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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하 May 30. 2020

세상에 없었던 말차 입문기 (4)

이토록 진지한 각오, 이토록 근본 없는 사랑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행복, 마음, 사랑, 그리고 절판된 도서.


반드시 사려면 어떻게든 중고로 살 수도 있겠고(정가 2만원이었던 책이 중고가 8만원으로 바뀌는 일을 감수하고서라도),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도서관 없다지만 저희가 찾는 것은 가지기만 하면 모든 비법이 습득되는 단 한 권의 비전서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책 사냥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일단 가볍게 읽고 참고하고 싶은 교과서 후보들이 모두 절판일 때. '일본 다도' 이론과 배경을 다룬 책은 절판이 될 만큼 주제로서도 마이너해서 동네 도서관에도 대학 도서관에도 없을 때. 아직까지 인맥이랄 인맥도 없는 청년 다인들이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을 바닥까지 박박 긁어 수소문하는 때입니다. 


내 학교에는 없지만 옆의 옆 학교에는 딱 한 권 연구용으로 그 책이 들어와 있다거나, 지금 내 동네는 아니지만 가족이 살고 있는 동네의 옆 동네 도서관에서 상호 대차로 책을 빌릴 수 있다거나, 하면 염치불고하고 부탁을 했지요. '그게 꼭 필요하거든!'


절판, 절판, 절판의 향연…….


마치 2020년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인터넷 검색만 하면 뭐든 나오는 시대에 배울 수 있는 책을 찾아 발로 뛰어다니고, 소중한 책은 손에서 손으로. 때로는 택배에서 택배로, 서점에서 구매한 것도 아닌데 완충재에 싸여 박스에 담긴 채 열렬히 옮겨졌습니다. 누구 한 사람이 목표 책을 구하면 네 명이서 돌려 읽었지요.


"이번 책 누구 차례예요?", "이거 구했어요!" 하는 말들이 마치 보물찾기처럼 오가던 톡방. 새 책이 오면, 그걸 읽을 생각에 종일 마음이 두근두근했습니다. 일본 다도 3대 유파 가운데 오모테센케(表千家) 다도법을 정리한 책을 받아 오는 날에는 너무 신이 나서, 다다미가 깔린 다실은 없지만 집에서 마루에 무릎 꿇고 앉아 책을 펼쳐서는 서술된 단계를 하나하나 따라해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차 타는 법에서 최소한 헤매지는 않게 되자, 무대뽀 말차 입문기는 이제 지식 배경을 마련하는 단계에 접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말차 다도가 생겨난 문화 배경, 역사, 현대적 개괄, 유파별 작법, 이론을 다루는 논문 급의 해설서까지 온갖 책을 찾아 종횡무진. 그야말로 사람들과 서가 사이를 헤매고 다녔지요. 


이렇게 책을 찾아 읽으려면 어떤 책이 무슨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 지금 입문용으로 좋은 책인지 좀 더 지식을 쌓은 다음에 추천하는 참고서인지 알려줄 사람들이 있어야겠지요? 저희에게 따로 선생님은 없었습니다만 이렇게나 온갖 곳에 티를 내면서 '나 말차에 관심이 있소' 하고 어필하고 다닌 바람에 알음알음 추천 도서 리스트 정도는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아니, 리스트를 수집했던가요. '이 책이 괜찮다' 라는 지나가는 말 한 마디를 들으면 얼른 메모한 다음 책 찾기를 시도했었으니까요. 그야말로 전공 공부보다도 의욕을 낸 말차 공부의 나날이었습니다.




 


차를 마시면 감상이 있듯 책을 읽어도 감상이 있습니다. 일본 다도 문화는 15세기 사람인 센 리큐에게서 본격적으로 정립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일본 3대 다도 유파인 오모테센케(表千家), 우라센케(裏千家), 무샤노코지센케(武者小路千家) 는 모두 센 리큐의 후손들이 분가해 이어져 오는 다도 가문이니, 15세기의 리큐가 21세기 다도까지를 그야말로 '꽉 잡고' 있는 셈입니다. (유파 이름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센케(千家)' 부분이 무슨 뜻인지 눈치채셨나요? 그렇습니다, '센 리큐(千利休)' 의 '센(千)' 이지요.)


