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읽는 아이들 책 <담을 넘은 아이>

by 혜담

<담을 넘은 아이_김정민 글, 이영환 그림, 비룡소>


논술 수업할 때 나를 힘들게 하는 것 중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재미없는 필독서’이다. 한 달 치 수업 계획표에는 소설(동화,) 분야별 정보 도서, 토의 토론, 한국사/세계사, 문학 특강 등이 4차시에 나누어 배치된다. 차시 변경이나 글쓰기 과제, 토론의 형식 등은 교사의 재량으로 바꾸어 보기도 하지만 정해진 필독서를 제쳐놓고 수업할 수는 없다. 그래서 재미없는 필독서를 읽는 것은 때론 나와 학생들 모두에게 따분한 과제가 된다.


필독서 선정 위원들이 많은 고민과 논의 끝에 고른 필독서이니 좋은 책들인 것은 분명하다. 아동 청소년 대상 도서들은 교과 연계를 통한 분야별 정보 학습, 우정, 자아 정체성 찾기, 가족애, 환경, 진로 탐색 등을 주제로 하고 있다. 바람직하고 필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책을 사랑하고 책읽기를 즐기게 만드는 중요한 한 가지가 빠져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바로 ‘재미’이다. 독서지도사 혹은 논술 교사의 경험으로 알게 된 사실은 무언가 가르치겠다는 의도가 확연히 드러나는 책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소재와 주제가 비슷한 이야기가 비슷한 플롯 안에 고만고만하게 쓰인 책들이 많다 보니 흥미가 사라진다. 등장인물들의 구성과 각자의 개성, 배경, 사건 등도 대충 예측할 수 있을 만큼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우리 아이들이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고달픈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좀 지루하다. 나의 일도 ‘독서지도사’라기 보다는 ‘논술지도사’에 방점이 찍히고 워크북 문항에 맞는 답 찾기와 글의 갈래가 요구하는 규격에 따라 글쓰기 훈련에 매진하게 된다. 독서가 또 하나의 선행 학습이 되는 기분이다. 필요한 독서 활동이지만 좀 아쉽다.

해외에서 살았을 때 서점 아동 청소년 선반에서 아이들을 위한 4차 산업 혁명 기술, 전염병, 국제기구, 같은 제목을 본 적이 없었다. <퍼시 잭슨>, <해리포터>,<윔피키드>,<프린세스 다이어리>,<도그맨>,<드래곤 길들이기>,<아르테미스 파울>,<찰리와 초콜릿 공장>,<마틸다> 등등 아이들이 열광하며 푹 빠져 읽는 책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바로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안녕 우주>, <맏이>,<세상에서 가장 귀한 화물>,<기버 giver>,<달을 삼킨 소녀> 같은 책들은 재미와 함께 ‘감동’이 있다. 어른도 공감하는 재미와 감동이다. 더 많은 인생을 살았기 때문인지 작가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잘 파악한다. 어린 시절 추억을 소환하면서 뻔하지 않은 이야기에 빠져든다. 또 한 가지 드는 생각은 작가가 어린 주인공을 인격체로서 매우 존중한다는 느낌이다. 미성숙하고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존재로서 말이다. 어쩌면 나의 착각 내지는 편견일 지도 모르겠지만.


길지 않은 논술 선생으로서의 경험들이지만 내가 만난 감동을 글로 남기려 한다. 공들여 준비한 수업이 그 한 주로 끝나고 책장에 꽂힌 채로 잊혀 가는 아쉬움이 크다. 아이들도 좋아했던 작품들이지만 기준은 철저히 내가 좋았던 책이다. 첫 번째로 소개하는 작품은 바로


<담을 넘은 아이_김정민 글, 이영환 그림, 비룡소>이다.


이 작품은 신분과 성별의 차별 그리고 사회적 관습의 벽에 맞서 싸우는 '푸실'이라는 여자아이에 관한 이야기다. 흉년이 든 조선 시대에 가난한 집안의 맏딸로 태어난 푸실이는 양반집 젖어미로 간 어머니를 대신하여 막 태어난 여동생을 살리기 위해 애쓴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역경들을 통해 푸실이의 내면은 강해지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푸실이는 글을 읽고 싶다. 하지만 양반가의 여자들에게도 글을 읽고 쓰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시대이다. 푸실이의 부모들에게 아들 귀손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갓 태어난 계집아이 목숨 따윈 하찮다. 푸실은 우연히 산길에서 <여군자전>이라는 책을 줍고 이 책을 읽기 위해 부모 몰래 글을 배운다. '군자'란 호칭은 모름지기 남자들만의 것이었다. 이 호칭을 여자에게도 붙이며 참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도리를 깨우쳐 주는 <여군자전>을 통해 푸실이는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얻는다. 사람을 양반, 평민, 천민으로 가르고, 또 남자와 여자로 갈라 차별하였던 어지러운 세상이었다. 그 세상이 바로 푸실이가 뛰어넘어야 하는 높은 '담'이다. 어미도 포기한 어린 생명이 살아보겠다며 무섭게 집착하던 목숨이 차츰 스러져가고 있었다. 그 생명을 지키기 위해 온갖 수모를 겪어내는 푸실이의 고통에 나는 너무 마음이 아팠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많이 배워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제대로 깨우친 것은 아닐 것이다. 또 옳고 그름을 알았다 하여 그것대로 실행하며 사는 것은 더 힘들다. 그저 순수하게 생각과 행동이 같은 곳을 향하는 푸실이의 모습에 어른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기득권 계층으로서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것들을 포기하고 진실을 마주하는 선비와 효진 아가씨의 용기도 그러하다. 나는 나의 가치관이라고 믿는 것에 얼마나 솔직한가? 행동으로 구체화 되지 못한 그 가치관이 진정 나의 것인가? 내적 갈등을 피할 수 없었다.


푸실이가 겪었던 차별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자. 성별, 종교, 인종, 민족, 지역, 나이 등등. 편견과 차별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 안에서 편견과 차별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차별의 피해자로서 혹은 가해자로서 내 안에서 찾게 되는 그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나의 중심이 명확히 정립되어 있지 않다면 세상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공간이 될 수 있다. 그런 세상에서 우리는 꿈을 향해 나아가지 못한다. 나를 막아서는 그 '담'을 어떻게 뛰어넘을 것인가? 푸실이에게 답을 주었던 <여군자전>을 만나게 되길 소망한다. 아직 만나지 못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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