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예민 서점'을 쓰다가 멈추고 한동안 시들만 뚝뚝 적어낼 때였다.
그나마 몇 분 되지 않았던 구독자 분들이 뚝뚝 떨어져 나갔다. 몇 분은 조용히 지켜봐 주셨고 몇 분은 곁으로 다가와 위로를 건네주셨다.
정신을 차리고 글벗들을 찾아가 보니 몇 분이 더 지쳐서 떠나가 있었다.
며칠 전 작은 일 하나로 힘들었다. 머리는 큰일이 아니라고 말하는데 마음은 아프다고 소리를 쳤다. 시를 뱉었다.
부서질 것 같은 날
마음이 아파
약을 발라줘
빨간 약으로
나 다쳤다고
딱 보면 알게
호호야 해줘
마음이 너무 아파
빨간 약으로 안돼
진통제를 먹을래
심장이 바슬바슬
위로의 말을 원해
마음이 부서질 것 같아
깁스를 해야 할 것 같아
석고를 단단히 두르고
압박붕대를 감고 감아
손끝까지 저려오는 듯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아
햇빛에 부서질 것 같아
바람에 녹아내릴 지도
나를
찾지 마
부서진
마음
너는
잊어줘
- 소려의 못된 시 '부서질 것 같은 날'
그러고는 다음 글을 못 잇고 빙빙 돌았다. 마음이 소리쳤다.
"왜 글이 희망만을 이야기해야 돼? 왜 인생은 억지로 희망을 쥐어짜야 하지? 여기서 멈춰도 돼."
창 가득한 햇살에 부서질 것 같아 가슴을 움켜쥐었다. 창밖에선 바람이 서성이고 있었다.
'그래, 넌 나를 녹여버리고 싶겠지.'
돌아보는데 바람의 소리가 들려왔다.
"소려야, 너는 누가 아파하는 소리를 듣고 싶니? 친구라서 참아주고 가족이라서 지켜주는 거지. 소려야, 너도 누군가가 아파하면 도망가기 바빴잖아."
이 놈의 바람, 옳은 소리만 한다.
몇 달 전 친구가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 요즘 심각한 드라마는 안 봐. 내 속도 시끄러워 죽겠는데 저 집안 속까지 봐야 하나 싶어서."
티브이를 틀면 먹고 웃고 떠드는 프로밖에 없다고 한숨 쉬던 다른 친구의 말도 떠올랐다. 사람들에게서 현실을 직시할 용기도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마음도 사라지고 있다고.
둘 다 맞는 소리 같아서 그 중간에서 시이소를 타곤 했다.
그런데 난 어떤 사람일까? 아프다고 다가오는 사람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내치고 있지 않았는가? 나만 아프다고 나만 봐달라고 소리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눈물을 닦고 창밖을 봤다. 바람이 여전히 그곳에 서서 나뭇잎을 흔들고 있었다.
'부르륵' 알림 소리에 폰을 봤다.
"^^님이 라이킷 했습니다."
"^^님이 댓글을 남겼습니다."
"^^님이 나를 언급했습니다."
눈물이 말라 들어갔다.
바람이 속삭였다.
"그래, 별 거 아니야. 다 지나가."
나는 얼굴을 숨기고 구시렁거렸다.
"지금 내가 시를 뱉어내서 속이 시원한 거거든. 글벗들 소식조차 궁금하지 않을 정도로 아플 수도 있거든."
그런데 이 놈의 바람, 끝까지 한마디 하고 간다.
"소려야, 또 그렇게까진 아프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