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려 Dec 04. 2022

플라시보와 피그말리온

엄마로 산다는 건…


"엄마, 쉬 마려요."

서울로 가는 국도변. 건물을 찾다가 아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에 남편은 길가에 차를 세웠다. 아이는 쭈그리고 앉았지만 소변을 보지 못했다. 화장실을 다녀온 지 30분도 안 됐고 아이는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다. 화장실 가고 싶을까 무섭다며 아이는 물 먹는 것도 꺼렸다.

큰 애가 만 세 돌을 넘겼을 때였다. 말 귀가 빨라 기저귀도 일찍 떼고 요에다 '실례' 한 번 한 적 없는 아이였다.


아이가 일명 '오줌소태'를 호소하니 나는 머릿속으로 병원을 찾고 있었다. 비뇨기과를 데려가야 하나? 소아 비뇨기과가 따로 있을까? 비뇨기과 약은 독하다던데 괜찮을까? 내 표정이 심각해지자 아이가 슬금슬금 내 눈치를 봤다. 아랫배를 쥐는 걸 보니 다시 요의가 느껴지나 보다. 

이천에서 출발해 그렇게 몇 번을 더 화장실을 찾다가 서울 시댁에 도착했다. 남편이 주차를 하는 동안 나는 아이 손을 잡고 약국으로 향했다.


시댁 옆에 있는 약국 약사님은 오랫동안 한 동네에 사신 분이라 우리와 잘 아는 사이였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약사님이 아는 척을 했다.

"아버님 제사라서 왔나 봐요. 어이구, 오늘은 꼬마 아가씨도 왔네."

"안녕하세요?" 아이는 두 손 모아 인사를 하면서도 표정이 어두웠다.

내가 목소리를 높여서 말했다.

"선생님, 우리 ^^이가 화장실을 자주 가네요. 쉬가 자주 마리 대요."

약사님이 아이를 한번 보고는 '그럼 비뇨기…'라고 말하시려던 찰나, 내가 말 꼬리를 잘라버렸다.

"선생님이 그 병에 용한 약을 알고 계시다고 해서 찾아왔어요."

크게 소리치듯 말해놓고 급하게 속삭였다.

"애들 먹어도 되는 비타민 같은 거 없나요?"

약사님이 눈치를 채시고는 같이 목소리를 높이셨다.

"그럼요. 있죠. 아주 좋은 약이…."

약사님은 은밀한 상자를 찾듯이 선반 밑을 뒤지더니 왠지 어른스럽게 생긴 약봉지를 하나 꺼내셨다. 다른 비타민 씨들과 달리 조그맣게 쓰여 있는 한 줄. '고급 비타민 C'.


약사님은 나에게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데스크에서 나와 아이를 보며 말씀하셨다.

"이 약 먹으면 처음엔 오줌이 노랗게 나올 거야. 그런데 놀랄 것 없어. 그때 나쁜 균이 다 빠져나가는 거니까."

아이는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만 끄덕였다.

 

아이 손을 잡고 시댁에 들어가면서도 머리는 복잡했다.

'내일까지도 계속 화장실에 드나들면 요로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몸에 이상이 있는 거라면 서둘러 병원을 가야 할 텐데.'

마음은 급했지만 어른들 걱정하실까 봐 얼굴에서 마음을 지웠다.


다음 날, 아이는 친척 어른들을 돌아가면서 붙잡고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어제 엄마가 사 준 약 먹고 이제는 화장실 안 가요."

어른들이 무슨 이야기냐며 쳐다보셨고 나는 어제 일을 소곤거렸다.

이미 아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쪼로록 달려 가는 아이 머리 위로 포니테일 하나가 달랑거렸다.





매거진 '사라질 기억들' 그중에서도 부제로 '엄마로 산다는 건…'을  쓰면서 나에게 다짐한 것이 있다.

