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현 Dec 10. 2021

한 존재에게 가닿지 못했던

연극 <아들>

사진 출처: (주)연극열전 홈페이지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며 이 일상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기를 희망한다. 어떤 이유로든 일상이 한순간에 파괴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우울증에 걸린 10대 청소년 니콜라의 엄마 안느, 아빠 피에르, 그의 새로운 아내 소피아 모두 니콜라의 상태에 불안함을 느낀다. 하지만 청소년 니콜라가 겪는 고통을 성장 과정에서의 일시적인 것으로 여긴다. 그 시선 뒤, 일상을 일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니콜라의 상태와 그 누구도 마주하지 못한다. 무대에 구현된 말끔한 아파트의 모습, 빈틈없어 보이는 일상 속에서 균열을 겪고 있는 가족의 이야기가 그렇게 무대 위에 올랐다.


사진 출처: (주)연극열전


발화되지 못한 고통

 극은 안느가 이혼 후 새로운 가정을 꾸린 남편 피에르의 집을 찾아가며 시작한다. 안느는 피에르에게 3개월 동안이나 학교에 가지 않은 니콜라의 불안한 정신 상태에 대해 토로한다. 니콜라의 의사에 따라 그는 피에르와 그의 부인 소피아, 갓난아이 샤샤와 함께 새로운 환경에서 살게 된다.


 ‘뭔가 바뀌길 바라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어요.’


 피에르는 니콜라의 행동과 감정의 원인을 알고 해결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니콜라는 모르겠다는 반복적인 말로 대답한다. 이 말에는 자신의 상태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 대한 자책과 답답함이 반영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정신적 고통을 겪는 니콜라 본인도 우울과 자해, 자살 충동이 어디서부터 기인하는지 명확히 알지 못한다. 니콜라가 왜 극심한 우울증과 불안을 겪고 끝내 자살을 선택했는지 연극은 설명하지 않는다. 극은 물의 메타포와 소리를 활용해 물이 밀려 들어오듯 우울에 잠식되어가는 니콜라의 내면을 드러낸다. 피에르는 우울증의 이유와 원인에 대한 파악이 해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이는 근본적인 해결로부터 피에르를 멀어지게 만든다. 니콜라를 둘러싼 이들은 ‘왜?’에 집중할 뿐, 진정한 해결에 다가서지 못한다. 무대 위의 니콜라는 구부정한 자세로 불안정하게 손톱을 뜯는 모습을 보인다. 숨조차도 가쁘게 내쉬는 모습은 극도로 지친 내면을 형상화한다. 언어로 발화되지 못한 고통은 그렇게 신체적 언어로 표현된다. 이처럼 작품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해 언어로 발화하기 어려운 정도의 상태에 놓여있는 존재의 모습과 내면의 거리를 좁혀내지 못하는 가족의 모습을 포착해 드러낸다.


 <아들>의 무대는 중산층 가정의 아파트 거실을 재현한다. 관객과 정면으로 크게 창이 나 있고, 소파가 중앙에 놓여있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실 식탁, 화분과 책장이 공간을 채운다. 회색빛의 벽, 흰색 문과 프레임으로 구성된 집은 전반적으로 정돈된 느낌이다. 동시에 지나치게 깔끔하고 단순화된 공간은 차가운 인상을 자아낸다. 가족이 모이는 거실이지만, 온기가 있는 따뜻한 공간이 아니다. 커튼 하나로 순간에 정신과 병동으로 변하고 병원의 모습과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내 집안의 물건들을 던지고 무너뜨린 니콜라로 인해 공간은 한순간에 어지럽혀진다. 집 전체를 비추던 밝은 조명은 니콜라의 등장에 따라 푸른 빛을 띠며 불안정하게 꺼졌다가 커짐을 반복한다. 다른 인물들은 바닥에 어질러진 물건들을 인식하지 못한 채 평소와 같이 행동한다. 후에 소피아가 그 물건들을 별다른 말 없이 정리하기 시작한다. 관찰자인 관객에게는 그 혼란이 분명히 드러나지만, 너무 가까이 있는 가족은 이를 알지 못한다. 니콜라는 그렇게 자신의 방식대로 도움의 신호를 보내고 불안한 상태를 드러냈을지 모른다. 니콜라가 피에르의 집으로 온 것도 변화를 위한 하나의 움직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피에르와 소피아는 어지럽혀진 모습을 평범하고 정돈된 것으로 되돌려 놓는 데만 집중한다. 극심한 우울을 겪는 니콜라의 상태를 누구도 명확하게 직시하지 못하는 현실이 시각적으로 드러난다. 편안해야 하는 일상의 공간이 한순간에 니콜라에게는 지극히 견디기 어려운 공간으로 전환되는 모습은 이질적인 감각을 자아낸다.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못한 내면 상흔들은 그렇게 암시될 뿐이다.      


