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이모셔니언 vs AI 이모션리씨언

Homo Emotionian vs AI Emotionlessian

by 혜담


"혹시 OO(울 집 아들 이름) 토요일로 수업 변경하면 레슨비 더 내야 한다는 얘기 안 들으셨어요?"

"네? 못 들었는데요."

"......"


등록 후 두 달째가 되는 첫날, 처음 본 남자가 불쑥 다가와 앉아 있던 나에게 물었다.

'뭐지... 토요일 수업은 레슨비를 더 내야 하나? 그때 그런 말 없었는데'

그냥 계속 앉아 있을 수 없어서 그가 앉아 있는 안내 데스크로 갔다.


"토요일 레슨비는 얼만데요?."

"18만 원요. 원래 토요일 수업도 회당 오천 원 추가입니다."


변경 전 수업은 금요일 오후 5시 20분이었다. 첫 상담할 때 학기 중에는 학교에서 매달 한번 금요일에 현장체험학습이 있는 사정이 있다고 했다. 회원들이 많고 스케줄이 꽉 차서 원하는 날에 꼭 해 줄 수 없다 하여 추후에 상황을 보는 걸로 정리했다. 평일 수강료는 월 4회 기준 16만 원 (현금 입금 조건으로 무료 라켓 대여)이다. 주말은 18만 원이라고 했는지 솔직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데려다줄 수 있는 금요일 5시 이후 레슨이 가능한지만 물었으니까.

첫 달 네 번째 수업 당일, 코치 선생님이 몸이 아프셔서 레슨을 못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그 다음 주가 추석이라 2주 후에 레슨이 가능하다 했다. 하필 현장 학습 가는 날과 겹치는 거다. 보강 스케줄 잡기가 매우 힘들었는데 코치님 사정으로 인한 것임을 인정받아 추석 지나고 첫 토요일에 보강이 잡혔다. 보강하는 날, 앞으로도 계속 보강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아 아예 토요일로 수업을 옮기는 것에 대해 상담 직원(원장 사모님으로 추정)과 상의하였는데 추가 레슨비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아, 죄송합니다. 저희가 말씀을 드렸어야 하는데, 실수가 있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정도의 해명을 기대하는 것은 상식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남자가 왜 그렇게 퉁퉁 부은 얼굴과 툭툭 내뱉는 말투로 말하는지 좀 당황스러웠지만 이만 원을 더 내고 토요일 레슨을 받을 것인가, 아님 예전처럼 금요일 레슨을 받고 보강 스트레스를 견딜 것인가의 고민이 더 컸다. 그리고 추가 요금을 내지 않고 토요일 수업을 받고 있는 것이 솔직히 내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냥 금요일로 옮기는 것이 낫겠죠?."

"그게 좋죠."

"금요일 5시 이후에 시간 되나요?"

"(모니터를 훑어보며) 5시 20분에 시간 있네요."

"아 다행이네요! 그런데 다음 달 초에도 현장체험학습이 있는데.. 보강이 계속 문제가 되겠네요."

"그렇겠죠."


이렇게 글로 쓰다 보니 뭐가 문제란 말인가! 지극히 정상적인 절차로 진행된 대화였는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몇 차례 대화가 오고 가면서 점점 감정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사과의 말도 없고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는 나의 농담 겸 진담, "에이~ 초등학생인데 할인 좀 해주시지!"라는 말에도 딱 잘라 안된다고 한다. 나는 상한 내 감정을 드러내는 다음과 같은 단어를 골라 결정을 내렸다.


"뭐. 18만 원씩이나 내고 다닐 것은 아니니까. 금요일로 옮길게요. 그리고 10월 초에도 현장학습 있는데 지금 스케줄 잡는 게 좋겠죠."

"시간 말하세요. 원하는 대로 해드릴 테니까."

"가능한 요일/날짜 말씀 주시면 저희 일정과 맞춰볼게요."

"말씀하세요. 언제가 좋으신지."

"... 여기 원장님이세요?"

"네."

"말씀을 왜 그렇게 하시죠? 기분이 안 좋은데요. 토요일 수업 레슨비를 몰랐던 것이 제 잘못인가요. 여기서 제대로 안내 안 해주신 거잖아요. 지금 말씀하시는 태도에 문제 있다고 생각되지 않으세요?"

"그러니까, 원하는 날짜 말씀하세요. 저 수업 가야 합니다"


그때, 처음 등록할 때 상담했던 코치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데스크로 왔다.


"이분 일 처리해 드려, 나 수업 들어가야 하니까."



그날 일을 복기하면서, 고민해 본다. 왜 그렇게 내가 화가 났었지?

또다시 꼬인 스케줄 때문에 짜증이 났었나?

약간의 사과를 좀 더 친절한 말투로 하지 않았던 그 원장이 불쾌했나?

하여튼 그날 난 종일 기분이 안 좋았다. 우리 둘의 언성이 상당히 높았었나 보다. 아이는 좀 떨어진 곳에서 볼 머신으로 연습 중이었는데 그 대화를 다 들었고 자기도 기분이 나빴다고 했다.

