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주행 도중에 사고를 목격했어요

개쫄보의 운전면허 도전기

by 송혜교


도로란 참 익숙한 곳이다. 살면서 수천, 수만 번은 지나치고 머물렀을 그런 배경지. 그러나 보행자나 동승자가 아닌 '운전자'로 도로에 오르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해 본 적 없었다. 심지어 기능 시험에 합격한 이후에도 그랬다. 기능시험장의 작은 도로와 차들이 쌩쌩 달리는 실제 도로는 전혀 달랐으니까.


이런 작고 안전한 곳을 벗어나 '진짜' 도로에 나서야 한다니! 나는 액셀을 제대로 밟아본 적도, 다른 차량과 나란히 위치해 본 적도 없었다. 기능시험장을 누비던 나는 사실 레고로 집을 짓던 어린아이였는데, 갑자기 실제 건설 현장에 떨어진듯한 기분이 들었다.



스무살에 면허를 땄어야 했는데.png


치열한 스케줄 싸움


운전면허 학원은 집에서 엄청 멀었고, 학원에 가기 위해서는 아빠 차를 얻어 타야만 했다. 아빠는 나를 데려다 주기 위해 팔자에도 없는 미라클모닝을 하고 있었다. 빨리 이 모든 절차를 마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한편, 기능시험에 한 번에 합격한 나는 잔뜩 의기양양해져 있었다. 당연히 한두 번 정도 불합격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필기시험과 기능 시험에 둘 다 단번에 합격하다니! 운전면허 일격필승의 꿈에 한 발짝 더 가까워졌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잘만 하면 이번주에 유면허 인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불합격할까 두려워 덜덜 떨었던 것이 전생의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당당하게 카운터로 다가가 도로주행 일정을 잡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도로주행의 경우 시험을 보기 전 총 6시간의 교육을 받아야 했는데, 규정상 6시간의 교육을 하루에 다 끝낼 수는 없다고 했다. 이틀을 더 출석해야 한다는 거였다. “그리고 이번주에는 남은 날이 없어요. 다음 주는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오전, 오후 다 가능하고요.”


운전면허를 따려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니! 넘치는 수강생으로 인해 도로주행 연습 스케줄을 잡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럼 다음 주에 4시간, 그다음 주에 2시간 하고 바로 시험 볼게요. 그렇게 해도 될까요?" 꽉 차있는 스케줄표를 이리저리 피해, 겨우 약속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부터는 정말 전쟁이었다!




겁쟁이의 시뮬레이션


'단번에 면허를 취득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은 기능시험 합격 후 1시간 정도 지속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쌩쌩 달리는 차들로 가득한 도로를 보며 내 자신감은 다시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이렇게 차로 가득한 도로를 내가 진짜 누빌 수 있을까? 각 차마다 사람이 최소 한 명씩은 타있을 텐데, 자칫 잘못했다가는 동시에 수십 명을 위험에 빠뜨리게 되는 건 아닐까?


그날부터 내 유튜브 시청기록은 운전 연습 영상으로 가득 찼다. '도로주행 중 가장 많이 하는 실수 모음!' 영상을 보며 나는 절대 실수하지 말아야지 다짐하거나, 운전면허 학원 공식 계정이 올려준 도로주행 코스 영상을 A부터 D까지 다 확인하며 시간을 보냈다. A, B 코스는 비교적 쉬운 편이었는데, C, D 코스에는 회전교차로가 두 번이나 포함되어 있어 엄청나게 어려워 보였다.


그리고 포털사이트에 끊임없이 도로주행 후기를 검색했다. 억울함을 토로하는 탈락자의 후기가 정말 많았다. "제발 A 코스 나와라 기도했는데 D 나와서 떨어졌어요.", "회전교차로에서 옆 차 박을 뻔했어요.", "너무 긴장했는지 벨트 안 매서 실격당했어요. 뭘 해보지도 못했네요!" 같은 온갖 스토리가 넘쳐났다. 시뮬레이션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는데, 개쫄보의 마음에는 오히려 악영향이었다.




이어서 유턴입니다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소풍날의 유치원생처럼 두 눈이 번쩍 떠졌다. 도로로 나가야만 하는 날이었다. 학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정말 무거웠다. 도로주행 담당 강사는 기능과 또 달라서, 새로운 스승을 만나야 했다. 이번에 내게 배정된 강사님은 나이 지긋하신 분이었으나, 생글생글 웃는 표정에는 장난기가 넘쳤다. 나는 하찮은 실력으로 인해 또 혼나게 될까 싶어 괜히 주눅 든 마음으로 꾸벅 인사했다.


