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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려 Aug 18. 2022

오늘 태어났습니다


불사조는 죽지 않는 새인 줄 알았다. 죽음이란 것이 무서워 인간들이 만든 새라고 생각했다. 타락한 자신을 불태우고 다시 태어나는 새인 줄 몰랐다.

태어나기 위해 죽어야 하는 새. 명료하지 않은가. 혼돈으로 흘러가는 엔트로피가 법칙이 되었다. 태어나 세상을 알고 더럽혀졌다면 다시 태어나야 한다. 불사조는 자신의 몸을 태우는 고통을 견뎌내기에 부활한다.


오늘 태어난 는 다시 태어나기 위해 겪었던 고통을 모른다. 오늘을 숨 쉬고 세상을 느끼기도 바쁘다.


나는 오늘 태어났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바람이 뭔지 모르고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도 모른다. 숨을 쉬고 내쉰다. 들숨 날숨이 바람이 되어 내 볼을 스친다는 것은 먼 훗날 깨닫는다. 눈을 뜬다. 환한 빛, 날이 밝지 않아도 처음 눈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은 찬란하다. 가슴이 두근거리다가 아프다. 그게 설렘이고 두려움이란 건 또 먼 훗날 깨닫겠지. 어떤 단어도 대지 않고 온전히 내 몸을 느낀다, 마음을 느낀다. 어제의 나는 모두 태워졌기에 난 무엇이 좋은지 나쁜지도 모른다. 그냥 나다.


노을을 볼 때마다 태양을 향해 달려드는 구름들이 부러웠다. 긴 날개를 펼치고 햇살처럼 주홍빛으로 날아오르다 사라지는 구름들. 그 속에 내 시름을 몰래 얹어 놓기도 했었다. 구름들이 사라지고 그 시름들이 부서져 내릴 때 내 아픔은 내가 지고 가야 한다고 다시 나를 탓하곤 했었다. 그런데 지고 가야 할 것들이 있을까? 내 영혼조차 사라질 것을.... 감정에 젖어 영혼의 무게만 늘리고 있었다.


빗줄기가 굵어지려나 보다. 크고 작은 나방들과 노린재, 여치까지 방충망을 붙잡고 매달린다.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가겠다고 창문 틈을 파고든다. 좁은 구멍 속, 저 속은 아늑하겠지? 날개를 접고 더듬이를 모아 몸을 비틀다가 탁, 넓고 환하다. 살았다고 날개를 퍼득 거렸을 뿐인데 비명소리, 날아드는 파리채. 몸이 납작해진다.

저 벌레는 이곳이 천국인 줄 알았을까?


오늘 태어났습니다. 큰 소리로 외쳐본다.

이곳은 천국일까? 지옥일까? 불사조는 어떤 생각을 하며 자신을 태울까? 다시 태어나면 어떤 생각이 들까?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기 위해서는 날개를 펼쳐야 한다. 살아봐야 안다.


내가 갓 태어났을 때 무엇을 바랐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대신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더 해줬으면 좋았을 게 무엇인가 생각을 더듬는다. 더 안아주고 노래 불러주고 웃어주고....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이 아니라면 잔소리하지 않고 걱정의 눈빛조차 거두고 버려두는 것. 제 몸으로 제 맘으로 이 세상을 느끼도록 버려두는 것.


오늘 태어난 내가 해야 할 일이 단순해졌다. 주위의 시선을 버리는 것. 아내, 며느리라는 그리고 딸이자 엄마라는 틀을 버리고 한 생명체로 숨을 쉬는 것.

갓난아기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듯 나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말자. 그냥 살아보자. 오늘 태어난 나를 위해 날개를 펴자. 나를 후려치겠다고 달려오는 파리채 위에서  멋지게 한 번 미끄러지자. 어둑한 구석이라도 상관없다.

날아올라 날아올라.... 나로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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