좋은 기억들만 담자

엄마로 살아온 시간은 잘 한 일보다 그 몇 백배 못한 일들이 많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자다가도 한숨이 나오고 아이들에게 미안해질 때가 많다.

'그때 그런 말을 왜 했을까? 왜 그렇게 작은 일에 화를 냈지? 아이들 말을 더 들어줬어야 했는데.'  

긴 밤을 새운 적도 많았다.


난 좋은 엄마가 못된다. 많이 아팠다. 몸도 마음도…. 

성격도 한 가닥 해서 내가 화가 나면 집 안은 남극이 되었고 아이들은 펭귄처럼 뒤뚱거렸다.

"엄마가 화나면 엄마 주위로 아우라가 생겨요."

"무슨 아우라?"

내가 무슨 만화 주인공도 아니고. 하지만 아이들은 내 주위에서 활활 타오르는 붉고 푸른 아우라를 보았다고 했다.

"아무 말도 안 하는데?"

"말씀 안 하시는 게 더 무서워요. 제발 말씀해 주세요. 뭘 잘못했는지."

아마 나는 북극에서 남극까지 헤엄쳐 간 북극곰처럼 축 처져서는 히스테리를 부렸을 것이다. 아이들은 가끔 나타나는 괴생명체에 놀라 뒤뚱거리다 미끄러지고 엎어졌을 것이다.


위에 적은 일도 돌아보면 내가 아이를 불안하게 해서 생긴 일이었다. 차에 타면 화장실 못 가니까 미리 화장실 가라고 단속을 시켰고 시댁 가서 해야 할 일들에 눌려 내 표정은 안 좋았을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 마음을 부모 본인들보다 먼저 안다. 어린 나는 내 감정에 지쳐서 아이들을 힘들게 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데 과거의 짐들에 눌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내가 지금 해야 할 것을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졌다.


어느 날 궁금했었다. 문학작품 속에서도 티브이 속에서도 엄마를, 아빠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때로는 화가 난다고 했다. 그런 장면들 속에서 화자는 언제나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고 흘리지 않아도 뚝뚝 눈물이 보였다. 왜 사람들은 부모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픈 걸까? 


더 이상 고칠 수 없는 일들은 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반성할 수 있는 일들만 돌아보기로 했다. 반성하고 고친 후에는 그 기억조차 말끔히 시간 속에 묻어버리기로 했다.

그나마 내가 잘한 일들만 되새기기로 했다. 되새겨서 잘한 일들을 반복하고 키우고 키워서 새기기로 했다. 내 마음과 아이들 마음 깊이….


이제는 성인이 된 딸들에게 말했었다.

"나중에 나중에 엄마를 생각났을 때 우리 딸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엄마 잘 살고 있잖아? 그러니까 나중에 '우리 엄마 정말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먹고 싶은 거 다 드시다 가셨어' 즐겁게 엄마를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둘째가 멀뚱멀뚱 천장을 보았다.

"엄마가 잘못한 거 있으면 너희도 말해 주고…, 용서해줘."

 큰애가 입을 열었다.

"엄마가 그런 말씀 하시니까 지금 슬프잖아요."

"아이고, 미안! 그러면 엄마가 잘 한 일들 좀 말해주라."


이제부터 나는 피그말리온이 자신의 조각상을 사랑한 것처럼 엄마로서의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허상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어설프게 잘한 일들이라도 그 기억들을 꺼내보기로 했다. 그리고 나에게 '난 좋은 엄마'라고 칭찬해주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조금은 더 좋은 엄마, 조금은 더 행복한 엄마가 돼 있을 것 같다.

아이들도 내 생각을 하면 행복해질 것이다. "우리 엄마, 참 좋은 엄마야." 웃을 것이다.


그게 가짜 약으로 인한 플라시보 효과일지 간절히 바라다보면 이루어진다는 피그말리온 효과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 가고 먼 훗날, 아이들이 웃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 사진 연제구청 정원 조각 "자각의 상" 작가 조인구


매거진의 이전글 타인의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