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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려 Dec 08. 2022

산 위에 뭐가 있어?


소설가의 아내가 물었다.

"산 위에 뭐가 있어?"

산으로 올라가는 갈림길에서 헤어졌던 남편이었다. 아내는 남편이 그때의 그 사람이 아니란 걸 직감적으로 느낀다. 하지만 남편은 대답하지 못한다. 소설가라도 자신의 변화를 설명할 수 없었던 남편이 말한다.

"다음에 같이 가자."


김영화의 여행기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의 한 대목을 재해석한 것이다. 그의 아내도 나도 소설가와 함께 산 위에 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위에 무엇이 있었음을 안다.


난 여기서 잠시 갈등했다. 소설가가 될 것인가? 소설가의 아내가 될 것인가? 그 누구도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갈림길에 선다. 아득한 삶의 한 자락을 잡아보고 싶다.


나는 김영하의 스쿠터에 탄다. 그의 뒷자리가 아니라 그가 되어 스쿠터의 핸들을 잡는다. 부다다다, 메뚜기 같은 스쿠터에 앉아 땅의 돌들을 느낀다. 바닷바람에 부스러진 아스팔트를 벗어나면 흙길이다. 먼지가 인다. 웃음이 새어 나오지만 참아야 한다. 안경을 쓰고도 들러붙는 흙먼지는 세포처럼 잘다.


가파른 산길을 돌아 돌아 정상에 선다. 아, 터지는 소리. 예고 없던 자연에 온 몸이 스며든다. 바람이 된다. 바다가 된다. 시칠리아의 작은 섬 리파리의 해안 절벽 위에 서서 소설가는 자신을 잊는다. 자신을 버린다.


더 이상 방금 전의 나일 수 없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터닝 포인트'라고 하기엔 모자라다. 돌아가는 지점이 아니라 새로 태어나는 순간이다.

그 순간에도 흑백이 있다. 루시퍼가 될 것인가? 가브리엘이 될 것인가?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나다. 나의 본성이다.


오늘은 순한 본능을 깨운다. 산 위에 올라 바람이 되었다가 절벽을 구르는 돌이 되었다가. 풍덩, 바다가 되었다가 다시 나로 깨어난다.


소설가의 아내는 새로 태어난 남편이 낯설다. 그래서 묻는다.

"산 위에 뭐가 있어?"


나의 산 위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 무엇은 나의 어떤 본성을 깨울 것인가?

그전에 산 위에 올라야 할 것이다.



*참고도서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김영하 지음. 랜덤하우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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