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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수 Feb 06. 2022

블랙컨슈머

생존의 남루함

사무실이 난리가 났다.

상담사 A가 담당하고 있는 58세 직자 강 모 씨가 사무실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고 있다.


"왜 안된다는 거요!? 여기 이렇게 해준다 나와있는데!"

"아니 선생님, 선생님은 그 경우에 해당이 안 되신다니까요? 여기서 이렇게 억지 부리셔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예요"

"뭐? 억지? 이 사람이 지금? 나한테 그런 식으로 말해도 되는 거요? 어? 상담사가 말야 친절하지도 않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민원인한테 억지라니!!"

"하.. 네 그 말은 제가 흥분해서 실수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자꾸 안 되는 걸 해달라 하시니.. 저번에 오셨을 때도 충분히 설명드렸고 알았다고 가셨잖아요!"

"허허이 내참! 이거 말이 안 통하네. 알았어. 그럼 내가 고용센터 직접 가서 한 번 물어보고 당신 이런 거 다 말할 테니 두고 보쇼"

"네.. 그렇게 하세요. 저도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네요."


강 모 씨는 출입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경력 3년 차인 그녀가 안된다고 말했다면 분명 안 되는 것일 테다. 그래도 확인 차 불러서 물어봤다.


"무슨 일이에요?"

"저한테 말씀도 안 하고 시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참여 신청을 하는 바람에 우리 쪽 지원금은 나갈 수가 없다고 저번에 말씀드렸었거든요. 그런데도 저렇게... 처음에는 본인 사정을 말씀하시면서 되게 해달라고 좋게 말씀하시더니 제가 완강하게 안된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때부터 흥분을 막.. 하아..."


말을 못 잇고 코끝이 발개진다. 정부의 지원 원칙 중 하나인 중복지원 금지에 걸린 모양이다. 고용센터로 달려간다는 것은 고용센터로부터 추궁 전화를 받을 예고란 뜻이다.


그럼 또 책임 여부를 따지겠지.

제대로 설명이 안됐으니 그럴 것 아니냐고. 그러니 다시 상담을 통해 잘 설명해드리라고.


"안 나가는 지원금이 얼마예요?"

"20만 원요"

"그럼 에서 받는 지원금은?"

"50만 원요"


20만 원이면 소득이 없는 사람에겐 큰돈이다.

내부 전산망을 열어 강 모 씨의 상담일지를 봤다.


<미혼. 부모님과 동거 중. 전문대졸.

평균 재직기간 3개월의 3군데 일 경험.

희망직종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

상담과정에서 취업 가능성이 높은 직종으로 전환 유도할 계획.>


기록만 봐도 얼마나 험난한 상담과정일지 눈에 선하다. 더구나 3년 전에 이미 지원제도에 참여를 했었단다.


정부지원제도에 참여해본 경험자들은 그 수혜를 최대한 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연구한다.

때로는 상담사들보다 더 각종 중앙, 지방 정부와 각 부처들이 시행하고 있는 지원 정책과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가 밝다.


정부는 넓고 고르게 지원하기 위해 중복적으로 지원이 되지 않도록 온갖 장치들을 마련해두고 있는데 지원의 종류가 너무 많다 보니 어떨 때는 중복이 되기도 하고 어떨 땐 안 되기도 해서 담당자들을 곤혹스럽게 한다.


심지어 중앙정부 공무원도 다 파악을 못해서 질의를 하고 며칠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강 모 씨의 건은 A의 말대로 중복이 안 되는 지원이다.


A가 자리로 돌아가서 머리를 싸매고 있는 동안 나는 강 모 씨를 생각해본다.


'무엇이 그 사람을 저 나이가 되도록 이 지경으로 몰고 왔을까?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라니!....


희망이란 이름의 집착인가?

구겨진 자존심 때문에 생긴 허세인가?

현실을 부정하고 싶을 만큼 남루한 생존에 지쳤을까?

젊을 때 어디가 아파서 일할 때를 놓쳤었나?

아님 하루 종일 방 밖을 나가기 싫어하는 사회부적응 은둔형 외톨이였나?'


미우면서도 안타까운 감정때문에 별의별 상상을 다해본다. 

어쩌면 인생의 어느 순간에 강 모 씨의 사회적 연령은 딱 멈춰서 버렸는지 모른다.


강 모 씨는 겉으론 멀쩡해 보이지만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어떤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이다. 제일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지만 둘 다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지금은 늙은 부모라도 생존해 있어서 그나마 세 끼 밥이라도 먹고 잠 잘 곳 있다지만

나이가 더 들어 그분들이 안 계시면 저 사람은 어떻게 살아갈까?

제발 상담사 말 듣고 현실적인 직종 선택해서 약간의 기술이라도 배우면 좋을 텐데...'


A가 내게 와서 전해주길 강 모 씨가 다른 기관으로 이전해줄 것을 요청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단다.

아까보다 훨씬 표정이 밝다.


"센터에서 뭐래요? 야단 안 맞았어?"
"야단은요. 저분 유명하잖아요. 막무가내로 우겨서 겨우 아까 그 건은 설득시켰는데 상담사는 꼭 바꿔달라고 했다네요. 어느 상담사가 맡을지 괜히 미안해지네요."


그렇게 우리의 블랙컨슈머 강 모 씨는 잠시 소란을 일으키고 다른 기관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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