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숲

by 소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나오는 음식들 중에 감자요리가 있다. 다른 음식들은 상상이 갔는데 그것만은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삶은 감자에 후추와 소금까지는 알겠는데 올리브 오일과 쪽파라니? 익숙하지 않은 배합이 궁금해서 몸을 움직였다.

감자 껍질을 벗겨 삶고 한 입 크기로 썬 다음에 후추, 소금, 올리브 오일을 넣고 섞는다. 그 위에 다진 쪽파를 얹어 가볍게 젖는다.

맛은? 영화 '라따뚜이'에서 음식 비평가가 라따뚜이를 먹고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쏘울 푸드'라고 하던가? 나에게 그 감자요리가 그랬다.

아무리 되새겨도 어릴 적 먹은 기억이 없으니 전생의 기억이었을까? 전혀 튀지 않는 네 가지 재료는 서로의 자리를 인정하면서 어우러졌다. 잔잔하면서도 우아한 풍미는 냄새부터 따뜻했고 한 입을 물면 숨죽여 있던 영혼이 꿈틀거리며 눈을 뜨는 것 같았다.

문제는 나 말고 다른 식구들은 이 음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 혼자 먹겠다고 까고 삶는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게으른 몸은 '쏘울 푸드' 따위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몸이 안 좋아 누워있는데 남편이 물었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리틀 포레스트 감자."

그렇게 내 '쏘울 푸드'에 진정한 영혼이 깃들었다. 남편은 쉬운 요리라며 팔을 걷어붙였고 나는 편하게 앉아 마음을 달랬다. 겨울이면 난로에 감자를 구워서 남편은 또 다른 '리틀 포레스트 감자'를 만들어주었다.


봄 한가운데, 심한 가뭄에도 나무는 새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까지 맺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내가 좋다고 온 곳이지만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4 시간을 달려가야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이곳에선 책 이야기 하나 편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공기가 좋고 집도 좋고 꽃도 좋았지만 내 마음은 허물어져만 갔다. 도시에 집을 하나 구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을 하기도 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겨울이면 금목서, 은목서는 눈에 보일 듯 진한 향기로 나를 안아주었다. 소나무 잎은 더욱 짙푸르러졌고 이팝나무는 하얀 꽃을 피우며 배시시 웃었다. 남편이 가을에 골라 심은 튤립들은 제 색깔에 취해 까르르거렸고 백합은 곧 피어오를 하얀 꽃을 위해 긴 초록 모가지를 꼿꼿이 세우고 있다.


마당 한켠 나의 아지트와 보디가드 멍진


그렇게 5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도시를 그리워하다가 타협점을 찾았다. 한두 달에 한 번 도시로 여행을 떠나자. 서울에 사니 서울에서 호텔을 잡아 잔다는 것을 상상도 못 했던 친구들은 시골에서 상경한 친구를 위해 생각의 틀을 깼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들의 일탈을 더 즐긴다.




나는 고향 서울에 가서 30년 지기들을 만난다. 도시 한가운데 호텔 방 안에서 하늘보다 드넓은 도시를 바라보고 밤이면 하늘의 별을 닮고 싶어 하는 수많은 불빛들을 만난다. 사람들의 열기에 휘청거리는 대로변을 걷고 매연에 취한다.

우습게도 그게 편할 때가 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시골로 여행을 떠나듯 시골에 사는 나는 도시로 여행을 떠난다. 서울 내 고향, 친척들이 있고 내가 가면 언제든 달려 나와주는 친구들이 있는 그곳. 서울을 떠나고 나서야 고향이 생겼다.


마음이 허기진 날이면 남편에게 '리틀 포레스트 감자' 한 접시를 부탁한다. 남편이 정성 들여 가꾸고 있는 'Little Forest', 우리의 작은 숲에서 매일 새로운 친구들을 만난다.

그리고 지금 여기. 나의 영혼을 담는다.

나의 작은 숲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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