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혜교 Oct 21. 2023

'운전면허를 딴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

개쫄보의 운전면허 도전기


면허가 없다는 사실에 위기감을 느낀 건 언제부터였을까? 스무 살, 면허가 없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수능이 끝나고 잽싸게 학원에 등록한 몇몇 친구 빼고는 모두 무면허인간이었으니까. 스물둘이나 셋까지도 위태롭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아직은 면허 없는 친구들이 주위에 많았다.


그러나 스물다섯을 넘어가면서, 남아있던 무면허 동지들마저 하나둘씩 내 곁을 떠나갔다. 취업하기 전에 이력서 자격증란에 적을 한 줄을 늘리기 위해서라도 따야 한다거나, 취업하고 나면 더 이상 시간이 없을 거라는 합리적인 이유에서다. 면허를 따기 위해 연차를 내야 한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니까!




운전면허의 의미


신분증이 하나 더 생기는 것. 지갑에 챙겨 다녀야 할 카드가 한 장 늘어나는 것. 비록 자차는 없더라도 친구들과 여행을 갈 때 교대로 운전할 수 있게 되는 것. 만약 운전해 줄 수 있는 가족이 아무도 없을 때, 내 한 몸 하나로마트까지 데려다 놓을 수 있게 되는 것. 무면허인간으로서 운전면허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 정도였다.


그러니 이런 내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가 있었다. 나처럼 면허 취득을 미루고 미루다 20대 후반이 되어 면허를 딴 친구로부터 이런 찬양을 듣게 된 것이다. "너도 면허를 따봐야 알아, 사실은 무한한 이동권을 갖게 되는 거라고!" 이 말은 묘하게 내 궁금증을 자극했다.


운전은 넓은 의미에서 자유를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다. 어디로 갈 수 있는가, 그리고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이를 증명하듯, 기나긴 여성 억압의 역사를 지닌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불과 5년 전에야 여성의 운전을 허용했다. 혼자서 운전할 권리는 '어디로 향할지 결정할 권리'로 이어지는 법이니까.


면허 취득을 코앞에 두고 다시 한번 면허의 의미를 되짚어보았다. 사실 운전면허는 단순한 신분증도, 짐이 되는 카드도 아니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삶의 반경을 획기적으로 넓히는 매직패스에 가까웠다. 그렇게 나는 운전면허 학원으로 향하는 마지막 발걸음을 옮겼다. 내 명의로 된 매직패스를 손에 넣기 위해서!




최후의 드라이브


도로주행 시험을 앞둔 날, 누가 깨우기라도 한 듯 눈이 번쩍 떠졌다. 지난 며칠 동안 필기시험과 교육, 기능, 1차 도로주행 교육이라는 모든 관문을 거쳤다. 드디어 내 인생일대의 결전의 날이 온 것이다! 특별한 날이니만큼, 이번에는 편의점에서 샌드위치 대신 좀 더 비싼 도시락을 사서 우걱우걱 먹었다. 기필코 한방에 합격하고 말겠다고 다짐하면서.


시험 전 두 시간의 교육은 금방 흘러갔다. 얼른 시험 시간이 왔으면 하는 마음 반, 영원히 다가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반으로 차를 몰았다. 이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사님은 여전히 여유롭게 창밖을 구경하고 있었다. "저 할 수 있을까요?"라는 물음에도 능청스럽게 "떨어지면 또 하면 되지!"라고 응수했다.


내게는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또다시 집에서 25km 떨어진 면허학원에 출석하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면허학원 수강료로 이미 큰 지출을 해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돈을 들일 수는 없었다. 한번 떨어질 때마다 5만 원 정도를 내야 재시험을 볼 수 있다는데, 5만 원이면 중고책을 7권도 넘게 살 수 있는 돈 아닌가.


'이건 드라이브다, 최후의 드라이브야!' 그렇게 떨리는 마음을 누르며 마지막으로 차근차근 코스를 돌아보았다. 공포의 회전교차로를 지나, 차들로 붐비는 맛집을 지나, 가속 구간을 지나, 다시 시작지점까지. 그리고 돌아와서 나의 도로주행 동지들과 합류했다. 모두가 긴장한 표정으로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감독관이 등장했다.