"도로주행 시작 지점까지는 내가 운전할게요. 조수석에 타요!" 정말 반가운 소식이었다. 큰 도로가 나타날 때까지 꾸불거리고 좁은 시골길을 지나쳐야만 했는데, 이 고난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걱정이 산더미였던 것이다.


카트라이더와는 다르게, 도로주행 시험의 시작지점은 정말 평범했다. 24시간 추어탕집 앞이었다. "여기는 B코스 종착지점이고, A코스는 저 건너편에서 시작이니까 여기서 차를 돌려요."라는 강사님의 말에 나는 두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네? 여기서요? 유턴을 하라고요?"


내 유언은 조금 더 멋진 말이었으면 했다. 여기에서 유턴을 하라고요? 같은 말을 남긴 채 청춘을 마감하기는 싫었다. 방금 막 도로에 처음 나와봤는데, 어떻게 유턴을 하란 말인가. 선생님은 지금 다가오는 차가 없으니 괜찮다며, 그냥 핸들을 꺾어보라고 했다. 조수석에도 브레이크가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핸들도 액셀도 안 가지고 계시면서 대체 나를 어떻게 믿고... 그런 말을 꾹 삼켰다.


나 자신을 믿을 수 없다면, 강사님의 전문성을 믿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입술을 앙 다문 채 핸들을 꺾었다. 나의 가여운 노란 차량은 예상한 것보다 아주 크게 돌아 옆 차선을 삐죽 침범했으나, 다행스럽게도 도로 위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사고를 면할 수 있었다.




웰컴 투 리얼월드


"유튜브로 도로주행 코스 영상 보고 왔죠? 요즘 다 보고 오던데." 덜덜 떨며 도로 위를 기어가는 나에게 강사님이 태연하게 물었다. A부터 D까지 모든 영상을 보고 오긴 했으나, 정말이지 단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애초에 생판 모르는 도로의 10분짜리 코스 4개를 외운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말도 안 되는 과제였다.


"자, 이제 여기서 우회전... 아이코, 사고가 났네." 눈앞에 버스에 부딪혀 멈춰 선 검은 세단이 보였다. 나처럼 우회전을 하다 버스를 보지 못해 꽤 크게 사고가 난 모양이었다. 두 차량이 가장 왼쪽 차선을 꽉 채워 막고 있었다. "어... 어... 어떻게 해요?" 내 떨리는 목소리에 강사님이 태연하게 답했다. "뭘 어떡해! 우리 차 아니니까 괜찮어. 슬쩍 피해 가요."


방금 처음으로 도로 위에 나온 내게 '슬쩍' 피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옆 차선에서 다가오던 차량을 보지 못해 아슬아슬하게 부딪힐 뻔했다. 그러나 도로주행 연습 중이라는 안내문이 덕지덕지 붙은 노란 차량 덕분인지 상대 운전자가 너그러이 넘어가 주었다.




차선이 없지만 차선을 따라가야 해


"이제 어려운 게 없어. 내가 또 얘기할 때까지는 차선만 따라가면 돼요."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차선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2차선 도로인데, 차선이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 차선이 없는데요?" 내 질문에 강사님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태연하게 답했다. "도로가 낡아서 그래. 그려달라고 민원 넣은 게 몇 달 전인데 아직도 안 그렸네? 그냥 감으로 가요."


이제 겨우 1일 차 운전자인데, 저한테 감이 어디 있어요! 그렇게 따지고 싶었지만 별 수 없었다. 이 도로에서 시험을 봐야만 하니 익숙해져야 했다. "지금 아주 정확하게! 선을 밟으면서 가고 있어. 옆차는 아주 당황스럽겠지!" 분명 심각한 상황인데, 강사님의 능글거리는 말투에 헛웃음이 났다. "웃는 걸 보니 제법 여유가 있어. 가끔 우는 사람도 있어요." 그 말이 제법 희망적으로 들렸다.


양옆에 공간이 어느 정도 남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사이드미러를 봐야만 하는데, 내게는 옆을 볼 여유가 없었다. 앞을 보며 나 자신의 목숨을 살려놓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자, 이제 우회전해야 하니까 차선변경 해보세요. 깜빡이 넣고... 그게 아니지, 반대지." 방향지시등을 잘못 켰다가 겨우 정정하고, 멈추다시피 한 다음 옆 차선에 겨우 끼어들 수 있었다. 내 인생 첫 끼어들기였다.




핸들을 너무 꽉 쥔 탓에 손이 저려왔고, 브레이크에 올려놓은 다리가 욱신거렸다. 설상가상으로, 점심시간이 다가오면서 도로 위에 차량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이대로 코스를 완주할 수는 있을까? 온몸이 긴장으로 가득 차는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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