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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려 Sep 12. 2022

너만 알고 있어

빅마우스의 비밀

어디에나 빅마우스는 있다.

(나는 드라마 '빅마우스(Big Mouse)'를 보지 않았다. 이 글에서 말하는 빅마우스(Big Mouth)는 영어권에서 관용적으로 쓰이는 수다쟁이를 의미한다.)


빅마우스의 첫 번째 특징, 모두에게 비밀 유지를 강요한다.

"너한테만 하는 말이야, 너만 알고 있어."

어릴 적에 그런 말을 친구한테 들으면 뿌듯했다.

'이 친구가 나를 믿는구나, 나는 비밀을 지켜야지. 어떤 일이 있어도 입을 꾹 닫아야지.'

어린 마음에 나쁜 나라로 끌려가 고문을 당하면서도 비밀을 지키는 멋진 스파이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모두가 아는 비밀일 때가 많았다. '공공연한 비밀'이란 말은 나만 모르는 이야기 혹은 나도 알지만 서로 얘기하지 않는 이야기 정도라는 걸 알게 되었다.

비밀은 표피가 얇아서  쉽게 터진다. '누가 그러던데~'로 시작하는 말에 물고를 터뜨리고 사람들에게 들러붙어 끈적거린다.


빅마우스의 두 번째 특징, 자기가 누구한테 말했는지 잊어버린다.

"너만 알고 있어, 이거 비밀인데..."

"너 전에 말했잖아."

"내가 언제? 너 누구한테 들은 거야?"

그 정도가 되면 빅마우스가 누군가에게 속닥거려도 신경 쓰지 않는다. 다른 사람한테 전하고 있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일 확률이 높다. 모르는 이야기라도 상관없다. 돌고 돌아 그날 안으로 내 귀에 들어올 것이다.


다행히도 빅마우스가 전하는 '비밀'들은 큰일이 아닌 경우가 많다. 빅마우스들에게도 규칙이 있으니 무거운 '비밀'들은 입을 다물어야 한다.  비밀들이 빅마우스에게 흘러갔다면 이미 큰일이 터지고 있는 것이겠지만....

큰 비밀, 작은 비밀을 구분 못하고 단지 '입이 간지러서' 입을 긁고 있다면 정말 큰 일 난다.


사람을 만나면 말을 하게 되고 어느 날은 입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직이는 것을 아주 늦게 자각하기도 한다. 그러면 입단속을 시켜야 한다.

"너만 알고 있어."

빅마우스의 탄생 혹은 빅마우스가 본색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당신은 어떠신가?

빅마우스는 어디에나 있다.


명절 끝, 사람들이 전한 이야기들과 내가 떠든 말들 때문에 귓속이 시끄럽다. 분류 작업에 들어간다.

아직도 가슴이 저린 이야기라면 그건 '탑 시크릿(Top Secret)'. 입 밖으로 내서는 안된다. 다른 누군가가 다시 나에게 전한다면 처음 듣는 것처럼 모른 척해야 한다. 내 속이 편하기 위해서다.

애매한 비밀들도 있다. 나를 중간자로 삼으려 드는 말이다. 자신한테는 어려운 사람이기에 나를 통해 이야기가 흘러들어 가길 바라는 경우다. 듣고 잊어버려야 할 말인지 전해야 하는 말인지 신중해져야 한다.

그렇게 머리 쓰고 마음 써야 하는 이야기들의 빈도에 따라 명절의 행복도가 정해진다. 온 세상에 떠들어도 별일 없는 이야기들이 많을수록 행복하다.

참, 조카가 아이를 낳았다. 아기가 퇴원을 하고 아기 침대에 누워 모빌을 보며 웃는다. 입을 '오' 오므리고 눈은 모빌을 따라간다. 조카와 조카며느리 웃음소리가 휴대폰을 따라 잔잔하게 번졌다.


빅마우스는 반갑지 않지만 좋은 소식 전하는 빅마우스는 참을만하다. 당신은 어떠신가?

빅마우스가 나를 쳐다보며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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