없이 자꾸 아프잖아. 내가 아는 무속인이 있는데, 한번 가 보지 않을래? 굿도 하지만 사주팔자를 기본으로 풀어주는 집이야."

무슨 생각이었는지 '네'하고 따라나섰다.

 

난 기독교인이다. 그것도 모태 신앙. 어머니와 목사님이신 작은 아버지들이 이 글을 보신다면 한참을 혼내실 거다. 병도 없는데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다는 핑계로 그곳에 갔다. '정말 신내림 받으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 덩어리를 가슴에 품은 채.



그곳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곳처럼 요란하지도 않았고 괴기스럽지도 않았다. 무속인은 평범한 여자였고 단아했다. 내 생년월일을 보면서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하네."

"아, 네." 보시다시피.

다른 이야기들이 이어졌고 답답한 내가 먼저 대놓고 물어봤다.

"제가 혹시 신기가 있는 것은 아닌지?"

무속인이 나를 '응?' 하며 빤히 쳐다봤다. 내 눈 속을 한참 휘젓고 다녔고 나는 그러라고 내버려 뒀다. 신기가 있으면 빨리 찾으라고. 찾아서 레이저로 점 빼듯이 뺄 수 있으면 빼 달라고.

한참을 보던 무속인이 말했다.

"예민해서 그래. 정말 예민하네. 팔자에 있네. 없는 걱정도 사서 한다고."

무속인은 내 사주를 적은 노트로 눈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다른 이상한 사람한테 갔으면 신내림 받으라는 소리를 했을지도 모르는데. 절대 속으면 안 돼. 그냥 너무 예민한 거니까."

난 그 순간, 이 무속인에 대해 절대적인 믿음을 가졌다.

'그래, 이거야. 이 무속인의 말이 맞다. 난 그냥 예민한 거야, 선천적으로 약한 몸에 예민을 더하니 극강 초 예민일 뿐이야. 역시! 아주머니 말씀대로 이 무속인 참 용하다.'

그 후로 자잘하게 틀리는 무속인의 나의 과거에 대한 예측을 '내가' 교정해주면서 즐거운 상담을 마쳤다.


돌아오는 길, 힘들게 말을 꺼냈던 아주머니는 '다행이다' 소리를 연발했고 극강초 예민의 이웃집 여자를 있는 그대받아주었다. 그 후로 다른 아주머니가 '소려'씨 왜 자꾸 아파? 물어오면 앞집 아주머니는 대신 나서서 대답까지 해주었다.

"'소려'씨 예민해서 그래."

나의 예민은 팔자라는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 면죄부를 받은 거 같기도 하고, 이걸 왜 거기까지 가서 확인받아야 하나 싶기도 하고...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면 화를 낼 것 같아서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친구가 그래서, 그래서? 연거푸 묻는다.

"예민해서 그렀대."

"다행이다."

"그렇지? 다행이지?"

친구와 한참 수다를 떨다가 전화를 끊었는데 뭔가 찜찜하다.

아니?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면

"어머, 그 아줌마 이상하다. 네가 뭐 어때서 그런 말을 한다니?"

이런 말이 나오는 게 정답이 아닐까? 그런데 다행이라고?

으음~.

친구도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나의 예민도가 그렇게 높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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