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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하 Mar 03. 2021

티클래스로 차 배우지 마세요

취향은 배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차를 시작한다고 하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홍차를 다룬 책을 사야 할까요? 티 클래스에 등록해야 할까요? 요즘은 차 안내서도 많이 나오고, 여러 찻집이며 기업들에서 체계적인 커리큘럼과 교재(선별한 좋은 차)를 가지고 티 클래스 과정을 제공하곤 합니다. 8주나 16주가 부담이 된다면 네 번 정도, 혹은 하루 정도 체험해 볼 수 있는 가벼운 강의도 있습니다.


그런 티 클래스 설명을 보면, '차는 처음 시작할 때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그냥 마셔서는 알 수 없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문적인 가이드와 함께 올바른 경험으로 시작하세요, 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클래스를 듣는 일이 정말이지 차 생활에 유익할 것 같다는 인상을 우리에게 주지요.

 

그런데 티 클래스로 차를 시작해야 하느냐면 저는 권하거나 권하지 않습니다. 반반이거나 권하지 않는 비율이 조금 더 높습니다. 혹시 주변에서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물어볼 거예요. '왜 티 클래스로 차를 시작하려고 하시나요?'


"글쎄, 아는 것도 없고, 차라고 해도 뭐부터 해야 할지 잘 모르겠으니까요…."


이런 상황이라면 저는 조금 생각해 보고 결정하라고 할 것 같습니다. 친한 지인이라면 제가 품을 들여서 도와 줄 테니 천천히 하면 어떻겠느냐고 할 것도 같네요. 왜냐하면 강의로 차를 시작하는 일은 분명 체계성과 단시간 안의 선별된 좋은 경험이라는 이점을 제공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위험성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절벽을 타는 아웃도어 취미도 아니고 티 클래스가 위험성을 동반하다니 이게 무슨 소리냐고 하실지 모르겠네요. '티 클래스의 위험성' 이라는 이 묘한 구절에 관해서, 이제부터 천천히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차를 시작한다' 는 말은 여다보면 좀 이상합니다. 다른 취미에 대해서 우리는 그렇게 말하지 않거든요. 자전거 타기나 독서를 한다고 하면 우리는 자전거를 시작한다, 책을 시작한다, 라고 하지 않고, 그냥 '자전거 타기로 했어' 라거나 '책 좀 읽으려고' 라고 합니다. 이 방식에 따르면 차는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요? '나 차를 마시려고.'


차를 마시고 싶으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차를 마시면 됩니다. 홍차 책을 읽든 티 클래스를 등록하든 그건 알아서 할 일이지만 차를 즐기려면 차를 마셔야 합니다. 차를 마신다는 뜻은, 차를 뜨거운 물에 넣어서 우러나게 한 다음 마시는 것입니다. 차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데 차를 마실 수 있나요? 물론이죠. 커피에 대해 몰라도 커피를 사 마실 수 있듯, 차를 몰라도 차를 마실 수 있습니다.


저는 일단 차를 취미로 갖고 싶다고 생각하고는 홍차 책이나 클래스가 아닌 빈 노트를 한 권 샀습니다. 차를 많이 마셔 봐야 내가 좋아하는 차를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하지만 무슨 차가 있는지는 모르니까, 쇼핑몰에서 '홍차 초보자용 샘플러' 를 몇 가지 구매했지요. (30종쯤 되는 다양한 차를 2만 원이 안 되는 가격에 만나볼 수 있습니다.) 차를 우린 다음, 하나 마실 때마다 어떤 맛인지 썼습니다. 차맛에 대해서 기록한 글을 '시음기' 라고 부른다면서요? 저는 시음기라는 단어도 모르던 때라 혼자 '차 일기' 라고 부르면서 노트를 채웠습니다. 아직 차 동호인들이 모이는 커뮤니티가 있는지도 모르는 시절이었지요.


그러는 동안 저는 찻집도 찾아다니고 티 클래스도 가고, 아는 차도 많아지고 좋아하는 맛도 찾았습니다. 카라멜 향과 바닐라 향을 구분할 수 없었던 처음을 생각하면 굉장한 발전이었지요. 그러는 동안 알게 된 분들로부터 '1인칭 소비자 시점 찻집 괴담' 도 꽤 들었는데, 바로 어떤 찻집들에서는 손님이 차를 좀 아는 것 같으면 괜찮은 차를 내주고, 안목이 없는 것 같거나 돈이 없어 보이면 대충 대접한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 등이었습니다.


이런 제보는 안타깝지만 한둘이 아니라서 분명 실제로 어딘가에서 횡행하는 풍조인 것 같긴 한데, 정말 그런 일을 겪느냐와 별개로 이 괴담은 차를 마시려는 초보들에게 더욱 두려움을 얹어 줍니다. '내가 차에 대해 잘 모르면서 차를 마셔서 무시당하거나, 별로인 차를 대접받으면 어떡하지?'


차문화 속 일부 가십으로 취급하고 넘어간다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신경이 쓰입니다. 그러면서 더욱 '차를 마실 자격' 이나 '차를 배워야 하는 이유' 에 집착하게 되지요. 그러나 잘 모른다는 공포에는 끝이 없습니다. 


