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나는 면허 따기를 5년 넘게 미뤄왔으나, 사실 면허를 따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면허학원에 등록하고, 돈을 내고, 배우고, 떨어지면 또다시 돈을 내면 된다. 필기, 교육, 기능, 도로주행 등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 유면허인간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을 통틀어 가장 힘들고 버거운 일을 꼽자면, 그건 바로 '면허를 따겠다는 마음먹기'다.
면허를 따는 가장 확실한 방법
올해는 면허를 따볼까 싶다는 나의 말을 들으면 친구들은 언제나 이렇게 답했다. "별 거 없어! 그냥 학원 가면 알아서 다 해 줘." 입이라도 맞춘 듯 다들 이렇게 말하니 오히려 의심스러웠다. 결국 운전을 해야 하는 건 나인데, 학원 가면 알아서 해준다는 게 말이 되는 걸까?
면허학원에 등록하는 일은 매우 간단하다. 지도를 켜서 가장 가까운 곳을 찾고, 전화를 걸어 예약한 뒤 방문하면 된다. 물론 지극히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절차만 이야기만 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내면에서 거쳐야 하는 단계를 더 자세하게 털어놓자면, 면허학원에 등록한다는 건 아주 중대한 일이다. 먼저 최소 3~4일 이상 시간을 넉넉하게 비워둬야 하며, 학원비 약 70~100만 원을 내야 하고, 무엇보다도 직접 운전대를 잡을 마음의 준비를 마쳐야 한다.
이렇듯, 면허학원에 간다는 건 생각보다 엄청난 비용과 담력을 요하는 일이었다. 나는 이러한 이유를 대며 대략 5년 넘는 시간 동안 면허학원에 전화 한 번 걸어보지 않고 살아왔다. 참으로 지독한 회피형이 아닐 수 없다.
시험이 내일이에요
방 안에 틀어박혀 평화롭게 글을 쓰고 있던 어느 날,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딸, 다음 주 화요일에 면허학원 예약했다! 오전 10시까지 가면 돼." 내가 면허 따기를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는 중이라는 걸 알고 있는 아빠가 선수를 친 거였다.
"화요일에 기능 예약했으니까 필기시험은 미리 따 놔." 아빠가 말했다. 목요일 오후의 일이었다. 필기시험을 볼 수 없는 주말은 제외하고, 월요일에 시험을 봤다가 혹시라도 떨어지면 낭패이니 내일 당장 시험을 봐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갑자기 하루 만에 필기시험에 합격해야 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방금 전까지 나는 면허를 따겠다는 계획조차 없었는데!
그러나 불만을 제기할 수 없었다. 우리 집에서 면허학원까지 가기 위해서는 아빠 차를 얻어 타야 했다. 그리고 원래 일정이란 모름지기 차 태워주는 사람 마음이다. 나는 고민할 겨를도 없이 쓰던 글을 멈추고 운전면허 어플을 깔았다. 요즘에는 문제집을 살 필요도 없이 다들 어플로 공부한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주워들은 적 있었다. 유면허 인간인 친구에게 당장 내일 필기시험을 봐야 한다는 사실을 알리자, 친구는 이렇게 답했다. "걱정하지 마! 빡대가리가 아닌 이상 안 떨어져!"
5시간의 벼락치기
나구나. 나로구나, 그 빡대가리가! 모의고사 문제를 넘겨볼 때마다 자신감이 뚝뚝 떨어졌다. 자동차 배기가스 재순환장치? 수소차? 도로교통법? 제대로 알고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문제를 푸는 족족 틀렸다. 이것도 정답 같고, 저것도 정답 같았다.
이런 식으로 해서 내일 합격할 수 있을까? 내 말을 들은 친구는 만 점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60점만 넘기면 되는 거라며 위로해 주었다. 하지만 겨우 60점만큼의 실력을 가지고 도로 위로 나가는 게 더 큰일 아닌가? 면허를 운으로 따고 싶진 않았다.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필기시험이 문제은행식으로 출제된다는 거였다. 문제를 외울 정도로 보고 가면 실전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풀 수 있다는 뜻이었다. 어플에서 제공하는 문제를 모두 합쳐보니 대략 930개였다. 이걸 어느 정도 익히고 가면 합격은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나의 첫 번째 관문
별 수 없이 5시간 동안 한 자리에 앉아 930개의 문제를 다 봤다. 여전히 이해 안 가는 내용도 있었지만, 계속해서 비슷한 내용들을 보다 보니 단어에 익숙해졌다. 밤 12시가 넘어 모의고사를 풀어보니 적당히 안정적인 성적이 나왔다. 그렇게 다음날 강남 운전면허시험장으로 향했다.
강남 운전면허시험장은 마치 새벽녘의 도매시장 같았다.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번호표를 뽑고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성인이 된 후 "아직도 면허가 없다고?"라는 소리를 참 많이 들었었는데, 무면허 동지가 이렇게나 많다니. 조용한 시골에 있다가 빈 의자가 없을 정도로 붐비는 시험장으로 오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무면허가 기본값인 곳에 머무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기다림 끝에 1시간의 안전교육을 들었다. 강사가 직접 진행하는 강의가 아닌 시청각교육이었는데, 준비된 영상은 아주 지루했다. 몇몇 사람은 이를 이기지 못해 꾸벅꾸벅 졸았다. 이게 일상인 것인지, 중간중간 교육 담당자가 들어와 "주무시는 분은 교육 처음부터 다시 들으셔야 합니다!"라는 협박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러나 사람들은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벽에 기대는 등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잠을 청했다.
교육이 끝난 뒤 간단한 신체검사를 하고, 필기 시험장에 들어섰다. 엄숙한 분위기를 예상했는데, 필기 시험장은 생각보다 익숙한 모습이었다. 마치 학교 컴퓨터실을 몇 배로 키워놓은 방처럼 보였다. 수험표를 보여주고 핸드폰을 끈 뒤 정해진 자리에 앉았다. 긴장한 것이 무색하게도 이미 알고 있는 문제들이 줄줄이 나왔다. 사진 한 장, 토씨 하나까지 어플 속 문제와 똑같이 출제된다는 게 사실이었다.
5시간의 혈투와 문제은행 시스템 덕분에 88점이라는 안정적인 점수로 합격할 수 있었다. 건물에서 나오자마자 신나는 목소리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합격했어!" 스물여섯에 운전면허 필기 붙은 게 뭐 대단한가 싶긴 하지만 뭐, 이것도 국가고시라면 국가고시 아니겠나 생각하면서 기쁨을 만끽했다.
나는 죽어도 면허를 딸 수 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도 필기에 합격하고 나니, 어쩐지 내 안의 가능성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겨우 첫 번째이자 가장 쉬운 관문을 통과해 놓고 김칫국을 사발로 들이킨 셈이다. 어쨌거나, 화요일은 빠르게 다가왔다. 나는 운전면허 학원에 첫 발을 디뎠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