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관
《인간 실격》에 대해 한 마디만 하자면 (…)
인간에게는 격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제목이다.
그 시대에도 바로 지금도,
격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멋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 여행기의 첫 편에서 언급했다시피 다자이의 생가가 위치한 아오모리의 가나기 마을은 굉장한 시골이다. 대중교통으로 찾아오려면 아오모리 공항에서 히로사키로, 히로사키에서 고쇼가와라로, 고쇼가와라에서 다시 쓰가루 철도를 타고 가나기까지 와야 한다. 전철역이 있기는 하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랄까.
그런 벽지(僻地)인데도 사양관은 몹시 관리가 잘 되어 있는 한편, 주요 장소마다 다국어로 된 안내까지 제공하고 있었다. 한국어 설명도 문장이 깔끔하고 자세해서 따로 다른 자료를 찾아볼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다음과 같은 안내를 마주했다.
(…) 서고는 쓰시마 가문의 중요한 장부나 연례행사 물품을 보관하던 창고입니다. 현재는 자료 전시실로 활용하고 있으며, 다자이 오사무가 야간 상점에서 구입한 금속 재떨이, 20대에 집필한 〈달리지 않는 명마〉 직필 복제 원고, 즐겨 입던 망토 등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부엌 다다미 방에 당시 망토를 걸어두었으니 자유롭게 입고 사진을 찍으며 다자이 오사무가 된 기분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사양관 내부 안내문 중)
아니, 되고 싶지 않다. 여러분은 다자이 오사무가 되고 싶은가? 이 회차까지 나의 다자이 여행기를 따라온 분들이라면 알겠지. 다자이의 인생은 문학가로서 들여다볼 때나 흥미롭지 결코 '되고 싶은 모습' 따위는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공교로운 일이 있을까. 사양관에서, 나는 아까 아시노 공원에서 다자이를 두고 "터무니없는 남자"라고 말한 여행객 오와리 씨를 다시 만났다. 다자이의 망토를 앞에 두고 있는 나에게 활달하고 호기심 많은 성격인 오와리 씨는 말했다.
"모처럼이니까, 입어 보는 것도 좋지 않겠어?"
모처럼. 그야말로 인생에서 모처럼 시간을 내어 이 먼 쓰가루의 시골까지 올 계획을 세운 나는 이 단어에 흔들렸다. 나는 이 때 스물 여덟이었고, 다자이의 생가에 방문해 다자이 오사무의 망토 재현품을 목격하는 것은 일생에서 처음이었다. 내가 또다시 사양관에 방문할 날이 이후 이십 팔 년 안에 올 것인가? 기묘한 주문에 걸린 것처럼 나는 오와리 씨의 '모처럼'에 설득되었다. 나는 다자이의 망토를 입었다.
다자이 오사무가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보다 직관적이고 간단한 이유가 있다. 그는 키가 크고 잘생겼으며, 비록 반쯤 내놓은 자식이라지만 부잣집 도련님이었다. 다자이의 키는 175cm인데 그가 태어난 메이지 시대 남성들의 평균 신장은 160cm 가량이었다고 한다¹. 이런 남성이 우수에 찬 눈빛을 하고, 여성만큼이나 섬세한 마음을 지닌 채, 죽는 수밖에 없다는 둥 고뇌에 차서 중얼거리는 한편 〈직소〉 같은 감정적 호소력 짙은 작품들을 수십 편이나 써내는 것이다. 교양 있는 당대 여성들 가운데 어떤 취향을 지닌 이들의 수요를 사로잡을 만하다². 현대 여성인 나에게도 다자이의 망토는 발끝까지 끌렸다. 문득 설레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동시에 다자이 오사무의 남자로서의 매력 같은 것을 이해하게 된 것이 분해서 기분이 나쁘기도 했다. 그런 내 복잡한 심정은 짐작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모처럼이니까", "모처럼이니까", 하며 오와리 씨는 다자이의 망토를 입은 나를 사양관 여기저기로 데려다니며 포즈를 취하게 하고 연신 사진을 찍어 주었다.
