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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려 Aug 20. 2022

구성산회관 버스정류장에서

거꾸로 가는 기차


  크게 베어 문 사과가 날아오른다. 햇살 아래 부서지는 둥근 , 태양이 아닌 구체는 아스팔트 위로 떨어져  속을 터뜨. 데구루루,  옆으로 어린 동생의 얼굴이 겹쳐졌다. 눈을 꼭 감고 아스팔트 위로 떨어진다. 쿵. 8차선 대로의 차들이 슬로모션처럼 흐르다 춘다. 친구들 얼굴이 헉헉거린다. 도로를 가르는 하얀 비명. 언덕  이층 집에서 엄마가 뛰어내려온다. 엄마의 맨발,  뒤로 엄마의 신발을 두 손에 들고 쫓아오는 이모가 보인다. 웃기지 않은데 푹, 웃음이 나온다.

그대로 멈춰라. 빙글빙글 돌고 도는 순간들, 그대로 멈춰라. 그대로 멈춰라.


이제는 버스 정류장이 되어버린 도로 한가운데 서서 45년 전을 바라본다. 언덕  이층 집에서 일곱 살, 여덟 살 남매가 떨고 있다. 문을 돌아보고 돌아본다. 동생 손을 잡고 아빠 엄마가 돌아왔으면 좋겠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동생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고 회초리를 때렸으면 좋겠다. 남매는 울지도 못하고 아빠, 엄마를 기다렸다. 동생을 기다렸다.

전화벨이 울렸다.  뒤 복숭아 밭을      있는 전화기라고 했다. 아빠가  전화기를 들고   엄마는 화를 고 두 분은 크게 다퉜.  무서운 전화기가 울렸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들을 보낸다.    , 백색 전화기 때문에 엄마 것이 되지 못했던 복숭아  위로 집들이 주렁주렁 열려 있다. 언덕을 가리는 7 건물을 지워버리고 3 빌라를 옮긴다. 올망졸망한 집들만 남기고 나니  시절이 보인다. 학교 가던  보도블록은 45 헤쳐졌을까? 길모퉁이를 돌다가 익숙한 옹벽 발견했다. 덧바른 콘크리트는 부스러져 내렸고 비탈 모서리에 박힌 돌들만 세월을 품었

학교 가는 , 좌회전을 할 때면 왼발에 힘이 들어갔다. 지반이 낮아진 비탈을 돌덩어리들이 힘겹게 밀어대고 있었다. 붉은 흙을 묻힌 돌들은 어린 손을 모아 댐 구멍을 막고 있는  같았다. 사람들은 왼발에 힘을 주고 모서리를 돌았고 자전거는 회전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삑삑 브레이크를 밟아댔었지. 어린 마음에 그 돌들이 나 같아서 '무너지지 마', 눈으로 토닥거리며 왼발에 힘을 뺐었는데  돌담이 남아 내가 다니던 길이었음을 짚어.


하얀 전화기에서 아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의식이 돌아왔고 수술이  끝났다고 했다. 쳐다보지도 않던 전화기를 쓰다듬고 쓰다듬어 주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동생을 보러 갔다. 하얀 병실에서 동생이 웃고 있었다.  느리고 힘만 세다고 바보라고 놀렸었는데  바보 같은 동생이 웃었다. 머리에 붕대를 둘둘 감싸고 퉁퉁 부은 눈으로…. 머리를 다쳐서 동생이 진짜 바보가 되었다고 해도 이젠 다시는 동생을 바보라고 놀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안아주고 손을  잡고 길을 건널 거라고 다짐했다.


동생이 바나나를 내밀었다. 그 시절 보기도 힘들었던 노란 바나나를 오빠와 나에게 하나씩 내밀었다.

“오빠랑 누나 줄려고”

동생은 내가 오빠를 오빠라고 부른다고 형을 오빠라고 불렀다. 오빠는 그냥 오빠라고 생각하던 4 살 짜리 동생이 제 것을 아껴 바나나를 내밀었다,

 먹으라고 돌려주었다. 동생이  환하게 웃으며 껍질을 까서는 꿀꺽 삼켜버렸다. 하얀 속을 잃어버린 노란 껍질이 테이블 위에 남겨졌다. 어린 나도  속이 탐났을 것이다. 아까운 마음을 감추려 창문으로 눈을 돌렸다. 작은 화분 하나가 놓여 있었다. 칼날 같은 잎새와 단단하고 두꺼운  위로 붉은 꽃이 다부지게 앉아 있었다. 꽃잎을 살짝 제치면 엄지공주가 새초롬 앉아 있을 것 같았다. 튤립이었다. 나는 튤립을 첫눈에 사랑하게 되었다. 아름답고 튼튼한 꽃이 좋았다. 동생이 회복될 거라는 징조 같았다. 동생은 이 꽃보다 더 튼튼한 사람일 것이다. 나도 튤립 같은 사람이 돼야지, 다짐했었.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너 버스 정류장으로 오고 버스를 타고 떠나간다. 왕복 팔 차선 한가운데, 횡단보도 하나 없던 그곳에 아이들이  있었다. 연희동과 연남동을 가르는 큰길. 연남동에 사는 친구들을 만나러 가려면 아이들은  길을 건너야 했다. 여자애들은 여자애들끼리, 남자애들은 남자애들끼리 손을 잡고 뭉쳐 있었다. 제일 컸던 오빠가 '건너, ' 소리를 치면 아이들은 달리곤 했다

교통사고가 난 날, 동생은 아직 형이 아닌 오빠가 건너라고  소리를 들었다고 했고 오빠는 그런 말을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어떤 어른들도, 길을 같이 건너던 아이들도  진위를 가리려 들지 않았다.

퇴원을 한 동생이 길 한복판에 길게 그려진 횡단보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나 때문에 생겼다.”

의기양양한 동생의 웃음 위로 아빠를 쳐다보. 아빠가 고개를 끄덕였다.  횡단보도는 동생의 사고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후로 모든 횡단보도를  때마다 이곳에선 어떤 사람에게 어떤 사고가 났을까, 궁금해졌다.  사람들은 무사할까, 걱정이 되었다.

동생은 한동안 그 하얀 줄들을 가리키며 웃었지만 그 길을 건너지는 않았다. 동네 아이들도 어른들 없이는 그 길을 건너지 않았다. 나에게 연희동과 연남동은 그렇게 갈라졌었다.


연남동 친척 집에서 걸어 나와 이곳에 서 있으니 연희동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신은 인간의 뒷걸음질에서 공간만 남기고 시간을 뺏어 갔지만 왜 기억의 뒷걸음질에겐 시간을 허락한 것일까? 

(소려의 못된 시 거꾸로 가는 기차 https://brunch.co.kr/@hyec777/312/write)


버스를 보내고 보내고 과거로 돌아가던 나는 오롯이 혼자가 된다. 바람이 느려지더니 어느새 멈춘다. 시간이 팽창하고 물건들이 길게 늘어진다. 아~, 튀어 오르는 사과 하나, 햇볕을 가리고 멈춘다.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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