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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혜교 Nov 11. 2022

게으름, 그 참을 수 없는 달콤함

아주 최소한의 갓생을 향하여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 했다. 본래 게으른 사람의 최대의 적은 자기 자신이다. 또한, 게으름은 극복해야 할 벽 같은 게 아니다. 평생을 달래주며 때로는 비위를 맞춰야 하는 짜증나는 친구 같은 것이다. 나는 이미 열심히 살아 버릇한 지가 몇 년이 되었는데, 도무지 부지런해지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뼈저리게 깨달았다. 게으름은 참을 수 없도록 달콤하고 부지런함은 쓰다.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나는 내가 얼마나 게으른지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무언가를 마음먹었을 때 해두지 않으면, 영영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저절로 알게 된 것이 아니라, 고통 끝에 깨달은 것이다. 나는 책이나 칼럼을 쓰기 위해 평소 웹서핑을 자주 하는 편인데, 종종 좋은 글을 발견한다. 누가 봐도 유익한 기사나 논문 같은 것들. 우선 스크랩이나 즐겨찾기를 눌러둔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알게 되었다. 발견 즉시 읽지 않으면 영영 읽지 않는다는 걸.




'오, 일단 스크랩!'의 무의미함


 나는 보석을 모으는 까마귀처럼 좋은 글을 보면 신이 나서 까악거리며 둥지에 모아두고는, 도무지 돌아올 줄을 모른다. 또 다른 둥지를 찾아 떠나버리고 모아둔 보석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진다. 마치 SNS상의 ‘꿀팁 수집가’처럼 그 무엇도 버리지 않고 빵빵해진 스크랩함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스크랩 목록 가장 아래에는 어떤 글이 있는지조차 잊어버린 채로. 어쩌면 개중 몇 개는 이미 삭제되었을지도 모른다.


 이 사실을 깨달은 뒤에는 방법을 바꿨다. 기사를 아주 빠르게 훑어보면서 좋은 문장이 있는지 살핀다. 훌륭한 글이라는 확신이 들면 그때 스크랩을 누른다. 논문도 마찬가지다. 서론을 빠르게 넘기고 관심 있는 부분부터 읽어버린다. 흥미로워지면 그제야 찬찬히 읽는다. 이 방법으로 그냥 흘려보낼 뻔했던 정보를 얻어낸 적이 수없이 많다.


 누구나 한 번쯤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SNS나 유튜브에서 유용한 요리법이나 팁 같은 것을 발견해 “오, 저장해 두고 이따가 봐야지!”, 혹은 “여행 갈 때 꺼내 봐야겠어!”라고 생각하며 SNS 계정 혹은 갤러리에 저장해두고 잊어버리는 날들이.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이 글을 저장해봤자 내가 안 읽을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이다. 몇 년이 흘러 구글 드라이브나 페이스북이 ‘N년 전 오늘을 둘러보세요!’라고 말해주어서 선물처럼 마주치기 전에는 읽지 않을 거라는 걸.





게으름에도 패턴이 있다


 그러니 게으름 속에서 성취를 이루기 위해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스텝은 내가 게으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따 하지 뭐.”라고 말한 뒤 정말 나중에 하는 사람도 있지만, 게으르니스트는 대체로 실천하지 않는다. 우리는 종종 ‘과거의 내 업보를 굳이 현재의 내가 청산해야 할 이유는 없지, 어쩔 수 없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곤 한다.     


 그러니 더더욱 내가 게으르다는 사실을 끝없이 상기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나는 어떤 식으로 게으른지를 파악한다면 더 좋다. 게으르니스트마다 각자의 패턴이 있고 그건 사실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나는 지금 옷을 걸어두지 않으면 최소 일주일 동안 걸지 않고 쌓아둘 거야. 나는 지금 이걸 읽지 않으면 영영 보지 않아. 나와 이 글은 스쳐 지나가 서로 남이 된다. 이렇게 내 게으름의 패턴을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달콤한 게으름 사이를 헤엄치면서도 충치를 면할 수 있는, 변화의 시발점이다.




게으르니스트's 한 마디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나는 내가 얼마나 게으른지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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