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정말 면허 딸 거야."라는 말을 새해마다 남발했기 때문인 걸까? 더 이상 아무도 그 말을 믿어주지 않는 것 같았다. 면허가 나타났다고 외치는 양치기 소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정말로 면허학원에 등록했을 때, 필기와 기능 시험에 합격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축하하기보다도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네가, 면허를 따겠다고?
언제쯤 차선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
"저 지금 가운데로 가고 있나요?" 나의 물음에, 강사님이 창밖을 슬쩍 내다보고는 말했다. "여전히 왼쪽에 훨씬 가까워요!" 나는 급한 성격을 증명하듯 핸들을 훅 꺾어 오른쪽으로 향했다. "오, 지금이 딱! 중앙이야!"라는 말이 반가우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체감상 거의 오른쪽 차선에 닿아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아무래도 차선에 익숙해지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자, 이제 속도를 좀 더 냅시다. 50 정도까지 쭈욱- 밟아봐요." 시속 40km로 달리고 있는 내게 강사님이 말했다. 40만 넘으면 된다고 알고 있었는데, 아닌가? 너무 느리게 달려도 교통법 위반인 걸까? 빠르게 달리는 건 너무 무서운데! 더 빨리 달려야 하는 거냐고 묻자 아주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생각해 봐 봐. 만약 내가 이 지역 주민인데, 동네에 운전면허 학원이 있어서 허구한 날 초보들이 와서 도로에 기어 다녀! 얼마나 짜증 나고 학원이 밉겠어! 그러니까 너무 느리게 다니면 학원이 욕먹는 거지. 물론 40으로 간다고 해서 잘못된 건 아냐! 그래도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기 위해서 처음부터 50으로 연습을 해봅시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도로주행 연습 차량이라고 봐주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매일 마주치는 주민들은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자고로 운전에서 실력만큼이나 중요한 건 배려라고 했다. 그렇게 큰 결심을 하고 액셀을 꾸욱 밟았다.
환장의 조별과제
속력을 높이려니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일정한 속력을 유지하려면 자동차 계기판을 틈틈이 확인해야 하는데, 계기판과 앞과 옆을 동시에 보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악보도 못 읽는 내게 계기판의 숫자를 0.5초 만에 읽어 속력을 파악하고 다시 앞을 보는 일은 마치 아슬아슬한 서커스처럼 느껴졌다.
운전은 마치 눈과 뇌와 손과 발이 함께하는 조별과제 같았다. 실제 조별과제와 차이가 있다면 이 중 하나라도, 1초라도 제 일을 하지 않으면 아주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야 마는 환장의 난이도라는 점 정도일까. 언제든 액셀에서 브레이크로 발을 옮겨야 한다는 생각에 허벅지 근육이 너무 긴장한 나머지 쥐가 나기 직전까지 갔다.
내가 차를 몰고 있다니. 내가 운전을 하고 있다니!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많은 차량들은 모두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것일 텐데, 나라는 사고뭉치가 이 도로 위에 끼어들어 모두를 위협하고 있다니! 노란색 도로주행용 차량 안을 가득 채운 막중한 책임감을 끊임없이 이겨내며 시속 50km를 유지하려 애썼다.
공포의 회전교차로
도로주행 코스 중에서도 나를 유독 두렵게 만든 곳이 있으니, 그건 바로 회전 교차로였다. 코스 내에 무려 두 번이나 나타나는 데다가, 고속도로로 빠지는 길이 바로 인근에 있어 차량 통행량이 제법 많았다. "선생님... 언제 들어가요? 지금? 지금? 지금?" 나는 계속해서 강사님을 괴롭히며 안전한 타이밍을 찾아내려 애썼다.
"너무 겁먹을 필요 없어요. 여긴 어차피 시속 20km 이하로 진입하는 구간이니까 천천히 들어가면 되지." 나는 분명히 천천히 들어가려 했으나, 이미 교차로 안을 돌고 있는 차량들은 그리 천천히 달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도로주행 연습 차량을 앞에 끼워주면 한참 동안 느리게 돌아야 하기 때문에 다른 차들이 부러 빠르게 달린 거라는 사실은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다.
안쪽 차선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바깥쪽 차선에 머물러야 하는지 선택할 겨를도 없었다. 어찌어찌 빈 곳을 찾아 회전 교차로 안에 진입하고 나면, 일정한 각도로 원을 그리며 도는 것이 두 번째 과제였다. 너무 안으로 돌다가는 중앙에 부딪힐 것 같았고, 조금이라도 핸들을 덜 꺾었다가는 옆 차와 사고가 날 게 분명했다. 결국 마치 물결을 그리듯 우왕좌왕하며 아슬아슬하게 교차로를 돌았다. 원이라기보다는 꽃을 그리는 듯한 움직임으로.