처음 이 상황을 직면했을 때 어느 한 쪽으로부터 오는 말이 고왔으면 가는 말도 고왔을 것이다. 나는 약간의 고민 끝에 이만 원을 더 내든, 토요일 보강할 때 오천 원을 더 내든 선택을 하고 끝났을 일이었다. 나오면서 데스크에 핸드폰을 주며 '오천 원 결제해 주세요. 그리고 반드시 저 원장에게 말하세요. 제가 오천 원 결제하고 갔다고!"라며 소소한 분풀이를 했다. 마음 같아서는 환불 요구하며 그곳을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그곳은 최근에 생긴, 인근에서 가장 크고 시설 좋은 실내 테니스장이다. 당장 대안이 없었다.

같은 날 오후에 토론 수업이 있었다. 논제는 <AI(인공지능)를 예술가로 인정할 수 있다.>이다. AI를 예술가로 인정하고 나아가 이들의 작품에 저작권을 부여할 수 있는가까지 생각해 보는 토론이었다. 아이들은 근거를 들어 찬성과 반대 의견을 제시하고 자신의 주장을 폈다. 우리는 먼저 '예술'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의를 내려볼 필요가 있었다. 네이버 사전을 검색하면, 예술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 기예와 학술을 아울러 이르는 말.

2. 특별한 재료, 기교, 양식 따위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 및 그 작품. 공간 예술, 시간 예술, 종합 예술 따위로 나눌 수 있다.

3. 아름답고 높은 경지에 이른 숙련된 기술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또 네이버 지식 백과에서

"미적(美的) 작품을 형성시키는 인간의 창조 활동(두산 백과 두피디아)"


이라고 좀 더 간단하게 정리한 것을 찾아볼 수도 있다. 아이들의 의견과 검색 결과를 종합하여 나는 '예술이란,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인간들이 하는 행위이며 그 활동의 결과물인 문학, 미술, 음악, 무용, 연극, 영화 등의 작품을 일컫는 말'이라고 정리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정의에서 예술의 주체를 '인간'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AI를 예술가로 인정하는 것에 반대하는 근거 중 하나가 바로 '인간의 행위'라는 대전제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즉,


예술은 인간이 가진 '독창성'과 '개성' 그리고 '감성'으로부터 나오는데, A는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 AI가 만들어 낸 음악이나 미술, 문학 작품들은 프로그램된 학습(머신러닝, 딥러닝)의 결과물일 뿐이다.



라고 주장한다. 저작권은 인간의 행위에만 권리를 주는 것이므로 이 권리 또한 인정해 줄 수 없다. 반면, 찬성하는 측의 주요 근거 및 반론은 이렇다.



완전히 '무(無)'에서 탄생하는 예술 작품은 없다. 인간도 이미 존재하는 문화와 예술을 학습하여 창의력을 얻고 예술 활동을 하고 예술 작품을 만든다

이 논제에 대해 찬성인지 반대인지를 떠나 '감성 혹은 감정'이란 인간과 AI의 행위의 본질을 구분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는 셈이다. 감정이 없는 AI의 행위는 그 독창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AI는 아직 인간의 그것들만큼 정교하고 세련된 것은 아니지만 혼자서 혹은 인간과의 협업을 통해 많은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날 오전과 오후에 있었던 두 가지 일을 생각을 해 본다. 만약, 내가 그 사람 원장이 아닌 AI 직원과 상담을 했더라면 상황이 어땠을까? AI는 프로그램된 매뉴얼에 따라 수업 시간 변경 시 고려해야 할 내용을 설명해 주고 최적의 보강 날짜도 몇 개 뽑아 주었을 것이다. 내 감정을 건드리지 않고 말이다. AI 직원이 나를 응대하는 동안 원장은 까다로운 고객이 주는 스트레스 없이 자기 일에만 전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의 표정이나 말투 목소리에 섞인 감정 등은 AI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고 한결같이 나이스한 목소리로 "네~ 고객님~!" 하면서 이 서비스를 깔끔하게 완료했으리라.


사람은 감성 혹은 감정이 있는 존재라서 예술작품을 만들고 예술가도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유로 마음이 상하고 화도 나고 갖가지 불미스러운 사고도 발생한다. AI는 주어진 과제를 성실히 수행하고 다양한 예술 작품도 만들어내지만, 감정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예술가로 인정받는 데에 논란이 많다. AI가 제공하는 높은 생산성과 효율성 때문에 AI와의 공존 내지 공생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되었다. 인간의 자리를 넘보는 AI에 거부감과 두려움까지 느낀다. 4차 산업 혁명 시대가 내게 강요하는 너무나 많은 재학습과 실생활에서 활용하라는 요구는 번거롭고 어렵기만 하다. 하지만, 사람의 감정(내 감정과 타인들의 감정 모두)을 맞닥뜨릴 때 그 감정을 잘 다스리는 일의 어려움과 수고로움이 결코 작지 않다. 익숙해지기만 한다면 나는 AI의 힘을 빌어 감정 상하지 않고 많은 일들을 잘 처리할 수 있는 것이다. 감정 있는 인간(호모 이모셔니언, Homo Emotionian)과 감정 없는 AI(AI 이모션리시언, AI Emtionlessian)! 작가를 꿈꾸는 나로서는 딜레마다.


그날, AI를 예술가로 인정하자는 주장에 은근히 편들어 주고 싶어져 버린 내 마음을 논술 수업 중 한 아이의 다음과 같은 발언을 빌어 표현해 본다.


우리가. 오리, 북극곰의 행동에 인간의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 것처럼, AI의 예술 작품을 '감정'이라는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AI에게는 그들만의
기준이 필요합니다. 인간의 예술과 AI의 예술을 각각의 가치에서 평가한다면
갈등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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