사진 출처: (주)연극열전


가족이기 때문에, 그러나

 가족 관계는 그 누구보다도 가깝지만, 관계의 당연함 속에서 서로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는 관계이다. <아들>의 인물들은 니콜라의 우울을 해결하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한다. 그러나 니콜라의 불안은 오히려 가족과 함께 있을 때 극대화되어 보인다. 니콜라에게 필요했던 것은 가족과 떨어진 시간과 환경이었을 것이다. 사랑에서부터 비롯된 지나친 개입은 이해의 부재와 병의 악화만을 가져왔다.


 피에르는 가족을 뒤로 한 채로 본인의 이익만을 좇았던 아버지를 닮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니콜라를 외면하지 않고 본인의 가정에 들인 것도 그 이유였다. 그러나 이내 피에르와 니콜라는 충돌한다. 모두가 니콜라를 위해 노력하는 상황에서 자해 행위까지 보이는 아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현실과 마주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는’ 니콜라에게 분노한다. 그러나 피에르는 니콜라가 삶의 자리와 의지를 잃은 채 행동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안느는 피에르와 달리, 니콜라가 보통 아이들과는 다른 감정을 겪고 있다는 점을 자각하고 있다. 하지만 안느도 니콜라의 현재 상태와 마주하지 못한다. 안느는 오히려 꼬마 햇님처럼 반짝였던 과거 니콜라의 모습을 자주 떠올린다. 그것이 안느만의 해결방식이었고 회상의 이미지는 니콜라가 이전의 상태처럼 되돌아오기를 희망하게 한다. 니콜라도 걱정 없이 행복했던 과거를 그리워하지만, 현재 존재하는 것은 우울증을 겪는 자신이었다. 과거로의 회귀는 현재의 니콜라에게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다. 니콜라를 사랑하기 때문에, 변해버린 아들의 모습을 감당하지 못한다. 소피아는 갑작스럽게 니콜라와 살게 되지만, 최선을 다해 그를 이해하고 대하려 한다. 그러나 끝내 불안정한 상태의 니콜라를 온전히 신뢰하는 데 실패한다.


 배우들은 가족이기에 갖는 관계성과 감정의 다층적인 층위들을 세밀하게 표현해냈다. 피에르 역의 이석준 배우는 니콜라와 달리 올곧은 자세에 단정한 옷차림을 한 채, 아들을 진정시키고 위안하는 차분한 목소리와 태도로 인물을 표현했다. 극 초반에는 아들의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듯한 톤의 목소리를 보였다. 그러나 끝내 아들의 죽음으로 현실을 마주하고 혼란과 좌절을 겪는 심리적 변화 과정을 무대에 쓰러져있는 모습과 함께 세밀하게 전달했다. 그와 달리 엄마 안느 역의 정수영 배우는 첫 등장부터 불안정한 움직임과 동선, 높은 톤의 목소리로 대사를 전달해, 니콜라의 상태로 인해 혼돈에 빠져있는 내면을 형상화했다. 소피아는 피에르와 안느에 비해 니콜라와 객관적인 거리를 둘 수 있는 인물이다. 양서빈 배우는 이를 포착해, 소피아의 이성적인 모습을 정돈된 대사와 톤으로 표현했고 니콜라를 배려하는 동시에 일면으로는 불안감을 느끼는 감정선을 다루어냈다.


 니콜라의 방은 무대 구석에 문의 형태로만 존재했다. 벽에 가려져 문조차도 정확히 보이지 않는다. 같은 일상 공간 속에 존재하지만, 실제로 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관객과 인물 모두 끝까지 알지 못한다. 아들을 회복시키고, 아버지의 역할을 다 해야 한다는 피에르의 어긋난 강박과 이기심은 니콜라를 고통스럽게 했다. 아들을 평범한 상태로 되돌려놓으려는 시도에만 치중했던 피에르는 자신의 외도와 이혼이 니콜라에게 준 근본적인 충격은 외면했다. 각자가 니콜라를 위해 노력했지만, 잘못된 선택과 대처들은 니콜라의 내면과 끊임없이 부딪힌다.


 입원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판단에도, 정신과 병동에서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는 니콜라로 인해 피에르는 아들을 퇴원시킨다. 그러나 퇴원 당일, 니콜라가 집안에서 자살한 사실은 피에르를 죄책감 속으로 밀어 넣었다. 가족이기 때문에 한 선택이지만, 그 선택은 비극을 초래했다. 더는 살 수 없다던 니콜라의 말이 피에르의 입에서 반복된다. 피에르는 아들의 죽음 후에서야 니콜라가 홀로 겪었을 고통과 상실감을 감각한다. 남아있는 것은 괴로워하는 피에르와 최선을 다했다고 위로하며 그래도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소피아뿐이다. 피에르가 니콜라에게 건넸던 말이 피에르에게 잔인하게 되돌아온다. 너무 가까운 가족이기에,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모습은 이 비극을 현실과 맞닿게 하고 관객 개개인에게 서로 다른 질문들을 남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