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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려 Nov 18. 2022

1989!!

이야기의 끝

<'1989!'에서 이어지이야기입니다.>


그 군인은 나에게 병원 카드를 건네주며 말했다.

"가시오."

내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카드를 건네받는 동안 그 군인이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는 누가 불러도 돌아보면 안 됩니다. 혹시 누가 부르면 그냥 달리십시오."

군인은 그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보며 확답을 원했다.

"네."

나는 그 군인의 눈을 마주 보며 대답했다.


병원 카드를 신이 내리신 징표처럼 손에 꼭 쥐고 연세대학교로 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집으로 돌아가면 될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가 병원에 전화를 하고 예약 날짜를 다시 잡으면 될 일이었다.

모든 험한 일은 다 끝난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난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나를 놓아준 그 군인을 원망하고 있었다.

"그냥 집으로 가라고 말해주지!"

다음에 일어날 일은 그 군인이 마지막에 나에게 다짐시켰던 말의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한 나의 미숙함 때문이었다.




여기서 잠시 1989년으로부터 17년 후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나는 중국 베이징에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1학년이었던 두 딸은 국제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아이 친구들 엄마들이랑 어울려 다니곤 했는데 그중에 내가 좋아하던 한 엄마가 있었다.

그녀는 남편이 변호사였지만 다른 엄마들처럼 돈 내를 풍기지 않았다. 자신의 것을 내세우지도 않았고 그녀의 푸근한 미소처럼 편안해 보였다.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졌고 하루는 내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언니, 솔직히 말해봐. 언니 운동권이었지? 그것도 골수…."

나의 무례한 말에 그녀는 하늘을 보며 허허 웃기만 했다.


그날 밤 꿈을 꾸었다. 사람들한테 쫓기고 쫓기는 꿈이었다. 좁은 방문을 넘어 달리면서 그들 손에 들어가면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목을 조여왔다. 허걱, 가위에 눌리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일어나 벌벌 떨리는 몸을 감싸 앉으며 중얼거렸다.

"내가 남의 인생을 함부로 떠들었구나."


 다음 날 그녀를 만나 사과했다.

"언니, 미안해. 내가 너무 쉽게 언니의 인생을 떠들었어. 목숨 걸면서 살았을 그 시간들을…."

그녀는 예의 그녀의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었어. 남편이 많이 힘들었지."


그녀의 남편은 학생회 간부였고 대학교 때부터 숨어 다니느라 졸업이 늦어졌다고 했다. 이미 안기부 리스트에 른 탓에 그녀의 남편은 어느 곳에도 취직을 할 수가 없었다.

"변호사도 그래서 된 거야. 그나마 사법고시는 볼 수 있었거든."

잠시 후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운동을 하게 된 계기는 부끄럽지만 배가 고파서야."


그녀는 제주도에서 서울로 유학을 왔다고 했다.

국제학교 다니는 아이 친구 엄마들은 제주도란 말에 눈을 반짝이며 말하곤 했다.

"넓은 바다 보면서 학교 다니고 공부했으면 참 행복했겠다. 그래서  ♡♡엄마가 공부를 잘했구나."

그러면 그녀는 그녀 답지 않게 목청을 높여 몇 번이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제주도라고 다 바다가 보이는 게 아니거든. 난 시골 구석에 처박혀 살았었고 바다는 대학교 가는 날 처음 봤어."

그러면 다른 엄마들은 프랑스 귀족들처럼 과자를 먹으며 깔깔 웃었다. '에이, 설마' 하면서….


"대학을 갔는데 집에서 보내준 돈으로 학비를 내면 밥 먹을 돈이 없는 거야. 일반 회사에서는 학력이 고졸밖에 안 된다고 안 받아주더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공장에 갔지. 다달이 나오는 돈으로 밥을 먹고 방값을 해결했어. 그런데 어느 날 위장취업이라고 하면서 끌고 가는 거야. 공장에서도 쫓겨났지. 나는 정말 돈을 벌어 밥을 먹고 싶었을 뿐인데."

그녀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우리는 가난한 중국인들은 넘어올 수도 없는, 외국인들과 돈 많은 중국인들만 모여 사는 아파트 정원의 한가운데 앉아 있었다.

하늘은 뿌옜고 공기는 1989년 그녀의 배고팠던 시간으로 돌아가 있었다.

"지금은 너무 행복해.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배곯을 걱정은 안 하잖아."

그녀의 환한 미소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시간을 다시 돌리고 돌려 나의 1989년으로 돌아가 본다.

굴다리를 지나 연세대학교 정문 건너편에 서고 나서야 내가 예상한 것보다 큰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연세대학교 앞 8차선 도로에는 차가 한 대도 다니지 않고 있었다. 쌩쌩 공기를 가르는 차들 소리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재잘거리던 소리 한 줄기도 들리지 않았다.

