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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숙 Jun 11. 2023

초여름의 생리와 오이냉국

여름의 문제적인 단어들

'여름이면 떠오르는 음식은?'

5월 즈음 가까운 지인이 인스타그램에 문답을 올렸다. 평소에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그다지 주의깊게 읽는 편은 아니지만, 음식에 일가견이 있는 지인이었기에 성심성의껏 답해주고 싶었다. 잠시 머물러 고민을 하곤 땀 나서 기운 빠질 때 입맛을 돋궈 주는 새콤한 오이냉국을 답으로 적었다. '여름이 오고 있구나' 올해 여름에 대한 예고는 그러한 방식으로 왔더랬다.



6월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생리도 찾아왔다. 매달 찾아오는 고통이라 이제는 제법 익숙해질 만도 한데 여름의 그것은 매번 참신하게 성가시다. 찝찝함, 끈적함, 쓰라림, 냄새가 모두 가중되어서는 도저히 편안하려야 편안할 수 없는 표정과 기분을 만들어낸다.



누군가 20대 여성의 여름이 포카리스웨트 같은... 청량한... 무엇이라고 이야기한다면 나는 그저 '아뇨, 아닙니다'라고 항변할 수밖에 없다. 대개 저런 환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여름 생리'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아득해지기에, 그리고 여성의 삶에 대한 피곤한 대화를 이어나가기는 더더욱 싫기에 그저 말을 삼갈 뿐이다. 여름의 반가운 것들도 다수 있지만, 부쩍 여름이면 맞기 싫은 것들도 있기 마련이다.



생리주기를 포함한 그 근방의 시기에는 부쩍 자기와의 대화가 많아진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자궁과의 대화가 많아진다. 내 몸에 끈질기게 붙어있지만 한달의 4/1 동안은 몹쓸 놈인 것. 내 여성으로서의 존립에 커다란 기여를 하지만 동시에 무엇보다 내 몸 밖으로 밀어내고 싶은 것. 누구보다 여성성을 사랑하는 나지만 여성성을 유지하는 비용은 이토록 참혹하다. 그 비용은 정말로, 찝찝하고 끈적이며 쓰라리고 냄새난다.



하지만 생리에 대한 감정의 역학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아주, 아주 복잡하다. 생리를 할 때면 내 몸이 어떠한 방식으로 가용한 것임이 느껴진다. 그게 좋든 싫든 간에 말이다. 약 7일 간 무용해진 것들을 흘려보내며 있을 수 있던 것에 생각한다. 내 배에 있을 수 있던 것, 자라날 수도 있었던 것, 들어올 수 있었던 것들... -일 수 있던 수많은 것들. 그렇게 내 몸의 가용주기는 다시 한번 끝이 나고, 한달-약 28일-짜리의 새로운 가능성을 품을 것이다. 사실 지금 생리와 가용함에 대해 글을 쓰면서 (그리고 제법 진심으로 작성하면서) '가용'이라는 단어로 인해 모종의 역겨움을 느낀다. 이 정도로 생리에 대한 상념은 아주, 아주 복잡하다.



매달 참신하게 다가오는 고통을 애써 겪어가면서도 가용한 상태를 유지해야 할까? 당연한 것으로만 생각한 것들에 대해 이유를 묻는 순간 흘러가는 것들은 모종의 멈칫함을, 즉 문제적 성격을 가지게 된다. 몸은 계속해서 내 의지에 상관없이 죽은 피를 밀어내지만 나는 의지적으로 멈칫하고선 이유를 묻는다. 나의 가용한 몸에 대해, 내 몸의 가용함에 대해, 내 월경의 이유에 대해, 매번 반복되는 한달 중 7일에 대해서 말이다.



생리는 자연이지만 생리로 인한 불편함은 필연이 아니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다. 우리의 자연이 필연적 불편함이 아니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더 많은 멈칫함과 머뭇거림, 의문과 담론이 필요하다. 그러니 우리 생리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자. 여름이면 생각나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처럼, 내 입의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러운 대화로 이어지듯이 내 몸의 불편함에 대한 이야기도 자연스러운 대화로 이어지면 좋겠다. 내 미각과 촉각과 통각이 내 삶에서 동일한 지위를 나눠가지면 좋겠다. 오이냉국과 생리는 모두 여름의 문제적 단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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