시골인 가나기 마을은 하루에 열차가 몇 편 없다. 사양관을 다 둘러보고 나서도 다음 열차까지 한 시간이 넘게 남아 있었다. 나는 완전히 일행이 된 오와리 씨와 함께 사양관 근처에 있는 '다자이 오사무 소개(疎開)의 집'으로 향했다.
다자이는 2차 세계대전 중 공습을 피해 몇 번이고 거주를 옮겼는데, 도쿄 근처에서 두 번이나 피신했지만 그 집까지 불타 버려 결국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고향인 쓰가루의 가나기 마을로 돌아가게 된다. 이 때 머물렀던 본가의 별채가 바로 현 다자이 오사무 소개의 집이다. 일 년을 조금 넘게 머물렀지만 그 사이 스무 편이 넘는 작품을 집필한 다작(多作)의 요람이기도 하다. 현재는 기념관으로서 서재 등 집필 당시 모습을 보존하고, 원고나 다자이 작품의 초판본 등을 전시하고 있다.
"다자이를 좋아하십니까?"
오와리 씨는 기념관의 안내 직원에게도 이렇게 물었다. 관람 설명을 이어나가던 직원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이렇게 얼버무렸다.
"글쎄요, 좋아하는 부분도 있지요……."
놀라운 문답이었다. 다자이 오사무 기념관에서 일하는 직원이니 당연히 다자이 오사무를 좋아할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고 있던 나로서는 "다자이를 좋아하느냐"라고 굳이 묻는 일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좋은 부분도 있기는 하다" 정도의 뉘앙스를 띤 대답도 예상 외였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 마을은 '다자이 오사무'로 먹고 산다. 내가 단지 다자이의 생가에 가기 위해 이 작은 마을에 찾아왔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자면 다자이가 아니라면 방문할 일이 없었다는 말도 된다. 다자이는 말하자면 아오모리 사과나 오와니의 콩나물처럼 가나기의 특산물인 것이다. 특별히 콩나물을 좋아해야만 콩나물 볶음을 팔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이 직원은 단지 적당한 일자리가 필요했고, 나고 자란 마을에서 콩나물을 팔듯 다자이를 홍보하는 기념관에 취직한 것일 수도 있다. 다자이에 관심이 있어서 온 여행객들에게 친절하게 그 설명을 할 뿐인 충실한 인간에게, "다자이를 좋아하십니까?"라니. 미안한 질문일 것이다.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니었다. 직원은 "다자이의 작품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의 감성은 좋아합니다."라고 부연하며, 내가 힐끔거린 기념품 코너를 이어서 안내해 주었다.
다자이 핀 버튼과 스티커 등 요란한 굿즈들이 많았던 사양관에 이어 이곳에도 '다자이 오사무'를 테마로 한 온갖 상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다자이 실루엣 모양으로 구운 도자기, 'I love Dazai'라고 새겨진 가방, 다자이 오사무 작품 목록 티셔츠……. 일정 이상의 인기는 상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상업으로 이어진 인기는 결국 다소간은 우스꽝스러워지는 길밖에 없는 것일까? 도쿄 미타카에 묻혀 이 광경을 보지 못하는 다자이를 대신해서 나는 부끄러워했다. 그리고 "좋아하는 작가는 다자이입니다."라고 쓰여 있는 티셔츠를 집어들었다. 다자이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다던 직원이 말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티셔츠예요."
티셔츠에는 "좋아하는 작가는 다자이입니다."라는 문구와 더불어 다자이가 발표한 작품들의 제목이 연대순으로 빼곡하게 프린트되어 있었다. 확실히 다른 디자인에 비해서 마음에 들었다.
"구매한다고 해도, 뭐랄까. 조금 입기 부끄러울 것 같네요."
