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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려 Sep 25. 2022

사랑연습


트와일라잇(Twilight)은 경계가 엉키는 시간, 무의식이 솟아올라 뚝뚝 눈물을 흘리는 시간이다.


어린 시절 나는 참 눈물 많은 아이였다. 박완서 님의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어린아이처럼, 하지만 누구의 등에 업히지 않고도 곧잘 울었다. 지는 해가 서러워서, 차가워지는 바람이 야속해서. 그렇게 눈물 많은 아이는 그중에 이별이 제일 서러웠다.

좋아하는 사촌언니나 삼촌들과 헤어질 때면 돌아오는 길 내내 울었다. 부모님이 많이 당혹스러우셨을 것이다.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면 아이는 누가 때리기라도 한 듯 눈물을 뚝뚝 흘렸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울었고 어떤 날은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어댔다. 아이도 이별이란 게 아무렇지도 않았으면 좋겠다고, 눈물 같은 거 안 흘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이별 연습을 시작했다.


부모님이 우는 자신을 힘들어하신다는 것을 알고 아이는 눈물을 참았다. 웃으며 작별인사를 하고 어른들이 안 보는 곳에서 눈물을 흘렸다. 차 안에서는 자는 척하며 눈물을 씹었다. 그렇게 연마된 기술이 있으니 소리 내지 않고 울기였다. 어린 나는 베개를 다 적시도록 울면서도 옆 사람이 알지 못하게 할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울음이 아니었다. 그냥 마음이 저릿 거렸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이는 동화 '인어공주'를 읽고 자신이 물거품으로 이뤄졌을 거라는 상상을 했다. 아이는 종일 울어도 마르지 않는 눈물이 그 증거라고 생각했다. 인어공주가 사랑한 왕자에게는 관심도 없었다. 아이는 인어공주의 숙명이 아파서 울었다. 인어공주는 원래 물거품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다.

 

사춘기가 된 아이는 더 이상 사람들 앞에서 울지 않는 법을 배웠다. 대신 속으로 우는 법을 배웠다. 마음속에 물방울들이 쌓였고 아이는 몽글몽글 마음속까지 물거품이 되었다.


사회인이 된 아이는 물기를 말리는 법을 배웠다. 눈물은 약자라는 증거처럼 느껴졌고 어느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물기를 말렸다. 몸도, 마음도.... 말라갔다. 물거품인 아이는 자신의 존재가 소멸되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게 숙명인 것처럼.


그러던 어느 날 그 사람의 눈빛 하나로 아이는 봄 햇살에 터진 목련 꽃망울처럼 자신의 물방울을 터뜨렸다. 사랑을 시작한 아이는 울어도 된다고 자신을 토닥거렸다.


그렇게 난 참 눈물이 많은 아줌마가 되었다. 그중에 이별은 어린 날처럼 아직도 힘들다. 우리 집에서 놀다 가시는 친정어머니를 기차역에서 배웅하면서 눈물을 훔친다. 이층 난간에서 잘 가라고 손을 흔드시는 시어머니의 하얀 머리카락을 보고 급하게 고개를 돌린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눈가로 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마음속 수도꼭지를 잘 잠가야 한다. 아무리 해도 이별은 어렵다.


큰 아이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아무도 없는 버스 정류장에서 아이를 안았다.

"몸조심하고, 문단속 잘하고..."

길어지는 포옹에 아이가 부담스러워하는 게 느껴졌다.

"사랑해, 우리 딸."

급하게 마무리 인사를 하고 아이를 놓아주는데 눈물이 또 핑 돈다. 눈물 많은 나 때문에 아이들도 남편도 힘들 것이다. 아이가 미안했는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말했다.

"엄마, 우리 2주 있다가 볼 거잖아요."

"그렇네."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것처럼 눈물을 삼켰다.


차 타러 가는 길, 남편이 내 손을 꼭 잡았다. 물거품으로 만들어진 아내를 지키느라 이 사람 고생이 많다. 남편이 말했다.

"어제 광안리 노을 멋있었죠?"


난 개인적으로 광안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해변에 서 있으면 바다를 가로지르는 광안대교와 육지의 높은 건물들에 둘러싸여 답답하다. 하지만 어제 광안리의 밤은 향기로웠다. 노을은 붉게 타올랐고 갈매기들은 눈앞에서 날쌘 몸을 자랑했다. 해변가 한 편에서는 고등학생들이 번갈아가며 버스킹을 하고 있었다. 학생들의 맑은 노랫소리는 파도 소리와 어울려 사람이 자연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리고 침샘 돌게 하는 숯불구이 냄새와 3백 대의 드론 쇼까지.

나는 남편과 잡은 손에 힘을 주고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오는 차 안, 열심히 제 갈 길들을 가는 양떼 구름들을 바라보며 내가 해야 할 일은 이별 연습이 아니라 사랑 연습이 아닐까,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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