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을 우리기 위해 홍차를 만드는 것은 아니니까

차도 삶도 나의 호흡대로

by 혜하

서양 홍차의 표준 우림법은 찻잎 3g을 3분 동안 우리는 것입니다. 라면이나 파스타 삶는 시간이랑 비슷하게, 꼭 3분을 지킬 필요는 없습니다. 좀 꼬들한 면을 먹고 싶으면 덜 끓이는 것처럼 좀 연한 차를 먹고 싶으면 2분 30초쯤, 진한 차를 먹고 싶으면 3분 30초쯤 우리면 되지요. 제 취향은 찻잎 양을 조금 많게 해서 3.5g을 3분간 우리는 것입니다. 진하고 선명한 맛이 납니다.


홍차 만들기가 익숙하지 않은 분들께 차를 나누어 드릴 때, 저는 ‘금방 끓인 물 2~300ml, 3g, 3분’ 하고 메모지에 써서 동봉하면서 “그런데 내가 진한 차를 좋아할지 연한 차를 좋아할지 모르니까, 한 2분쯤에 슬쩍 찻잎을 건지고 맛을 보세요. 맘에 들면 그대로 드시고, 좀 심심한 것 같으면 다시 담그세요.”하고 말합니다. “너무 진하면 물을 타세요.”같은 말도 하지요. 종종 “그래도 돼요?”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홍차 우리기라고 하면 뭔가 까다로운 규칙을 지켜서 섬세한 솜씨로 해야 할 것 같은 인상이 있는데, 제가 굉장한 얼렁뚱땅 영업 비밀(?)을 속삭였기 때문이겠지요.


삶에게 세상이 정해 놓은 규칙들도 이와 비슷합니다. 보통은 대학을 나왔다고 생각하고, 아르바이트 경험이나 여행 경험은 있습니다. 보기에 멋지지 않은 방 사진은 어디 올리기 좀 그렇고, 건강 관리는 하는 게 맞기 때문에 우리는 대체로 ‘운동해야 하는데’ 상태로 살아갑니다. 이런 규칙들은 알게 모르게 우리를 겁주고, 또 현재 내 모습이 권장되는 상태와 얼마나 다른지에 주목하도록 합니다. 우리는 직장이 충분히 번듯하지 않기 때문에 말할 때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하고, 살다 보니 그렇게 됐는데 연애를 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왠지 설명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합니다.


물론 규칙들 중에 도움이 되는 조언도 있습니다. 학교나 단체에 소속해 있어서 상담이 무료일 때 받으라거나 하는 것 말이지요. 그 외에도 작게는 처음으로 혼자 여행할 때 가방에 무엇을 넣어야 하는지 같은 일부터 크게는 직업이나 거처를 바꾸려고 할 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등, 삶에서 낯선 일에 도전해야 할 때 우리는 규칙의 도움을 받습니다. 먼저 그 일을 해 본 사람들이 가장 일반적으로 밟은 단계를 따라가고, 그런 것이 쌓여서 세상의 규칙이 되는 것일 터입니다.


하지만 3분을 우리기 위해 홍차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마셨을 때 맛있는 차 한 잔이 중요하지요. 진하면 덜 우리고 연하면 찻잎을 더 넣기도 하면서, 오직 나를 위한 한 잔을 만들기 위한 시작점으로서 ‘서양 홍차, 3g, 3분’은 존재합니다. 거기서부터 잎이 잘게 썰린 차는 좀 더 짧게 우리고, 남은 찻잎을 다 털었는데 2g밖에 없으면 물을 줄이거나 시간을 좀 더 길게 하거나 합니다. 또 어떤 차는 미지근한 물에 두 시간쯤 담가 놓으면 먹기 좋게 우러나고, 어떤 차는 에스프레소처럼 아주 많은 양을 아주 뜨거운 물로 10초만에 뽑아내기도 해요. 차도 인생도, 마시는 법과 사는 법이 무궁무진합니다. 심지어 똑같은 차라고 해도 여러 가지 다른 방법으로 맛을 낼 수 있습니다.


때로, 살다 보면 세상의 규칙들은 우리가 표준에서 벗어나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규칙을 지키기 위해 살지 않고, 누군가를 위해서 사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기준에 들어맞는 사람이야말로 세상에 없다시피 하겠지요.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차 마시기와 달리 삶의 규범은 그래도 남들과 비슷하게 해야 할 것 같은 것들이 많아서 불안해질 때가 잦지만, 그럴 때마다 저는 심호흡을 하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3분을 우리기 위해 홍차를 만드는 건 아니다.’라고요.


모든 규칙에 다 맞는 사람이 될 수 없듯이 우리들 각각은 아마 모든 규칙에 어긋나는 사람이지도 않을 것입니다. 또한 살다 보면, 나의 어떤 부분은 그린 듯 우연히도 세상이 정한 어느 모습에 들어맞겠지요. 그럴 때에, 저는 세상이 인정하는 훌륭한 모습이더라도 너무 우쭐하지 않고, 또 세상이 의심하는 이상한 모습이더라도 주눅들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3분을 우리기 위해 홍차를 만드는 건 아니고, 세상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살아가는 것도 아니’니까요.


저는 여전히 모르는 새 홍차를 우릴 때는 찻잎 3g을 3분 동안 우리고, 낯선 일을 시작할 때는 다른 사람들의 경험담을 찾아봅니다. 도달해야 하는 목표가 아니라 나의 삶을 만들어 가기 위한 시작점이자 조정 이전의 영점으로서요. 그 단계들이 저에게 그대로 잘 들어맞을지, 아니면 시도해 보니 나에게는 영 맞지 않아서 보통과는 다른 삶을 살지 아직은 모릅니다. 하지만 규칙을 위해 사는 것과 삶을 위해 규칙을 참고하는 건 언뜻 비슷하게 보여도 몹시 다른 일입니다. 인생을 바쳐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인생을 써서 도전해 보겠다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 사랑하겠다는 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확고한 꿈도 절실한 사랑도 그다지 없는 삶을, 두 번째 시각은 결핍이 아니라 무수한 선택지 중 하나로 놓아 두지요. 누군가는 하루하루 내가 먹을 것을 내가 벌며 이웃들에게 친절하기를 원할지도 모르고, 그러면서 자전거 배우기나 읽을 만한 새 소설책 고르기에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먼저 자전거 타기를 익힌 사람들에게서 조언을 얻을 수 있을 테고, 다른 사람들이 써 놓은 책 리뷰를 찾아볼 수 있겠지요. 3분을 우리기 위해 홍차를 만드는 것은 아니니까 내가 바라는 삶의 맛을 만들기 위해 어떤 규칙이든 참고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만의 따뜻한, 혹은 이제 여름이니까 시원한 티 타임을 찾아, 심호흡을 하고 마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볼까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