15세기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은 좋게 말하면 고전미가 있고 나쁘게 말하면 지나치게 엄격합니다. 현대에는 실천하기 어려운 지시도 있고, 문화적 배경을 모르고 봐서는 이게 무슨 의미지? 싶은 부분도 있습니다.


일본 다도의 전통은 손님으로 초대받아 차를 마시는 입장, 그리고 주인으로 손님을 초대해 대접하는 입장, 두 가지를 가정해서 다회(茶會)를 열기를 기본으로 합니다. 다회는 정식으로 진행하면 4시간 가량이 소요되고, 차를 마시는 일 외에도 찻물을 끓이기 위한 숯불을 감상하고, 향을 피우고, 주인이 소장한 미술품을 감상하거나 합니다.


현대인이 새벽 4시에 시작하는 다회를 준비하기 위해(다회를 여는 시간과 목적을 다사칠식(茶事七式) 이라는 이름으로 정해 두는데, 새벽 다회는 어둠 속에서 시작해 날이 밝아 오는 정취를 즐긴다고 되어 있습니다.) 자정부터 손님맞이를 준비하기도 힘든 노릇이고, 음양 사상을 반영해 설정한 수십 개 기준선을 따라 선반 위 장식품 위치를 조정하는 일은…… 꼭 그래야 하나 싶네요.


다도구를 놓는 기준을 설명하는 <남방록> 일부.


소위 근본 없는 말차 입문의 장점은 이런 때에 솔직한 감상을 털어놓을 수 있는 자유로움입니다.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구나', '운치가 대단한데' 부터, '이건 현대에 다르게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라거나, '당시는 귀족들만 향유하던 고급 문화였으니 존재했던 규정이지만 지금은 굳이 지킬 필요 없을 것 같다.' 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센 리큐는 일본에서 차의 성인, 다성(茶聖)으로 추앙받는 인물로서 아직도 그 기일에 맞춘 기념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일본 다도를 논하는 책 중에서도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남방록> 은 센 리큐의 제자가 '스승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를 기록해 모은 책입니다. 세상 그 어떤 차 문화보다도 전통과 규정을 지키기에 엄격한 일본 다도에서 입문자가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 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초보는 일단 배우는 입장이고 배울 때는 어느 정도 시키는 대로 따라해야 내가 모르는 진리를 터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짜 의미도 모르면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어쩐지 섣부르고 예의 없는 짓 같기도 합니다. 거기다 옆에서 모든 규정을 하나하나 지키며 진지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쩌겠어요? 입은 꾹 다무는 편이 좋습니다.



'겸손하게 배운다' 와 '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 는 그러나 공존할 수 있습니다. 나는 다도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일지 몰라도, 그보다 더 큰 차원, 한 방면의 문화나 세상의 모습을 보고 나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는 한 명의 사람이니 그렇습니다. 다 알지 않는 상태에서 하는 판단이라는 점만 기억한다면 지금 하는 말이 절대적이라고 여기지도 않기에, 오히려 겸허하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만일 내가 멋모르는 소리를 했다고 깨닫게 된다면, 그 때 '더 깊은 의미가 있었구나.' 하면 되겠지요.


나의 중심을 놓치지 않고, 잘못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작법도 생각도 실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은 열려 있고 발상은 자유롭습니다. 한 치 앞을 몰라 모든 것이 새롭고, 경직되기보다는 찾아 나서며, 무리하지 않고 즐거움을 지킵니다. 세상에 없던 말차 입문은 자칫 압도감이나 두려움이 앞설 수 있는 다도 문화를, 편견이나 두려움 없이 각자에게 맞는 방식으로 다가가기 때문에 세상에 없던 입문입니다.


손과 몸이 완전히 익숙해지면 절로 의미를 깨치게 된다, 그러면 그 전까지는 고행해야 할까요? 마음의 평화와 단순한 기쁨을 향하는 다도에 작법의 엄격함으로 인해 가로막힐 수 있는 사람들은요? 근본이 없는 채로 시작한다면 어떤 토양에서든 각자의 뿌리를 내릴 수 있습니다. 말차는 무엇일까요? 지금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말차는 차이고, 차는 즐거운 것이다.