"아무래도 어두운 작가라는 인상이 강하니까요."
내가 마음에 들어하면서도 주저하는 마음을 솔직히 말하자 직원은 이해한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오와리 씨가 끼어들었다.
"그래서 부끄러워서 입을 수 없는 거야?"
"그건 아니지만."
"여기에만 있는 티셔츠랍니다."
다자이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직원은 아무래도 이 기념관에 애정이 있어 보였다. 좋은 일이다. 어쩌면 그도 나처럼 나름대로의 수줍음이 있어서, "다자이 작품은 별로"라는 말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어쨌든 그는 나에게 '제일 좋아하는 다자이 티셔츠'를 권하고 있지 않은가. 내가 이천 사백 엔에 다자이 작품 목록 티셔츠를 구매하자 오와리 씨가 옆에서 "비싸네."라며 거들었다.
묘한 기분이다. 다자이는 분명 불멸의 문학가다. 그를 욕하는 사람도 많지만 지금까지 문학으로서의 생명력이 살아숨쉬는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사양관도 이 다자이 소개의 집도 지금까지 직원을 고용하면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I love Dazai 가방도 그 사랑의 일환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아아, 경박해라. "경박하다면 경박한 그대로 괜찮지 않은가"³라고? 다자이. 그러는 당신도 "허리띠 대신 노끈을 맬 수는 없다"⁴라고 지껄이지 않았던가. 당신이 죽네 사네 하면서 작품을 쓸 때 머물렀던 여관들도 내가 방문해 보았는데, 온통 사치스럽고 아름다운 곳들뿐이었다. 어릴 적부터 좋은 것을 보고 눈이 아름다움에 길들여진 도련님의 취향까지 일상에서 배어나오니, 우울한 얼굴로 술을 마시고 글만 써도 함께 죽고 싶다는 여성들이 속출하는 것 아닌가.
다자이는 이런 자신의 모순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통스러워했다. 이 대목은 그의 문학적 지향이나 약자를 변호한다는 둥 의의를 부연할 것도 없이 우스운 고민인 것이다. 맨발로 흙을 밟고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구두 안에 들어와 양말을 뚫고 찌르는 한 조각 가시가 고통스럽다고 펄펄 뛰는 꼴이나 다름없다. 그래도 한 조각 가시가 발을 찌르면 무시할 수 없이 아프다. 차라리 구두도 양말도 벗어던지고, 작은 가시쯤은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발가죽에 굳은살이 배도록 살아간다면 좋을 텐데. 그런데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허리띠 대신 노끈을 맬 수가 없다. 내가 이토록 자세하고 신랄하게 다자이의 모순을 비난하는 이유를 알겠는가?
나도, 다자이의 이 모순까지를 좋아한다.
열차 시간이 되어 나는 가나기 역으로 향했다. 자전거 여행자인 오와리 씨는 여기에서 헤어졌다. 쓰가루 철도, '달려라 메로스'호. 여름날 오후, 아직 밝지만 석양의 기운을 품고 길어지는 햇살 속에, 아까 타고 왔던 것과 같은 1량짜리 주홍색 열차가 서 있다.
《인간 실격》으로 유명하고, 기념관 직원이 말했듯 어두운 작가라는 인상이 강해 선뜻 좋아한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작가이지만, 일본의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수록된 다자이의 밝고 희망찬 작품이 있다. 바로 〈달려라 메로스〉.
그 녀석을 죽게 해서는 안 돼. 서둘러라, 메로스. 늦으면 안 된다. 사랑과 진심의 힘을 지금이야말로 알려줘야 해.
