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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수 Feb 18. 2022

순수문학과 참여문학 소논쟁

무엇을 쓸 것인가?

대학을 입학하고 새내기 때 등단 작가를 희망하는 선배와 몇 날 며칠을 걸려 논쟁을 했던 적이 있다. 오래된 기억이고 그 선배 이름조차 지금은 잘 생각나지도 않지만 그때 했던 고민과 분위기는 잊혀지지 않는.


'글은 무엇인가? 글을 왜 쓰는가?'에 대한 치열한 공방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둘 다 어렸고 어설펐지만 순수한 열정이 빚어낸 에피소드였다. 둘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입장 차이가 좁혀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편향성이 점점 더 뚜렷해져 갔다.


논쟁의 대상정확히 소설을 두고 한 말이었는데 선배는 '사회를 떠난 순수예술'을 나는 '예술이란 것도 결국 인간세상을 반영할 수밖에 없으니 순수란 없다'로 맞섰다.


그런 나를 두고 선배는 '너 같은 입장에 있는 걸 참여문학이라고 한다'라고 했고 난 또 '그런 범주안에 가두어서 분별할 수 없는 예술의 본질'이라 했다.


논쟁은 점점 더 범위가 확산되어 선배 전공이던 인문학과 나의 전공이던 자연과학의 대립까지 이어져 누가 우위에 있는지에 대해 침을 튀겨가며 말씨름을 했었다.


인문학은 과학 발전의 토대 위에서 가능하다는 나의 주장에 선배는 인문학이야말로 형이상학적이며 인간의 위대한 발명품이고 과학의 상상력은 한계가 있다며 과학을 경시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바람에 둘은 멱살만 안 잡았지 얘기를 하다 말고 휙 뒤돌아 갈길 가버리는 날들이 계속됐다.


이렇게 서로 양보할 수 없는 말싸움을 하게 된 계기는 작가 지망생이었던 그 선배가 내게 소설을 써보라고 권했을 때부터 시작됐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읽어대던 내게 작가 제안이라니! 달콤한 유혹이 아닐 수 없었다.

글재주가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작가'라는 어휘가 주는 근사함이 나의 지적 허영심을 채워주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부터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정말 지금 하라면 절대 그럴 리 없는 '무엇을 쓸 것인가?'라는 고민을 20대 초반의 나는 진짜 진지하게 밤새워 가며 고민했고 내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 글도 결국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인간이 표현하는 방법 중의 하나이니 당연히 인간의 주관심사가 주제가 될 수밖에 없겠다로 결론지어졌다.


글의 역할, 글의 가치, 글의 의미에 대한 나의 결론에 대해 선배는 경계의 의미로 반대 의견을 냈던 것인데 '모 아니면 도'라는 나의 과격한 판단을 돌려세우지는 못했다. 더구나 인문학이 자연과학보다 위대하다는 선배 말은 도저히 수긍할 수 없었고 오히려 인문학을 배척하게 만들었다.


그 논쟁의 끝은 결국 '지금은 글이 중요한 때가 아닌 것 같다. 사회를 좀 더 배워야겠다'는 나의 선언 '한 편만, 딱 한 편만 쓰면 놔줄게'라는 선배 꼬임에 정말 딱 한 편 원고지 50장 정도의 짤막한 단편소설을 던져주고 서로 엇갈린 길을 선택하는 것으로 종결됐다.


선배의 마지막 요구는 막상 써보면 자기 말이 맞다고 생각을 돌릴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지만 당연히 그럴 리가 만무했다. 그렇게 그 선배와 나의 인연도 거기서 끝이 났는데 이후에 작가 지망생이던 그 선배는 모 일간지 기자가 되었고 난 평범한 사회인이 되었다.  

(강00 선배! 잘 지내시죠?)


이 영화 주인공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순수 선후배 사이였지만 자기 갈길 따라 엇갈리는 사람들을 보면 항상 생각나는 영화이고 노래이다.


한 동안 그 부끄러운 내 첫 작품을 처박아두고 있다가 얼마 전에 짐 정리를 하면서 발견하고는 미련 없이 버렸다. 그래도 생각지도 않았던 내게 '작가'라는 설레는 꿈을 심어줬던 그 선배가 지금은 감사하다.

 



그 꿈을 이제야 실현했는데, 브런지 작가 되었는데 난 다시 '무엇을 써야 하나'로 고민하고 있다.


처음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했을 때 친구가 '정의 현하는 글은 쓰지 마!'라 경고했었다.

나는 자신 있게 그러마라고 답했지만 한 두 편 쓰다 보니 어느새 스스로 자가 검열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재미가 있든지, 감동이 있든지, 정보를 주든지, 교훈이라도 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나름의 글감 주제를 찾다 보니 글이 얼어버린다. '공감을 받지 못하는 글을 쓰면 뭐하나'라는 생각과 '누가 보는 게 무슨 상관이람, 내가 좋으면 쓰는 거지'라는 생각 사이에서 갈등하는 나를 발견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독 공동체 내의 인정을 갈구하는 정도가 심하다더니 나도 그런 건가 싶기도 하고 죽기 전까지 작품성을 인정받지 못했지만 자기 예술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던 예술가들이 새삼 위대해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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