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려 Dec 12. 2021

고통의 끝에서

살자


고통의 끝에서는 나도 세상도 존재하지 않더군요.

고통만이 자리를 잡고 앉아 나를, 세상을 녹여버리더군요.

두려움도 없어요. 그저 쏟아지는 고통. 그 속에 문득문득 서러움이 보이더군요.

그 서러움을 잡고 겨우 의 끄트머리를 잡았습니다.

천성이란 게 있나 봐요.

누구에겐 햇살만 보여서 있는 그대로 주위를 밝혀준다는데...

아, 내가 본 고통은 어둠이 니었어요. 너무 환해서 너무 강렬해서 모든 것을 녹이고 활활 타오르던데요?

그 속에서 녹아버리던 나를 서러움이,  뿜어져 나오던 서러움이 나를 식혀주고 꺼내 줬습니다.

천성이 어둡다고 나를 구박하지 않으려고요. 밝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어둠의 마왕처럼 검은 옷자락을 질질 끌고 다니면 어떻습니까? 나로 살아 세상을 밝혀주지 못하면 어떻습니까?

등불은 이미 많아요. 불꽃 속에 자신을 활활 태워버리는 불나방들도 많고요. 억지로 밝게 살려고 애쓰지 않으려고요.

온 세상을 녹여버리는 고통 속에서 어둠으로 살아남으려고요. 등불이 아닌 것을 어떡하겠습니까? 불나방이 아닌 것을.

세상 속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고통으로 세상을 태워버릴 필요는 없어요. 그 기운으로 다른 걸 하며 살랍니다.

다시 누군가의 등불이 되라고 강요하지는 마세요.

나는 그냥 나로 살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18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