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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혜교 Oct 28. 2023

주차를 못해서 운전을 못 해요

개쫄보의 운전면허 도전기


드디어 운전면허증을 손에 넣었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그러나 면허 취득은 운전을 향한 대장정의 시작에 불과했다. 이제는 '진짜 도로'라는 더 큰 고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 동승자가 아닌 진정한 운전자로 거듭나야 할 때였다.




굿모닝, 마이 카


슬기로운 운전생활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먼저 유면허 인간이 된 친구들의 조언에 따르면, 면허를 딴 직후 바로 운전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했다. 운전면허 학원에서 익혔던 감을 놓지 않으면서, 초보운전자로서 계속해서 감을 쌓아가야 한다고. 면허를 딴 뒤 운전을 쉬는 순간, 장롱면허로 직행하게 된다고.


매우 합리적인 이야기이긴 하나 이 방법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으니, 아무리 면허를 땄다 한들 운전할 환경이 갖춰져있지 않으면 실천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우리 집은 대중교통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깡시골에 위치하고 있어 운전하는 자만이 집을 벗어날 수 있으며, 그 지리적 특성 덕분에 남는 차가 한 대 있었다.


나는 언니가 면허를 딴 뒤 구매했던 낡고 귀여운 중고차를 물려받게 되었다. 비록 경차이나, 제법 잘 나간다는 이유로 '굿모닝'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차였다. 나는 면허를 따자마자 '초보운전'이라는 네 글자가 크게 박힌 스티커를 주문해 굿모닝에게 붙여주었다.




빙글빙글 공터 운전


드디어 면허를 땄다고 이야기하자, 친구들이 이렇게 물었다. "연수받을 거야?" 면허를 딴 뒤에도 추가로 운전 연수를 받는 사람이 많다는 걸 미처 모르고 있었다. 학원비를 이렇게 많이 냈는데, 연수를 또 받아야 한다고? 이미 지출이 큰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건 불가능했다.


게다가 내게 필요한 건 딱 동네를 오갈 만큼의 운전실력이었다. 서울에 갈 필요도, 부산에 갈 필요도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동네는 차도 없고 사람도 없는 깡시골이라 연습할만한 공터가 많았다. 동네 초보운전자라면 한 번쯤은 다 거친다는 넓은 공터를 빙글빙글 돌면서 핸들의 감을 익히고, 주차를 연습했다.


공터에서는 선을 밟는다거나, 겁을 내다가 얼마 움직이지도 못하고 멈춘다거나, 너무 크게 돌거나, 핸들을 너무 빨리 꺾는 등 그 종류도 다양한 갖가지 실수를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그래도 실수한 만큼 다 내 경험이 된다는 진리에 가까운 사실 덕분인지 머지않아 금방 집으로 향하는 골목길 정도는 오갈 수 있게 되었다. 연습만이 살길이었다!




주차를 못해서 운전을 못 해요


사실 내 운전면허 취득의 가장 주된 목적은 집에서 15분 거리인 수영장까지 오가는 거였다. 가족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원하는 시간에 마음껏 외출할 수 있는 것. 몇 번의 연습 끝에 차선을 넘지도 않고 얼추 우회전이나 좌회전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한 가지 문제가 남아있었다. 수영장까지 도착은 할 수 있는데, 도착한 뒤에 주차를 할 수가 없다는 거였다!


수영장에 딸린 주차장은 매우 좁았다. 게다가 항상 운동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고로 수영장에 직접 차를 몰고 간다는 건 돌고 돌아 빈자리를 찾아낸 뒤, 주차장을 가득 채운 차량 사이에서 아무런 사고도 내지 않은 채로 완벽하게 주차를 해야 한다는 것과 같았다. 좁디좁은 두 차량의 틈 사이로 후진을 할 생각만 해도 아찔해졌다.


결국 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다. 그건 바로, 수영장에서 조금 떨어진 공원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오는 거였다. 공원 주차장은 넓고 차량도 많지 않아서, 다른 차를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주차할 수 있었다. 비록 건물 바로 앞에 있는 주차장을 두고 멀리서 걸어오는 나 자신이 처량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으나, 어쩌겠는가. 주차 실력이 늘어날 때까지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주유도 주차도 처음이라서


운전은 나에게 참 많은 것을 가르쳤다. 몇 번 수영장에 혼자 오간 뒤 한 가지 엄청난 사실을 깨달았는데, 그건 바로 내가 주유를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아빠나 언니가 주유소에 들를 때 옆에서 멀뚱멀뚱 기다려보기나 했지, 한 번도 직접 주유해 본 적은 없었다. 물론 셀프 주유소가 아닌 일반 주유소에 가서 "가득 주세요!"라고 말하면 되겠지만, 기름값이 비싼 요즘 같은 때에는 한 푼이라도 아끼는 게 상책이었다.


포털사이트에 '주유하는 법'을 검색하는 나 자신이 다소 바보처럼 느껴졌으나, 걱정이 무색하게도 이를 안내하는 포스팅이 넘쳐났다. 역시 이렇게 당연하게 여겼던 정보들에도 수요는 있는 거였다. 나는 초보일 뿐 바보는 아니라는 사실이 내게 위안을 주었다.


몇 편의 글을 읽으며 주유하는 법을 익히긴 했으나, 막상 주유소에 혼자 가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블로그에서 '휘발유 차량이라면 작은 스파크에도 화재가 날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경고의 글을 읽었기 때문이다. 결국 유면허인간인 친구와 동행해 셀프 주유소로 향했다.


"정전기 방지 패드에 손 한번 대고. 휘발유 가득 누르고." 친구가 알려주는 대로 차근차근 기계를 누르자, 화면에 무시무시한 숫자가 떴다. "15만 원?!" 나의 비명에 가까운 말에 친구는 들어가는 만큼만 넣은 다음 차액은 다시 돌려준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처음으로 주유건을 손에 쥐자 마치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거치며 주유하는 법을 배웠다.




하면 된다는 또 다른 깨달음


운전면허는 내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주유하는 법을 배우고, 주차를 연습하고, 원래대로라면 눈길도 주지 않고 지나쳐버릴 차량용품 코너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무면허인간에서 초보운전자로 거듭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이런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나는 면허 취득 3개월 만에 빗길을 뚫고 혼자 100km를 운전해 출장을 다녀오는 쾌거를 이뤘다. 운전을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난 지금은 웬만한 길은 혼자서 척척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초보운전 스티커는 아직 떼지 않았다. 나를 지켜주는 부적이라 여기며, 2년은 더 붙이고 다닐 계획이다.


처음에는 동네 마트나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면허를 땄지만, 삶의 반경을 획기적으로 넓혀주는 운전의 매력 덕분에 이제는 조금씩 더 먼 곳으로 향하고 있다. '쫄보도 운전면허를 딸 수 있을까?'라는 나 자신을 향한 근본적인 불신과 물음에 도전과 경험으로 답하게 된 셈이다. 개쫄보도 면허를 딸 수 있고, 개쫄보도 운전을 할 수 있다!




'나는 겁이 많고 공간지각능력이 끔찍한 수준이니 면허를 딸 수 없을 거야.' 그런 마음으로 면허 취득을 미루고 계신 분들께 이 글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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