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입크게베어 문사과가날아오른다. 햇살아래부서지는둥근원, 태양이아닌구체는아스팔트위로떨어져제속을터뜨렸다. 데구루루,그옆으로어린동생의얼굴이겹쳐졌다. 눈을 꼭 감고 아스팔트 위로 떨어진다. 쿵. 8차선대로의차들이슬로모션처럼흐르다멈춘다. 친구들 얼굴이헉헉거린다.도로를가르는하얀 비명. 언덕위이층 집에서엄마가 뛰어내려온다. 엄마의 맨발, 그뒤로 엄마의신발을 두 손에 들고쫓아오는 이모가 보인다. 웃기지 않은데 푹, 웃음이 나온다.
그대로 멈춰라. 빙글빙글 돌고 도는 순간들, 그대로 멈춰라. 그대로 멈춰라.
이제는버스정류장이되어버린도로 한가운데서서45년 전을바라본다. 언덕위이층집에서일곱 살,여덟 살남매가떨고있다. 문을 돌아보고 돌아본다. 동생손을잡고아빠엄마가돌아왔으면좋겠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동생을제대로돌보지못했다고회초리를때렸으면좋겠다. 남매는울지도못하고아빠, 엄마를기다렸다. 동생을기다렸다.
전화벨이울렸다. 집뒤 복숭아밭을몇백평살수있는전화기라고했다. 아빠가 그전화기를들고온날엄마는화를냈고 두 분은 크게 다퉜다. 그무서운전화기가울렸다.
학교가는길, 좌회전을 할 때면왼발에힘이들어갔다. 지반이낮아진비탈을돌덩어리들이힘겹게밀어대고있었다. 붉은흙을묻힌돌들은어린손을모아댐 구멍을막고있는것같았다. 사람들은왼발에힘을주고모서리를돌았고자전거는회전 속도를이기지못하고삑삑브레이크를밟아댔었지. 어린 마음에 그 돌들이 나 같아서 '무너지지 마',눈으로토닥거리며왼발에힘을뺐었는데그돌담이남아내가다니던길이었음을짚어준다.
하얀 전화기에서아빠목소리가흘러나왔다. 의식이돌아왔고수술이잘끝났다고했다. 쳐다보지도않던전화기를쓰다듬고쓰다듬어 주었다. 며칠이지났을까,동생을보러 갔다.하얀병실에서동생이웃고있었다. 말느리고힘만 세다고바보라고놀렸었는데그바보 같은동생이웃었다. 머리에붕대를둘둘감싸고퉁퉁 부은눈으로…. 머리를다쳐서동생이진짜바보가되었다고해도이젠다시는동생을바보라고놀리지않겠다고다짐했다. 꼭안아주고손을꼭잡고길을건널 거라고다짐했다.
동생이 바나나를 내밀었다. 그 시절 보기도 힘들었던 노란 바나나를 오빠와 나에게 하나씩 내밀었다.
“오빠랑 누나 줄려고”
동생은 내가 오빠를 오빠라고 부른다고 형을 오빠라고 불렀다. 오빠는 그냥 오빠라고 생각하던 4 살 짜리 동생이 제 것을 아껴 바나나를 내밀었다,
너먹으라고돌려주었다.동생이더환하게웃으며껍질을까서는꿀꺽삼켜버렸다. 하얀속을잃어버린노란껍질이테이블위에남겨졌다. 어린나도그속이탐났을것이다. 아까운마음을감추려창문으로눈을돌렸다. 작은화분하나가놓여있었다. 칼날같은잎새와단단하고 두꺼운목위로붉은꽃이다부지게앉아있었다. 꽃잎을 살짝 제치면 엄지공주가 새초롬 앉아 있을 것 같았다. 튤립이었다. 나는튤립을 첫눈에 사랑하게되었다. 아름답고튼튼한꽃이 좋았다. 동생이 회복될 거라는 징조 같았다. 동생은 이 꽃보다 더 튼튼한 사람일 것이다. 나도튤립같은사람이돼야지, 다짐했었다.
사람들이횡단보도를건너버스정류장으로오고버스를타고떠나간다. 왕복팔 차선한가운데, 횡단보도하나없던그곳에아이들이서있었다. 연희동과연남동을가르는큰길.연남동에사는친구들을만나러가려면아이들은그길을건너야했다. 여자애들은여자애들끼리,남자애들은남자애들끼리 손을 잡고 뭉쳐 있었다. 제일컸던오빠가 '건너, '소리를치면아이들은달리곤했다.
교통사고가 난 날, 동생은아직형이아닌오빠가건너라고한소리를들었다고했고오빠는그런말을한적이없다고했다. 하지만어떤어른들도,길을같이건너던아이들도그진위를가리려들지않았다.
퇴원을 한 동생이 길 한복판에 길게 그려진 횡단보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나 때문에 생겼다.”
의기양양한동생의웃음위로 아빠를쳐다보았다. 아빠가고개를 끄덕였다. 그횡단보도는동생의 사고 때문에생긴것이었다. 난그후로모든횡단보도를볼때마다이곳에선어떤사람에게 어떤 사고가났을까, 궁금해졌다. 그사람들은무사할까, 걱정이 되었다.
동생은 한동안 그 하얀 줄들을 가리키며 웃었지만 그 길을 건너지는 않았다. 동네 아이들도 어른들 없이는 그 길을 건너지 않았다. 나에게 연희동과 연남동은 그렇게 갈라졌었다.
연남동 친척 집에서 걸어 나와 이곳에 서 있으니 연희동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신은 인간의 뒷걸음질에서 공간만 남기고 시간을 뺏어 갔지만 왜 기억의 뒷걸음질에겐 시간을 허락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