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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려 Jan 10. 2022

안면인식 장애

웃고 싶어 쓴 글


드라마 지리산을 보고 있었다.

"전지현이네" 했더니 남편이 저 배우가 전지현이 맞냐고 한다. 자기가 아는 사람이 아니라고 전지현이 아니라고 한다.

식당에서 비빔 밀면과 장칼국수를 먹으면서 벽걸이 티브이를 보다가 벌어진 사태다.

딸과 나는 전지현이 맞다고 했지만 남편은 전지현 맞냐고 얼굴이 다르다며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남편은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 오고 가다 주어 보는 드라마가 전부다.

남편에게 물었다.

"자기야 솔직히 말해. 자기  전지현 모르지?"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어쩌다 같이 드라마를 볼 때면 남편은 항상 물었다.

"김태희예요?"

김태희가 아닐 때가 10번이었고 어쩌다 한 번은 맞았다. 멈춰버린 시계가 하루에 한 번은 맞는 것처럼.

전혀 다르게 생겼는데 남편은 김태희라고 했고 아니라고 하면 김태희랑 똑같이 생겼다고 했다.

시댁에서 식구들과 드라마를 보면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는데 남편은 시어머니와 누나들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장나라를 김태희라고 우겼다.

그때 남편에게 물었었다.

"자기 솔직히 말해보세요. 자기가 아는 여배우 이름 김태희 밖에 없죠!"


지난해 여름이었다. 저온저장고로 가는 리프트 설치로 집안이 종일 시끄러웠다. 둘째 딸과 나는 시내에 있는 카페로 피신을 가기로 했다. 코로나 때문에 방학인데도 집안에만 갇혀 지내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외출이었지만  간만의 일이라 딸과 나는 조금 설렜었다. 그런데 차 좀 빼 달라고 아빠한테 말하러 나갔던 딸이 시무룩해져서 들어왔다.

"왜 그래?"

"아빠가 화내면서 왜 차 빼 줘야 하녜요."

"엉?" 하며 나갔더니 남편이 민망하게 웃으며 말한다.

"차 잘 세워놨는데 어떤 아가씨가 와서 갑자기 차 빼 달라고 하니까 놀랬지. 딸! 못 알아봐서 미안해. 공사에 신경이 팔렸었나 봐."

아무리 딸이 오래간만에 화장을 하고 마스크를 썼다지만? 아무리 공사하느라 힘이 든다지만?

딸을 못 알아보다니... 심각한 거 아닌가?

마음 상한 딸을 달래며 주인공 남자 배우가 안면인식 장애로 나오는 드라마 이야기를 나눴다.

"아무래도 아빠 안면인식 장앤가 보다. 흐흐..."


몇 달 전 조카 결혼식이 있었다. '위드 코로나' 때라 곱게 화장을 하고 손님을 맞았다.

서울 간 김에 대학교 때 친구들 세 명을 만나 파자마 파티도 했다. 오랜만에 '풀 메이크업'을 받고 온 나를 보며 그날 밤 친구들은 화장의 위대함을 논했다.

다음 날 선크림만 바르고 호텔 방문을 나서는데 친구들이 화장 좀 하고 가라고 한 마디씩 한다.

"어제랑 너무 큰 차이가 나는 거 아냐? 네 남편이 실망하면 어떻게 하니?"

마스크를 쓰면서 대답했다.

"괜찮아, 애 아빠 안면인식 장애야. 눈동자만 보여주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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