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책을 읽다가 문득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버킷리스트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원씽, The One Thing 개리 켈러·제이 파파산 지음, 구세희 옮김>이다. 아직 읽고 있는 중이라 글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는 끝까지 읽어봐야 확실히 알 거다. 하지만 자기계발서 류의 책들이 챕터 1이나 1부 쯤에 주제(혹은 주장?)가 나오고 이를 입증하는 사례나 데이터들이 나머지 분량을 채우는 구성을 많이 봐서인지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벌써 알 것만 같았다. 사실, 내가 자기계발서를 잘 읽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주제를 이미 안다고 생각하니 나머지 분량은 완독을 목표로 인내심으로 읽어내야 해서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소설은 그렇지 않지만...)
하여튼, 오늘 밑줄 친 구절들을 간추리면 '많은 사람들이 추앙하는 '중용의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 미신 같은 것이다. 하지만 삶을 균형 있게 살기 위한 방법은 있다. 외줄 위 곡예사가 장대를 이리저리 움직여 균형을 맞추듯 그때그때 최우선의 과제에 집중력을 발휘하라. 한꺼번에 모든 것에 같은 무게를 두고 다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남들은 버킷리스트를 어떻게 관리(?)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나의 버킷리스트는 책이었다면 지금쯤 너덜너덜해졌을 정도로 많은 삭제와 고침을 반복해왔다. 최근에 또다시 수정을 했는데 그것들 속에서 과거의 (비록 그리 오래 전은 아니지만) 내 과욕과 치기를 보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재정적 대참사를 겪기 전까지 나의 풍요롭던 삶이 고스란히 읽혀서 수정이 불가피하기도 했다. (보고 있자니... 또다시 울컥했다.)
개리 켈러가 말한,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지 못한 오만과 욕망의 덩어리들을 백과사전식으로 나열한 것이 그동안의 내 버킷리스트들이다. 한 번에 다 거머쥐어야 하는 무엇들이기도 하다. 여러 차례 버킷리스트를 업데이트해 온 까닭 역시 그 즈음 세상의 유행과 늘 풍성했던 나의 호기심 그리고 내 어딘가에 깊게 박혀 있는 모종의 열등감들이 합을 이루어낸 결과였을 것이다. 그것들은 반드시 이루어내야 할 절절한 목표였다기 보다 스타일리시한 나로 포장하기 위한 정신적 장신구였다. 결과는 '나다움'을 주장할 무엇 하나 없이 세월만 뚜드려 맞은 아줌마가 된 '나'다. 최근의 버킷리스트를 살피면서 깨달은 또 하나는 이제 꽤 많은 것들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졌다는 사실이다. 시간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남아 있는 자원이 넉넉지 않다. 슬프다.
내가 안 해서 그렇지 하면 다 돼!
이런 근자감으로 나의 게으름을 변명하며 지내오던 내가 확실히 변했구나 혹은 느지막에 철들었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다. 안 좋아하던 자기계발서들을 찾아 읽고 평범한 사람들이 쓴 에세이 류의 글들도 차분히 읽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제대로 살아왔다면 지금쯤 나도 누군가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어른이 되어 있었을 텐데 그렇게 살아오지 못했음을 통렬히 반성한다. 그리고 그 이유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글로 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세상의 트렌드에 대한 정보와 지식으로 가득 찬 책, 최대한 두껍고 가격도 꽤 나가는 책, 나의 지적 허영심을 채워주리라 기대되는 책, 더 부자가 될 이런저런 방법들을 가르쳐 주는 책 그리고 처음과 끝이 확실히 있어 끝까지 몰입과 긴장감을 주는 책 등을 편애하던 내가 말이다. 많이 겸손해진 거다.
이래저래 갑자기 이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된 나는 지난 2 년간 꽤 노력을 했다.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취미인 '책 읽기'를 모티브로 논술교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교육도 받고 관련 책들을 이것저것 읽고, 열심히 공부해서 독서지도사, 논술지도사, 디베이트 지도자 자격증을 다섯 개를 땄고 현재 논술 교사로 일하고 있다. 하다 보니 참 나랑 잘 맞는 일인데... 왜 이제서야... 또 아쉽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없음을 너무 잘 알게 되었기에 그냥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사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맞닥뜨릴 때 우리는 망연자실하고 단물 쓴물 다 나올 때까지 그 고통을 질겅질겅 씹는다. 더디 가는 시간 속에서 나를 이렇게 만든 그 인·간·들·에·게 저·주 를 퍼부으며 내가 누렸던 안락함과 평온함이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은 절망감에 괴로워한다. 내가 그랬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남의 이야기하 듯 초연하게 그 감정을 써 내려가는 순간이 올 줄이야! 그래서 안타까운 뉴스를 접할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특히 젊디젊은 청춘들의 소식은 더욱 그렇다. 살아갈 이유는 어떻게든 다시 생긴다는 것을 경험하기도 전에 그만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다시 개리 켈러와 나의 버킷리스트로 돌아와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분류, 찐인 것과 거짓인 것의 분류, 우선인 것과 나중인 것의 분류 그리고 선택하고 집중하기!
내가 완벽한 인생이라고 여겼던 예전의 것과는 많이 다른 삶이지만 죽는 순간 열심히 살아온 인생이었다고 독백할 수 있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뒤돌아 보지 말고 너무 걱정하지 말고 움츠러들지도 말고 오늘 하기로 한 일들에 최대한 집중하며 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나는 나의 버킷리스트를 수정했다.
보기 좋게, 십계명처럼 10가지를 엄선하여!
이것들만 해내면 마지막 누운 침상에서 미소 지으며 이 세상 떠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신에게 한 마디 건넸다.
딱, 이만큼만, 네? 이만큼은 아직 내게 남아 있는 거죠?
그만큼으로도 내가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아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