 



시험을 시작합니다


도로주행 시험은 4명씩 한 조가 되어 치러졌다. 랜덤으로 A부터 D까지 코스가 배정되었는데, C와 D코스는 A와 B에 비해 복잡하고 어려웠다. 무려 회전교차로를 두 번이나 지나야 했기 때문이다. 이럴 때를 대비해 C와 D코스를 더 집중적으로 연습하긴 했지만, 그래도 가능하다면 피하고 싶었다. 아마 방안에 있는 모두가 같은 기도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제발 A 코스 걸리게 해 주세요!'


행운의 신은 내 편이었다. 나는 A코스를 배정받아 가장 먼저 방을 나섰다. 뒷자리에 B코스를 운전할 다음 시험자를 태우고서!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더더욱 마음이 떨렸다. 벨트를 매지 않아 움직이기도 전에 실격당했다는 수많은 경험담을 바탕으로, 다소 떨리는 손으로 벨트를 당겼다. 철컥- 소리가 나는 것을 확인하고, 차근차근 배운 대로 움직였다. 연습했던 대로만 하면 되겠지. 나는 이미 6시간이나 이 길을 운전한 경험이 있으니까!


다 외우기도 힘든 감점사유들을 떠올리자니 머릿속이 복잡했다. 급정거는 안 돼. 급가속도 안 돼. 깜빡이는 너무 미리 넣어도, 너무 늦게 넣어도 안 돼. 우회전을 한 뒤에 차선을 느긋하게 변경해서도 안 돼! 이런 생각에 빠져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우회전을 한 뒤 너무 급하게 왼쪽 차선으로 향하게 됐다. 윽, 방금 감점됐겠군.


하지만 결국 나는 성공했다. 사고를 내지도, 실격을 당하지도, 겁이 난다며 포기해버리지도 않았다. 무사히 갓길에 차를 대고 나니, 경쾌한 안내 음성이 나왔다. 시험을 종료합니다! 자그마치 5년을 미뤄왔던, 운전면허를 향한 기나긴 여정이 끝났다. 스물여섯 살 봄의 일이었다.




아직도 면허가 없어?


기쁜 마음으로 가족들에게 합격 소식을 알리고, 곧장 강남 운전면허시험장으로 향했다. 면허증을 발급받기 위해서였다! 기나긴 줄을 뚫고 나만의 매직패스를 손에 쥐자 원하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심장이 뛰었다. 


드디어 "아직도 면허가 없어?"라는 질문에서 해방되는 순간이었다. 스물여섯이 되도록 면허는커녕 면허학원 근처에도 가본 적 없던 내게는 아주 익숙하고 지긋지긋하던 질문이었다. "때 되면 따겠지..."라고 이야기하면서도, 그 '때'가 언제일지는 나 자신도 전혀 장담할 수 없었던 과거가 떠올랐다. 선택권은 오롯이 내게 있는 거였는데, 마치 결정은 남의 일이라는 듯 저 멀리 던져버렸다.


운전면허를 단번에 딸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공간지각능력이 부족하니까, 운동신경이 좋지 않으니까, 겁이 많으니까. 댈 수 있는 이유란 이유는 다 가져다가 미룰 수 있는 만큼 미뤄댔었다. 하지만 합격 소식을 손에 쥔 채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런 것들은 다 도전을 피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다. 




애써 면허학원을 멀리하며 방구석에 앉아 겁을 낸다고 해서 도움이 될 건 없었다. 자전거를 못 탄다고 해서 운전을 못하리라는 법도, 공간감이 없다고 해서 주차를 못 하리라는 법도 없었다. 공간지각능력이 부족한지, 운동신경이 좋지 않은지, 겁이 나서 아무것도 못하게 될지, 멀티가 되지 않아 시야가 좁을지는 운전석에 앉아봐야 아는 일이다. 모든 건, 해봐야 아는 일이다. 개쫄보도 면허를 딸 수 있는 거였다!





작가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열다섯, 그래도 자퇴하겠습니다> 구경 가기

   알라딘 | 교보문고 | YES24


이전 08화 도로 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