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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려 Dec 01. 2022

타인의 삶


타인의 삶은 언제나 아름다워 보인다.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태양 아래 구릿빛 피부를 한 농부의 땀방울 하나하나가 열매가 되는 착각을 한다.

글을 쓴다고 하면 테이블 위 노트북과 하얀 종이 그리고 하얀 손이 고급 만년필과 커피잔을 번갈아 쥐는 모습이 떠오른다.


타인의 삶은 언제나 여유로워 보인다.

전화 소리는 따르르릉 박자를 넣어준다. 서류를 건네받고 검토하는 사람들은 우아하게 뛰어다니고 한숨소리는 넓고 고요하게 퍼져 간다.

노랗고 붉은 낙엽을 쓰는 청소 미화원의 손길은 굳세고 바람결에 날리는 헛일에도 빈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삶이 되면 모든 것은 바뀐다.

상추 한 잎을 따기 위해서도 흙을 밟아야 하고 벌레를 만지기도 한다. 햇살은 뜨겁거나  바람은 차다.

글을 쓸 때면 온갖 생각에 머리는 욱신거리고 손가락과 어깨도 머리와 짝을 이뤄 온 몸을 쏘아댄다.


내 삶이 되면 모든 것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전화소리는 입 안에 든 물 한 모금조차 삼킬 순간을 허락하지 않고 서류 위의 글과 숫자들은 빨리 나를 해결하라며 소리를 질러댄다. 거기에 상사나 어른이라도 끼어드는 날이면 시간은 해결이란 단어를 향해 영혼을 팔아야 한다.

마당 위의 낙엽은 말라비틀어져 먼지가 되고 집안 바닥은 세상에서 묻혀온 지끄러기와 나의 삶의 부스러기로 버스럭거린다.


타인의 삶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냄새가 단절되기 때문이다. 타인의 삶이 여유로워 보이는 것은 감촉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객관적일 수 없고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잘도 말한다.

"그까짓 것 제대로 못해?"

그 속에서 현실의 냄새를 맡고 현실을 만지는 사람들을 함부로 폄하한다. 나도 다 해봐서 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과거일 뿐 현재가 아니다. 날씨가 다르고 바람이 다르고 무엇보다 사람이 다르고 사회가 다르다.




중국 베이징 아파트 26층 위였다. 그날은 몇십 년 만의 추위라고 했다. 나는 따뜻한 차 한잔을 들고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저 멀리 한 사람이 리어카를 끌고 있었다. 그 위에 아줌마 하나가 짐처럼 앉아 있었다.

누군가의 짐을 날라주고 돌아가는 길일까? 아니면 일거리가 없어 허탕을 치고 돌아가는 길일까?

그들은 추위와 상관없이 앉아 있고 걸어가고 있었다. 나와 그 사람들의 거리가 단지 거리가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이 서늘해졌지만 나는 그들의 추위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중국에서 농담처럼 전해 들은 이야기가 있다. 중국은 한 여름 아무리 더워도 기온이 40도를 넘지 않는다고 했다. 날씨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나의 어리석은 물음에 그가 답했었다.

"중국에서는 40도가 넘으면 법적으로 모든 야외 노동이 금지됩니다. 하지만 덥다고 노동자들을 쉬게 할 수는 없으니까 40도가 넘을 때도 일기예보에서는 기온이 40도가 넘는다고 보도하지 않는 거죠."

그 소리를 확인하고 싶었다. 중국 관영 티브이를 틀어놓고 한 여름에 일기예보를 지켜보았었다. 베이징부터 중국의 그 많은 도시를 훑고 가는 동안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그 사람이 전해주었던 40도에 대한 괴담은 사실인지 확인하지 못했다. 한 가지 기억하는 것은 정말 기묘하게 내가 일기예보를 본 날은 저 남쪽 지방도 40도를 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나라도 한파 주위보가 곳곳에 내려졌지만 중국 대륙의 한파가 심상치 않다. 노동자들이 동사를 당했다는 뉴스를 보고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그들의 삶이 떠올랐다.


난방이 되지 않는 곳이라도 실내면 다행일 것이다.  

중국에 몇 년 살았다고... 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언 땅을 파고 눈을 치우라고 추위 한가운데로 사람들을 내몰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돈을 위해 그 길을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 어설픈 앎이 무섭다.

그들의 일기예보는 무어라 할까 잠시 궁금했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 있을까, 천박한 궁금증을 버렸다.


오늘은 유난히 중국의 노동자들이 떠오르는 밤이다.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하루 일당 3, 4천 원을 벌기 위해 목숨을 걸고 나가는 사람들이….


그리고 우리나라의 어딘가에도 상상할 수 없는 타인의 삶이 있지 않을까 두려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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