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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려 Sep 05. 2022

이상한 휴가

태풍이 오고 있다


수도권에 물폭탄이 떨어진 날, 친구 집 근처에서 산사태가 일어났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옆 집은 집 안까지 흙이 밀려 들어왔단다. 내려가 보니 흙 속에 차들이 뒤엉켜있었다.

친구의 아들은 비행기가 떨어지는 것 같은 굉음을 들었다고 했다. 친구의 남편은 야근중, 그 후 길이 통제돼서 3일 만에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물도 나오지 않아 대피소로 이동했지만 고3짜리 아들과 끊임없이 짖어대는 반려견 때문에 대피소를 나와야 했다.

"퇴촌에 펜션 하나 빌렸는데, 이곳도 주위가 엉망이네."

친구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반려견은 맹렬히 짖고 있었다.

"어쩌다가 휴가네. 이상한 휴가."

"그러게 휴가다, 휴가. 이상한 휴가. 허허."


태풍 힌남노가 오고 있다.

친구에게 물으니 산사태가 났던 곳은 아직도 복원을 못했다고 다. 흙이 더 무너져 내리면 어쩌나, 친구와 마을 사람들은 이 밤이 더 길게 느껴질 것이다.

우리 집은 420미터 산 위에 있다. 몇 번의 태풍을 겪었고 북쪽 경사면에는 아름드리나무들이 튼튼하게 버텨주고 있지만 마음은 바람이 세질수록 심하게 흔들린다. 바람이 동서남북을 번갈아가며 쳐대고 나무들은 몸부림을 친다. 산 위를 흐르던 구름들은 검은 날개를 펼치고 하늘로 빨려 들어간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겠지만 태풍 같은 자연재해로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다면 더 화가 나고 허무할 것 같아요.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해는 더 쨍하게 오르는데 이제 더 이상 어제의 일상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게, 더 무서울 것 같아요. 온몸이 시리고 해랑 하늘이 너무 원망스러울 것 같아요."

태풍 관련 뉴스를 보다가 둘째가 말한다.


부산에서 공부하고 있는 딸에게서 카톡이 왔다. 태풍 때문에 오후에 퇴근하고 내일은 재택이란다.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마음을 정리한다.

'부디 모두들 편안하시길, 급한 일은 생기지 말고 바쁜 일도 잠시 미뤄두시길....'

태풍이 지나가고 해가 쨍 뜨면 모두들 젖은 옷을 말리고 어제 같은 일상을 다시 시작하길 바란다.

이상한 휴가 따위는 갖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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