굴다리 쪽에는 전경들이 몇 겹씩 겹쳐 서 있었고 그 끄트머리로 카메라를 든 수 십 명의 기자들이 보였다. 정문 쪽에는 숨 죽인 학생들 무리가 구름처럼 아득하게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내가 가야 할 병원 건물은 언덕 위에서 '어서 와, 예약시간 다 됐어.' 하며 초침을 세고 있었다.

한숨을 쉬며 돌아보았지만 신촌역으로 돌아갈 용기도 나지 않았다. 힐끔힐끔, 나를 보는 눈초리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시민들 사이를 파고들면서 전경들에게서 멀어지려고 노력했다. 아줌마들과 아저씨들이 나를 위해 길을 내주었고 다시 길을 가려주었다. 어느덧 인도 끝에 섰다.

'에라, 모르겠다. 또 누가 날 부르겠어?'

건너편 병원 문을 바라보다가 양쪽이 대치하고 있는 도로를 가로질러 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도로에 몇 걸음을 내디뎠을 때였다.


"저기요."

누군가 나를 불렀다. 돌아보니 어린 전경 하나가 나에게 팔을 뻗어 이리 오라는 손짓을 하고 있었다. 전경과 눈이 마주쳤다. 전경의 동그란 눈에서 '얼른 이리 와 , 안 그러면 나 힘들어.' 란 말과 '얼른 도망 가, 안 그러면 너 힘들어.'라는 말이 동시에 들렸다.

그제야 아까 그 군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누가 불러도 돌아보지 마."


내가 지옥에서 아내를 찾아 돌아오는 오르페우스도 아니고 세이렌의 노래를 뿌리치며 나아가야 하는 오디세우스도 아니고 이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이미 돌아봤으니 에우리디케가 되어 지옥 속으로 빨려 들어가야 하는 것일까? 에우리디케는 남편 탓이라도 한다지만 난 온전히 나의 탓이었다.

그때 번쩍 그 군인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달려!"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차 한 대, 사람 하나, 개 한 마리 발을 딛지 않는 8차선 도로를 가로질렀다. 머릿속에서는 뒤에 있는 전경들이 나를 향해 최루탄을 쏘는 것 같았다. 앞에 있던 학생들 사이에서는 '와'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중앙차선을 밟았을 때는 양쪽에 대치한 사람들의 시선이 전투기 폭탄처럼 나에게 쏟아지는 것 같았다. 부상병처럼 한 걸음걸음이 무거웠다.  


겨우 병원 쪽 인도로 올라섰을 때는 42.195km를 달리고 결승선을 터치 다운한 것처럼 헉, 한숨이 나왔다. 그곳에는 나처럼 대동제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은 여러 학교의 학생들이 서 있었다. 그들 중 몇은 내가 동학혁명의 어느 파발처럼 중요한 소식을 들고 달려온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가 손이라도 들어 올리면 학생들은 박수라도 칠 기세였다.

부끄러웠다. 그 당시에는 부르주아의 상징이 될 수도 있는 치아 교정을 받기 위해 저 전경들을 통과해왔다는 것이. 고개를 푹 숙이고 병원 문으로 향했다.




병원 철문을 들어서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링거를 밀고 오고 갔고 면회객과 환자들이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곳에 있었던가? 아니면 이곳에 어떻게 들어와 있는 것일까? 궁금한 마음으로 치과 병동으로 들어가 진찰실 앞에 앉았다. 심장은 여전히 쿵쾅거리고 있었지만 방금 전에 벌어졌던 일은 모두 꿈같았다.


예약시간을 맞춰 온 덕에 나는 치과 의료대에 바로 누울 수 있었다. 1년 여 넘게 봐 온 간호사와 의사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오늘 학교에 무슨 일이 있나 봐요?"

의사 선생님이 아는 척을 하면 내 눈에서는 눈물이 텅 터질 것 같았다. 내가 이곳에 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읊어댈 것 같았다.

의사 선생님은 내 마음을 아셨는지 치료용 램프를 켜면서 말씀하셨다.

"네~. 아~, 크게 아~ 하세요."

선생님은 뺀치를 들어 내 입속의 철심 하나를 잘랐다. 툭 펴진 철사가 입 속 볼을 찔렀고 툭 피가 터져 나왔다. 나는 그 피를 핑계로 눈물 한줄기를 주르륵 흘렸다.




* 이야기의 끝에서... 그 당시는 계엄령이나 위수령이 아니라서 제가 군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전투복을 입은 전경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군인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사실 확인이 안 돼서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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