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조는 죽지 않는 새인 줄 알았다. 죽음이란 것이 무서워 인간들이 만든 새라고 생각했다. 타락한 자신을 불태우고 다시 태어나는 새인 줄 몰랐다.
태어나기 위해 죽어야 하는 새. 명료하지 않은가. 혼돈으로 흘러가는 엔트로피가 법칙이 되었다. 태어나 세상을 알고 더럽혀졌다면 다시 태어나야 한다. 불사조는 자신의 몸을 태우는 고통을 견뎌내기에 부활한다.
오늘 태어난 새는 다시 태어나기 위해 겪었던 고통을 모른다. 오늘을 숨 쉬고 세상을 느끼기도 바쁘다.
나는 오늘 태어났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바람이 뭔지 모르고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도 모른다. 숨을 쉬고 내쉰다. 들숨 날숨이 바람이 되어 내 볼을 스친다는 것은 먼 훗날 깨닫는다. 눈을 뜬다. 환한 빛, 날이 밝지 않아도 처음 눈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은 찬란하다. 가슴이 두근거리다가 아프다. 그게 설렘이고 두려움이란 건 또 먼 훗날 깨닫겠지. 어떤 단어도 대지 않고 온전히 내 몸을 느낀다, 마음을 느낀다. 어제의 나는 모두 태워졌기에 난 무엇이 좋은지 나쁜지도 모른다. 그냥 나다.
노을을 볼 때마다 태양을 향해 달려드는 구름들이 부러웠다. 긴 날개를 펼치고 햇살처럼 주홍빛으로 날아오르다 사라지는 구름들. 그 속에 내 시름을 몰래 얹어 놓기도 했었다. 구름들이 사라지고 그 시름들이 부서져 내릴 때 내 아픔은 내가 지고 가야 한다고 다시 나를 탓하곤 했었다. 그런데 지고 가야 할 것들이 있을까? 내 영혼조차 사라질 것을.... 감정에 젖어 영혼의 무게만 늘리고 있었다.
빗줄기가 굵어지려나 보다. 크고 작은 나방들과 노린재, 여치까지 방충망을 붙잡고 매달린다.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가겠다고 창문 틈을 파고든다. 좁은 구멍 속, 저 속은 아늑하겠지? 날개를 접고 더듬이를 모아 몸을 비틀다가 탁, 넓고 환하다. 살았다고 날개를 퍼득 거렸을 뿐인데 비명소리, 날아드는 파리채. 몸이 납작해진다.
저 벌레는 이곳이 천국인 줄 알았을까?
오늘 태어났습니다. 큰 소리로 외쳐본다.
이곳은 천국일까? 지옥일까? 불사조는 어떤 생각을 하며 자신을 태울까? 다시 태어나면 어떤 생각이 들까?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기 위해서는 날개를 펼쳐야 한다. 살아봐야 안다.
내가 갓 태어났을 때 무엇을 바랐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대신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더 해줬으면 좋았을 게 무엇인가 생각을 더듬는다. 더 안아주고 노래 불러주고 웃어주고....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이 아니라면 잔소리하지 않고 걱정의 눈빛조차 거두고 버려두는 것. 제 몸으로 제 맘으로 이 세상을 느끼도록 버려두는 것.
오늘 태어난 내가 해야 할 일이 단순해졌다. 주위의 시선을 버리는 것. 아내, 며느리라는 그리고 딸이자 엄마라는 틀을 버리고 한 생명체로 숨을 쉬는 것.
갓난아기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듯 나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말자. 그냥 살아보자. 오늘 태어난 나를 위해 날개를 펴자. 나를 후려치겠다고 달려오는 파리채 위에서 멋지게 한 번 미끄러지자. 어둑한 구석이라도 상관없다.
날아올라 날아올라.... 나로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