끝없는 회전의 악몽
"만약에 나갈 타이밍을 놓치면 어떻게 되나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묻자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 "나갈 수 있을 때까지 빙글빙글 도는 거지, 뭐." 가뜩이나 핸들을 꺾으며 도는 것도 힘든데, 그걸 몇 바퀴나 더 하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이제 여기서 우회전. 깜빡이 먼저 넣고... 지금!" 회전교차로에서 나가는 건 들어오는 것보다 배로 어려웠다. 계속 돌고자 하는 차들 사이를 힘겹게 파고들어 오른쪽으로 탈출해야 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다른 운전자들에게 들릴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혼자 중얼중얼 사과를 하며 힘겹게 차선을 바꿨다.
정말이지 너무 무서웠다! 속으로는 계속 똑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아, 스무 살에 딸걸! 그때는 무섭다고 울어도 이해라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이제는 엉엉 울 수 있는 나이도 지나버려서 그냥 이겨내는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은 능숙하게 차를 몰고 다니는데, 언제까지 나만 쫄보 겁쟁이 무면허 인간으로 남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회전 교차로를 빠져나오고 나니 참았던 숨이 후-하고 터져 나왔다. 진이 다 빠지는 느낌이었다. 무사히 탈출했다는 기쁨을 느끼는 것도 잠시, 곧바로 강사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회전교차로 빠져나왔으니까 이제 다시 속도 내야지! 밟아요!"
6시간의 트레이닝
규정상 도로주행 연습에 주어진 건 딱 6시간이었다. 나는 6시간이라는 규정에 의문을 품었다. 왜 하필 6시간일까? 뭔가 과학적 이유가 있는 걸까? 겨우 6시간 연습하고 시험에 합격한다고 해서 정말 나에게 운전할 자유가 주어지는 것이 옳은가?
연습 1시간 차, 차선을 하나도 못 맞추는 내가 불안해하자 강사님은 이렇게 답했다. "2시간쯤 되면 다 해. 2시간 넘었는데도 차선을 못 맞추면... 그때는 내가 권유를 하지. 혹시 교육 시간 추가하시겠어요? 이렇게." 나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으며 차선에 대한 감을 익히려고 노력했다.
그때부터 강사님이 나를 위로하려는 듯 다른 수강생들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사실 이 선을 넘지만 않으면 감점이 되지는 않거든. 한 번은 정말 지그재그로 흔들면서 운전하는데, 기가 막히게 선은 안 넘는 친구가 있었어요. 그럼 엄청나게 당황스럽기는 해도 감독관이 감점은 못 해." 선을 넘지만 않으면 되는군. 갑자기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솟았다.
시간이 약이라는데
강사님의 말은 정말 사실이었다. 2시간이 더 지나자 얼추 흔들리지 않고 차선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 계속해서 중앙선에 다가가던 처음에 비하면 눈에 띄는 성과였다. 3시간이 지나자, 회전교차로를 제외한 우회전, 좌회전 정도는 강사님의 코치 없이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조금씩 잘하게 되었나 보다,라고 생각하게 된 건 강사님이 마음을 놓고 딴짓을 할 때부터였다. "저기 저 참외 맛있을까? 꿀참외가 만 원이라는데?" 길가에 서있는 참외 트럭에 관심을 가지신다거나, "저 식당이 아주 맛있어요. 특히 찜을 잘해. 점심시간이 되면 저 앞에 차들이 바글바글해지니까 조심해야 하지."라며 맛집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 이러다 떨어지면 어떡해요?"라는 물음에는 "내가 잘 가르치기 때문에 떨어지진 않아."라는 능청스러운 말로 응수했다.
그렇게 A부터 D까지 모든 코스를 두 번 이상 반복하자, 4시간의 교육이 끝났다. 분명 유튜브 영상에서는 코스 하나당 10분 정도 걸린다고 나왔는데, 내게는 왜 이리 길게만 느껴지는지. 회전교차로는 여전히 나를 공포스럽게 했고 희미한 차선은 내게 끊임없는 의구심을 주었으나, 길에도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었다. 이제 다음 주에 다시 돌아와 남은 2시간의 교육을 받고 도로주행 시험에 합격하기만 하면, 정말 이 대장정이 끝나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