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에 면허를 땄어야 했는데

개쫄보의 운전면허 도전기

by 송혜교


1월 1일이 되면 저마다 새해 목표를 세우기 마련이다. 운동부터 영어, 이직까지. 나의 경우 매년 1월 1일마다 다이어리 앞 장에 '면허 따기'라고 적었다. 매년 반복해서 적었다는 건,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면허학원 등록도, 필기시험 준비도 최대한 미뤄댔다.




스무 살에 땄어야 했는데


스무 살이 되자 주위 친구들은 너도나도 앞다퉈 유면허 인간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면허를 따기가 무섭게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한 번만 도전해 보면 별 거 아니야, 운전을 하면 삶의 반경 자체가 달라진다니까?"라는 멘트를 던지며 유면허 인생을 강력히 추천했다. 그러나 나는 "면허 따야지, 근데 바빠서 면허학원 갈 시간이 없네!"라는 방패막을 치며 미룰 수 있는 만큼 미뤄댔다.


물론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다. 당시 나는 학업과 업무를 병행하고 있었기에 시간이 없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무서워서 시도할 엄두가 안 난다는 거였다. 나와 타인의 생명을 책임지기엔 너무 겁이 많았다.


어쨌거나 바쁘다는 건 나에게 아주 좋은 핑곗거리가 되어주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스물여섯이 되었다. 자그마치 5년을 넘게 미뤄온 것이다. 그리고 애써 외면했던 진실은 해가 갈수록 더더욱 확고해졌다. 나도 스무 살에 땄어야 했다!




무면허 칩거생활


면허를 안 따는 게 뭐 대수냐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도시에 산다면 대중교통만으로도 불편함 없이 생활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나는 깡시골에 살고 있기 때문에, 대중교통으로 외출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종점까지 가는 마을버스는 하루에 세 대 다닌다. 종점에서 내린 뒤 다시 한 시간에 한 번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지하철 역에 내려 40분에 한 번 오는 경의중앙선을 타야만 어디든 갈 수 있다.


그래서 외출을 할 때면 늘 가족들의 출근시간에 맞춰 그 차를 얻어 타고 서울로 나간 뒤, 다시 대중교통으로 갈아타곤 했다. 기본적으로 재택근무를 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출장이나 약속이 있는 날에만 가족들과 일정을 조율했다. 면허가 없어서 반쯤 칩거생활을 했던 거다.


우리 집에 놀러 와 동네를 살펴본 친구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며 물었다. "이런 동네에서 면허도 없이 어떻게 사는 거야?" 그도 그럴 것이, 아빠와 언니가 출근하고 나면 나와 엄마는 사실상 숲 속 집에 고립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차가 없으면 움직일 수 없는 곳에 면허도 차도 없이 남겨진 거니까.





나의 안전한 번거로움


대중교통도 없는 동네에서 면허 없이 어떻게 사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급하게 외출해야 할 일이 잘 없어서..."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집순이 성향이 워낙 강해서일까? 집안에서 열심히 일을 하다 보면 가족들이 하나둘 퇴근했기 때문에 불편함을 잘 느끼지 못했다.


만약 면허가 있다가 박탈된 거라면 너무나도 불편했을 거다. 원래 아는 맛이 무서운 거니까. 하지만 나는 '면허 있는 삶'을 경험해 본 적 없기 때문에 이 정도면 그럭저럭 살만 하다고 생각했다. 운전을 해서 스스로를 위험으로 몰아넣는 것보다는, 조금 번거롭더라도 안전하게 사는 편이 낫다며 합리화를 했다.


특히 유튜브 알고리즘이 내게 '한문철 TV'의 영상을 띄워줄 때마다 그 합리화는 확신이 되었다. 사람이 운전을 하며 이렇게 다채롭게 위험해질 수 있다니! 그 광경을 목격하며 나는 이 '안전한 번거로움'이 내게 안락함을 준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나는 원래 겁이 많으니까. 운전은 원래 위험한 거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면허 따는 일을 미루고, 미루고, 또 미뤘다. 정말이지, 스무 살에 면허를 땄어야 했는데. 스물여섯이 되어서야 나에게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기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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