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추억의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을 보고 있다. 1화부터 정주행하는 건 아니고, MBC 오분순삭에서 최민용-서민정 선생의 관계성만 따로 편집해놓은 도합 12시간짜리 영상으로 본다. 하이킥 시리즈가 내가 초등학생 때 방영된 건데 정작 그 당시에는 챙겨 보지 않더니 늦어도 한참 늦바람이 분 셈이다. 서민정 선생의 러블리함과 최민용 선생의 의외이지만 여실히 나타나는 연애고수 스킬에 감탄하는 유튜브 댓글에 좋아요를 눌러 가면서 열심히 본다.
보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또 다른 포인트가 있는데, 그건 바로 최민용 선생이 방 안 침대나 공원 벤치에 앉아서 심심해하는 장면이다. 마침 심심했는데 잘 됐네, 하며 전화를 받고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거나, 심심한데 한 잔 하러 갈래요? 하면서 '심심하다'는 표현을 심심치 않게 사용하는 걸 볼 수 있다. 사전에 '심심하다'를 검색하면,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는 정의와 함께 비슷한 단어로 '권태롭다', '따분하다'가 나온다. 최민용 선생은 주로 DVD를 빌려 보거나 여자친구를 만나면서 권태롭고 따분한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보인다(내가 서민정과 함께 출연하는 부분만 골라 봐서 훨씬 더 다양한 방식으로 심심함을 해소하는 인물일 수도 있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세상에 내놓기 전 연락수단으로써의 휴대폰만 사용하던 시대라, 할 거리 없이 무료하고 단조로운 일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그램 릴스 보는 것에 중독된 요즘 사람들과는 다르다.
잘 심심해하는 법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요즘 자주 든다. 인생은 짧지만 동시에 너무 길기도 하다. '직업인으로서의 나'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여가인으로서의 나'도 그만큼이나 잘 가꿔나가야 한다. 인생에는 먹고 사는 문제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지 않은가. 그런데 요즘에는 너무 어릴 때부터 잘 먹고사는 법, 남부끄럽지 않은 직업을 갖기 위한 준비에 치열하게 에너지를 쏟다 보니, 훌륭한 여가시간 보내는 방법에 대한 연구에는 소홀해지는 경향이 있다. 연구를 시작할 엄두도 못 내고 손가락 까딱 몇 번으로 연구 과제를 없애버린다. 내가 무엇을 놓치는지도 모르고 과제 자체를 피해버린다. 이건 꽤 섣부른 이야기이지만 과거에 비해 현대사회에서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난 것도 이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는 내가 심심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것을 인정하고, 해소할 방법을 찾아나갔다. 지금은 내가 심심하다는 사실 자체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내가 심심한 줄 모르거나, 아니면 심심하지 않은 척을 하거나. 그렇게 나의 선택과 무관하게 무언가에 중독되어 가는 게 자연스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