다자이 오사무, 〈달려라 메로스〉 (1940)
우정과 신의를 주제로 한 단편인 〈달려라 메로스〉는, 폭정을 저지르는 왕을 암살하려다 붙잡혀 사형을 선고받은 주인공 '메로스'가 여동생의 결혼식을 열어 주기 위해 집행 전 사흘의 말미를 달라고 요청하며 시작된다. 메로스의 친구 세리눈티우스가 메로스를 대신해 인질로 잡힌다. 세리눈티우스는 자유롭게 풀려난 메로스가 사흘 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대신 처형당한다. 돌아오는 길에 메로스는 폭우로 불어난 강을 만나고, 산적들에게 붙잡히기도 하지만 친구를 살려내고 자신이 죽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린다. 물론 물리적인 고난 외에 번민도 있다. 조금만 시간이 늦으면, 이대로 도망치면, 자신은 살 수 있다…….
이런 알기 쉬운 구조와, 〈직소〉에서도 드러난 바 있는, 다자이 특유의 생생한 심리 묘사로 전달되는 긴박감과 번민의 드라마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줄거리 자체는 고대 그리스에서 있었던 일화를 따 왔지만, 다자이가 가장 묘사에 뛰어난 '번민'을 주축으로 재구성된 사건과 장면의 연출이 돋보이는, 교과서에 실려 있으니 누구나 기억하는 대표작 중 하나다(우리나라로 치면 위그든 씨의 사탕 가게와 버찌 씨앗이 나오는 〈이해의 선물〉 같은 느낌이리라).
'달려라 메로스'호를 타고 히로사키로 돌아오면서 나는 다자이의 엉뚱함과 우스움, 변호할 구석도 없이 한심한 삶의 모습들을 죄다 써내는 그의 고백문 같은 소설에 대해 생각했다. 《인간 실격》에 대해 한 마디만 하자면 제목에 주목하라고 하고 싶다. 실격이라는 말은 격이 있고, 그것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인간에게는 격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제목이다. 그 시대에도 바로 지금도, 격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멋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인간에게 격이 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도록 하는 처참한 사건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러한 세상에서 인간으로서의 격을 지키지 못하는 수치를 잊지 않은 인간이 마지막까지 발버둥친 흔적이야말로 《인간 실격》이다.
열차에서 내리자 히로사키 역사 내 가판대에서는 《인간 실격》 초코 빵을 팔고 있었다. 예의 다자이 오사무의 얼굴이 포장지에 프린트되고, 그 옆에 《인간 실격》이라고 커다랗게 써 있었다. 우스꽝스럽다. 불멸의 문학. 약자에게 공감하는 슬픔. 어쩔 수 없는 경박함. 그래도 지금까지 이어지는 사랑. 《인간 실격》 초코 빵을 보고 나는 문득 외치고 싶어졌다.
달려라, 달려라 메로스.
사랑과 진심의 힘을 지금이야말로 보여줄 때다.
힘내라, 다자이.
그리고 문학이여, 부세에서도 불멸해라!
1) 사실 현대 남성들보다도 크다. 현대 일본 성인 남성의 평균 키는 170.8cm라고 한다(일본 후생노동성, 2021년 기준).
2) 실제로 다자이 오사무의 내연녀이자 동반자살에 성공해 그와 마지막을 함께한 여성인 야마자키 도미에는, 일본 최초의 미용학교 설립자인 아버지의 '미를 추구하는 미용사라면 세상의 아름다운 것을 모두 배워야 한다'라는 신념에 따라 언어, 예술, 문화 등 다방면에서 두루 교양을 쌓았다. 꽃꽂이와 다도부터 외국어와 각종 공연, 전시 등을 섭렵한 야마자키 도미에는 다자이의 문학 · 사상 · 예술에 대한 견해 등에 깊이 빠져들었다.
3) 다자이 오사무, 〈여시아문〉 (1948).
4) 다자이 오사무, 〈나의 반생을 말하다〉 (1947).
이로써 《다자이 오타쿠의 일본기행》 사양관 편을 마무리합니다.
2-3주간 정비를 거친 후, 이어서는 다자이가 《사양》을 집필하며 머무른 료칸 '야스다야'와, 《인간 실격》 집필 시 머물렀던 '기운각' 편으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