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보도 운전면허를 딸 수 있을까?

개쫄보의 운전면허 도전기

by 송혜교


나는 쫄보다. 그냥도 아니고 개쫄보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하냐면, 놀이공원에 있는 회전그네도 겨우 탈 정도로 겁이 많다. 일례로 중학생 시절에 "이 정도는 애기들도 타는 것"이라는 언니의 설득에 못 이겨 어린이 청룡열차에 탑승했다가 뼈저리게 후회한 적 있었다. 열차가 레일 위를 달리는 내내 두 눈을 꼭 감고 이 시련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기도했고, 몇 분 뒤 갓 태어난 새끼 고라니처럼 후들거리는 다리로 내렸다. 우리를 제외한 탑승객은 모두 아주 작은 어린이였다. 난 미취학아동만 한 담력을 안고 살아가는 거였다.




운전만 안 하면 괜찮지 않을까?


멋지게 운전하는 여성들을 보면 내심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자차 운전, 커리어우먼의 상징 아니던가. 특히 나는 종종 전국 곳곳으로 강연을 다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무거운 노트북부터 우산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출장을 갈 때면 '차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꿈인 무병장수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운전을 멀리해야 하는 건 아닐까? 나는 담배도 안 피우고, 술도 자주 마시지 않고, 잠도 꼬박꼬박 챙겨 자고, 운동도 나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러나 운전대를 잡는 순간, 이 평화로운 균형이 산산조각 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운전대를 쥔다는 것은 나와 타인의 평화로운 삶을 송두리째 날려버릴 수도 있는 힘을 손에 넣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게 무슨 생각의 급발진이냐 싶을 수도 있지만, 앞서 밝혔듯 나는 개쫄보다. 이런 게 바로 걱정쟁이 개쫄보 인간의 생각 메커니즘이다. 그래서 나는 면허 취득을 차일피일 미뤄왔다. 나와 행인들의 장수를 위해서. 이런 것도 나름 우리 사회를 사랑하는 문명인의 배려 아니겠냐고 스스로 합리화하면서.




장롱면허 유전자


어디선가 운전도 유전이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우리 아빠는 '이 정도면 운전을 업으로 해도 되겠는데' 싶을 정도의 프로 운전자다. 못 가는 길이 없고 주차하지 못할 곳도 없다. 30년 넘게 운전을 했으니 실력이 쌓인 것도 있겠지만, 사실 아빠는 타고나길 운전을 잘하는 사람이다.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유일한 만점자로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반면, 엄마는 장롱면허 보유자다. 면허를 딴 지는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운전을 무서워한다. 그래서 차와 면허가 준비되어 있는 환경에서도 직접 운전을 하느니 택시를 부르는 편을 선호한다. 운전이 정말 유전이라면, 나는 정확히 절반의 장롱면허와 프로운전 유전자를 타고난 셈이다.


하지만, 50%의 확률을 내세우기 전에 한 가지 고려할 점이 있다. 나는 엄마를 빼닮았다는 것이다. 우리 엄마 사진을 본 친구들은 하나같이 놀라워하며, 나에게 '넌 인생을 스포 당했다!'라고 말하곤 했다. 내가 30년 뒤에 어떻게 생겼을지 굳이 Ai 프로그램을 돌려보지 않아도 알겠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엄마와 나는 성향까지 놀랍도록 비슷하다. 엄마도 나처럼 개쫄보다. 우리는 공포영화를 못 보고, 롤러코스터나 바이킹은 꿈도 못 꾸며, 잔인한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괴로워하는 사람들이다. 정반대 성향을 가진 아빠나 언니가 거실에서 무섭고 잔인한 영화를 볼 때면 방으로 홀랑 들어가 문을 닫아버리는 그런 부류.


그런 엄마와 나의 유사점을 보면서, 나는 '나도 꼼짝없이 장롱면허 인간이 되겠군'이라는 생각을 종종 했다. 얼굴이고 성격이고 엄마를 빼닮았는데, 운전 실력만 아빠를 닮았을 리가 없지 않은가. 이렇게 겁이 많은데 면허를 딴다고 제대로 활용할 수나 있을까? 면허를 딴다고 해도 제대로 써먹지도 못할 게 뻔했다.




면허를 따서 뭘 하겠어


매일 출퇴근을 하는 것도 아닌데 면허를 따봤자 무슨 소용이겠냐는 나의 말에, 유면허 인간인 친구가 자못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이런 말을 했다. "너... 만약에 좀비가 나타났어. 남들은 다 운전해서 피난 가는데 너 혼자 뛰어서 도망갈 거야? 그럼 네가 제일 먼저 물리는 거야!"


헉,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 해봤는데. 다행스럽게도 나는 달리기가 엄청 느린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참에 좀비가 나타날 때를 대비해 어디를 물리는 게 제일 덜 아플지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팔꿈치다. 팔꿈치에는 그나마 통각이 적다고 한다.)


그 정도로 '면허 따기'란 내 인생에 있어 주된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앞을 보면서 동시에 옆과 뒤도 보는 일, 줄줄이 앞을 향해 가는 차들 사이에 깜빡이를 넣고 불쑥 끼어드는 일, 튀어나오는 보행자와 다가오는 뒷 차를 동시에 신경 쓰는 일 같은 건 내가 절대 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무면허 인간으로 사는 게 사회의 평화를 지키는 일이라고, 좀비가 나타나면 차를 몰 수는 없어도 차창 밖으로 한쪽 팔꿈치를 내놓고 누군가 물어주기를 기다릴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날도 운전면허라는 단어를 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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