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혜교 Nov 19. 2022

계획하라, 한 번도 게으른 적 없던 것처럼

아주 최소한의 갓생을 향하여

 오늘도 정신 차려보니 하루가 흘렀다거나, 시간이 내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질질 끌고 가는 것만 같다면? 주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나라는 개인이 흐려지는 느낌이 든다면? 어딘가에는 쉼표를 찍어야 한다. 흘러가는 대로 사는 삶이 하나의 뭉텅이라면, 목표와 계획이 있는 삶은 잘 정리된 선물 세트와 같다.


‘게으르니스트의 갓생 살기’ 플랜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쉼표를 찍는 일이다. 여기에서 쉼표란 단순히 쉬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여러 갈래로 나눠두는 것을 뜻한다. 삶을 대충 하나로 뭉쳐버리는 건 게으르니스트가 누구보다 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휴일에는 더더욱 그렇다. 우리는 흔히 ‘즐거운 금요일 저녁♬’과 ‘뭘 했다고 일요일 밤이야!’의 무한한 굴레에서 살아간다.


 그렇다고 해서 타인의 갓생을 따라하겠다는 마음으로 갑자기 새벽 5시에 알람을 맞추거나, 영어 공부용 책을 덜컥 사는 것은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다. 첫째로 삶이 너무 고달파서 ‘이게 사는 거냐?’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수 있다. 뿌듯함과 열정에도 용량 제한이 있다는 걸 잊지 않아야 한다. 둘째로는, 높은 확률로 목표 달성에 실패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 달만 지나면 다시 ‘뭘 했다고 일요일 저녁이야!’를 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분명 목표는 혁오 탈출이었는데...

 적합한 목표를 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너무 거창한 목표를 잡는다면 작심삼일은 무슨, 오늘 하루 실천하고 내일부터는 싹 까먹는 것이 평범한 게으르니스트의 삶이다. 그러나 반대로 너무 소소한 목표를 잡는다면 괜히 신경 쓰이고 스트레스만 받을 뿐, 내 인생에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목표와 계획은 다르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게으르다면, ‘원어민과 프리토킹이 가능한 수준까지 영어 공부하기’ 같은 원대한 목표는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작고 하찮은 계획으로 쪼개서 자신을 다독여야 한다. 가능한 실용적인 방향이라면 더더욱 좋다.


 나의 경우, ‘영어 공부하기’라는 목표를 몇 년 동안 품어왔다. 대략 1월 6일 정도까지는 매일 단어를 외웠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듯 늘 꾸준함이라는 벽 앞에 좌절했다. 막상 원어민 앞에 서면 위잉위잉을 부르는 혁오가 된 것처럼 ‘아이... 아이... 아이... 아이...’만 반복해야 했다. 착한 목표에 그렇지 못한 태도였다.

   



목표 말고 계획을 세울게요


 그러나 ‘어플을 이용해 하루에 5분만 공부하기’, ‘넷플릭스를 볼 때는 꼭 영어권 드라마 고르기’ 같은 소박한 계획을 세우자 많은 것이 달라졌다. 가장 좋은 점은, 5분은 생각보다 금방 지난다는 거였다. 슈퍼 게으르니스트인 나도 이 정도의 귀찮음쯤은 참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루 5분 공부하는 것이 나의 영어 실력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루틴이 나에게 ‘자기효능감’을 안겨줬다는 사실이다. 게으르니스트에게 자기효능감은 아주 드물고 귀한 감정이다. 모든 성취의 토대가 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


 이렇게 한 줌 겨우 얻어낸 자기효능감을 지키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거창한 목표를 던져버리는 것이었다. 토익이나 오픽 같은 어학성적은 잊었다. 유튜브에서 수없이 들었던 '미드 쉐도잉' 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넷플릭스를 즐기는 게 끝이었다.




나를 사랑하는 게으르니스트가 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목표를 소소한 계획으로 바꾸는 일을 주저한다. 예를 들어 ‘매달 3kg 감량’이라는 목표를 ‘씻기 전에 10분 홈트 하기’라는 계획으로 바꿔보면 이런 생각이 절로 든다. '이래가지고 살이 빠지겠어?' 물론 이 정도를 가지고 매달 3kg씩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이전에도 3kg씩 빠지진 않았다. (이것도 내 얘기다) 그러나 적어도 계획을 지키는 사람이 될 수는 있다.


 계획을 지키는 사람은 계획을 키우는 사람이 될 수 있고, 계획을 키우는 사람은 언젠가 목표에 다다를 수 있다. 게으르니스트의 성취는 이렇게 아주 작은 발걸음으로 이뤄져야 한다. 자칫 큰 보폭으로 걷다가는, 그대로 중심을 잃고 침대 위로 쓰러져서 유튜브로 고양이 동영상을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 모른다. 충만하게 게으르기 위해서는 약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게으른 나를 고스란히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조금씩 자기효능감을 쌓아가자.




게으르니스트's 한 마디

"삶을 대충 하나로 뭉쳐버리는 건 게으르니스트가 누구보다 잘하는 일이다."

                    

소소한 일상과 각종 소식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있어요!

➡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이전 06화 게으름, 그 참을 수 없는 달콤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