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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려 Dec 11. 2022

나 살고 싶어

고요! 이곳은 어디?

텅 빈 딸 집에서 티브이 리모컨을 돌리다가 영화를 봤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자극적인 제목과 일본 영화라서 보지 않았었다. 그런데 좋다,라고 했다. 수작이라고 했다.

운이 좋았다. 영화가 막 시작됐다.

영화관에 숨을 헐떡거리고 뛰어들어와 앉은 기분이었다. 영화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았다.

다행이다. 숨은 여전히 가빴지만 나는 영화에 빠져든다. 

고요.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만이 내가 관객임을 일깨워준다.


어린 시절 한 때 유행했던 '하이틴 로맨스'에 불치병을 접목해놓은 그렇고 그런 영화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이틴 로맨스를 불치병이란 이유로 용서해야 한다고 강요할 줄 알았다.

그런데...

하이틴 로맨스는 삶을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사춘기 소녀가 죽음을 앞두고 웃을 수 있고 그래서 얼마 안 남은 은 시간을 사랑할 수 있는 이유였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더 이상 그 문장은 자극적이지 않았다. 무섭지도 않았고 사람들 시선을 끌기 위해 지은 제목이 아니란 것도 알게 되었다.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 '그렇고 그런 말로' 바꿔본다.

"나 살고 싶어. 너와 함께. 영혼이라도…."


한참을 울다가 고요.

흔한 감상평은 접기로 한다.

어린 소녀가 웃으며 말한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응, 나도..."



* 사진 속 꽃은

 

  겨울 마당 한자락 

  가지 끝에 피어난 사과꽃 세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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