 


모든 복잡한 절차들이 결국은 차 한 잔을 앞에 놓는, 맛과 향과 분위기의 음미에서 기쁨(혹은 평온, 선(仙), 도(道), 무엇이든 좋습니다. 어떤 '좋음' 말이에요.)을 얻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리큐 선사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 그럼에도 더 읽고 더 배워 보고 싶은 사람들. <남방록 연구> 를 한 번 훑고 다른 책들을 대엿 권 읽고, 그 사이에 말차도 몇 통 더 마시고는 다시 남방록으로 돌아오시겠다는 분. 다도의 운치를 더욱 넓은 범위에서 이해하고 싶다며 문화사 전반과 일본 고전 시가를 공부하기 시작한 분. 차와 뗄 수 없는 향 문화에는 다같이 발을 들이고, 다실에 걸리는 족자에 묵적이 있으니 서예를 익히겠다는 분. 다실 한 칸 안에 모인 문화는 이어지면 한계가 없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마음 놓고 즐기면서 할 수 있는 말차 입문에서 시작했습니다.


요즘, 여전히 근본 없이 '말차 입문' 중인 <운월시사> 는, 예술로 구현된 일련의 동양 정신 문화들을 현대화해 부흥시키려면 대중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차를 마시면서 이런 이야기도 하는 것이지요. 물론 차맛 이야기도 하고, 말차를 더 맛있게 만드는 방법 이야기도 하고, 다실에서 차를 치운 발상은 센 리큐도 울고 갈 와비사비(侘・寂; 소박하고 조용한 일본 특유의 미의식)라며 농담도 합니다. 



와중에 다른 차로도 해 보았으니 여기서도 해 보자며 여러 차를 비교 시음하고, 또는 차를 같게 한 채 도구를 다르게 써 보고, 방법과 기물에 따라 달라지는 맛을 관찰하며, 계절에 맞는 주제를 잡아 다회를 합니다. 아직 다 몰라도 이렇게 신나게 놀면서는, 소장하는 차 도구를 써 보라고 빌려 주시는 분, 시도해 볼 만한 작법 팁을 알려 주시는 분, 물 건너 해외에서 차를 사다 주시는 분 등 두루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세상에 없었던 말차 입문> 을 하며 느낀 점은, 간절히 원한다면 길은 열리고 사랑 가득한 열정은 세계를 널리 보게 해 준다는 점이었습니다. 나도 여전히 입문 중이지만 내 힘과 지식이 닿는 대로, '말차를 마시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어' 하고 생각하시는 분께 작게나마 안내를 해 드리기도 하지요.


센 리큐는 다도를 불립문자(不立文字)라 여겨 기록 남기기를 꺼려했으나 그 제자인 난보 소케이(南方宗啓)는 '웬만하면 없애 버리는 것이 좋겠다' 는 말을 들으면서도 다도를 책으로 정리해 후세에 남겼습니다. 리큐는 다도를 일종의 비의(義)라고 보았으며, 그 전통을 따라 현대 다도 유파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작법은 기록하지 않고 오직 대면 교습으로만 전하고 있습니다.


리큐의 시대, 다도란 전용 정원과 부엌이 딸린 다실이 필요하며 명인의 기물과 손님을 대접할 시공간을 갖춘 특권층의 도였습니다. 비의를 전수받으려면 차곡차곡 쌓은 시간과 안목(을 갖출 수 있는 금전적 여유)으로 자격을 증명해야 했지요. 그러나 현대에 누구나 다도를 할 수 있다면 아마도 비의의 시대만은 끝이 난 것 같습니다. 이 세상 어딘가에는 이제 찻사발 하나, 차솔 하나로 마룻바닥에 앉아 할 수 있는 다도도 있을 것입니다.


그 다도로 가는 길은 누구도 알려줄 수 없고 오직 그 사람의 마음으로 찾아가기에, 일단 말차가 궁금한 사람이든 법식이 엄격할 것 같아 주저하는 사람이든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며 방향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세상에 없던 말차 입문기> 는 그 가운데서도 우당탕 시작한 몇몇 사람들의 사연입니다.



어딘가에서 말차를 마시기로 한 사람들의 이야기. <세상에 없던 말차 입문기>, 다음 편이자 마지막 편에서는 그래서 그 사람들이 마시고 있는 차, 한 잔의 말차이자 모두의 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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