그게, 차를 파는 분들은 아무래도 진짜 차를 이론부터 실전까지 겪고 공부한 전문가이자 사업가일 테고, 나는 취미로 차를 마시는 소비자이니까요. 본업이 아닌 이상 사업을 하는 만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수는 없습니다. 공부를 해도 차 전문가가 될 수는 없을 테고, 그런 무지에 대한 공포로 공부하기 시작하면 아무리 배워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차를 배우기 위해 차를 마시는 것은 아니잖아요?



차를 마시는 이유는 차를 마시며 즐겁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차를 통해 맛있고 즐거운 경험을 많이 얻기가 차 즐기기의 본질입니다. 정신적인 안정, 수양과 명상 효과, 나 들여다보기 같은 부수적 효과는 '즐거운 경험' 에 포괄될 수 있을 테고(차를 마시며 정신적인 안정을 얻으면 즐거운 경험이지요.), 차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관심이 있어서 알면 좋지만 관심이 없다면 몰라도 될 부분입니다. 좋은 물건을 알아보는 감각, 심미적 이해는 정말로 부수적입니다. 저는 차를 마시며 미적 감각이 정말로 발달했지만 보기에 아름답기만 하고 맛이 없는 찻자리라면, 혹은 아름답고 맛있지만 시종일관 마음이 불편한 찻자리라면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즐겁고 맛있게 차를 마시려면 내가 무엇을 맛있어하고 즐거워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바로 '내 취향' 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취향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극도로 정제된 공간에서 기물을 감상하며 조용한 향기에 집중하는 시간을 즐겁게 느끼는 사람도 있는 반면 찻집은 가급적 언제나 열려 있어서 아무 때나 찾아갈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를 주는 곳이 좋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차 취향이야 말할 것도 없지요. 홍차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녹차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찻잎 외 향이 인공적으로 가미된 차는 취급조차 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 찻잎에 어떻게 다른 향들을 조화시켜서 상품으로 만들어 냈는지를 탐구하는 일이 가장 즐거운 컨텐츠인 사람도 있습니다.


티 클래스로 차를 시작하는 일의 위험성은 그러므로 취미 문화에 입문하면서, '취향은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고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없다' 라는 대전제를 잊는 위험입니다. 아무리 중립적으로 소개한다고 해도 사람은 개인의 가치관을 갖기 마련이라, 어디서 차를 '배운다' 고 하면 자연스럽게 그 쪽으로 따라가게 됩니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이니 더 그렇습니다. 사는 소개만 맡을 뿐일까요?


티 클래스에 가서 여러 군데의 차 산지에 관한 설명을 들으면서, "A지역은 맛이 좀 밍밍한 편이고 B지역은 떪은 맛이 강해서 몇몇 매니아들은 선호하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진입 장벽이 있다, 반면 C지역은 밸런스와 향기가 다 좋은 편이다." 라고 듣는다고 합시다. 이럴 때 무척 자연스럽게 C산지 차가 좋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실은 '밍밍하다' 라고 말로 지나쳤던 A지역 차는 나에게 평온하고 맑게 느껴져서 가장 마음에 들 수도 있는데, 이렇게 말을 들어 두면 '밍밍하다' 라는 한 마디가 인상을 만들어, 나중에 A지역 차를 집어들기 어렵게 하지요. 그보다는 조금 더 어필되었던 C를 고르고 싶은 생각이 더 들 것입니다.


말은 정말 많은 정보를 내포합니다. 간단히 세 지역 차에 대해 지나가는 말로 서술하기만 해도 내가 차를 처음 마시는 사람이라면 '떪은 맛은 차에서 별로인 요소인가', '차에서는 밸런스가 중요한 평가 요소인가', 하고 무심코 생각하게 됩니다. 간단하게 '어느 지역 차는 어떻다', 라고 해도, 그 한 지역이 차 산지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면 지금까지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차가, 수십에서 수백 년간 다양하게 생산되어서 상품으로 나오고 사람들의 찻상에 올라갔을까요. 그러나 그 차를 마셔 보기도 전에 '거긴 그렇다더라' 라고 여길 수 있는 수많은 요소가 차문화 속 교류에는 존재합니다.

 

살면서 세상의 모든 차를 마셔 볼 수는 없고 잘 정련된 앞 세대의 배움은 분명 나에게 도움을 줄 터입니다. 그러니 정보를 받아들이지 말라는 뜻이 아니며, 무조건 몸으로 부딪히는 쪽이 최고라고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모든 것을 '처음 시작' 하는 그 타이밍에는, 만약 당신이 그냥 낯설거나 두려워서 차를 배우면서 시작하려고 한다면, 티 클래스보다는 찻집 열 곳을 먼저 추천하고 싶습니다. 차를 마시면서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차를 느끼면서 시작하고, 차를 즐기면서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차는 식음 문화이고, 취미 문화이며, 각자의 취향이자 차라는 분류 하나 안에서도 수백 가지 종류와 즐기는 방법이 있습니다. 차문화는 일면 개인적이고, 놀랍도록 다양하고, 어느 것도 다른 것에 비해 '더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일면에서는 분명히 품질을 기준으로 줄을 세울 수 있고, 고급과 보급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며, 온갖 가치관이 대립하는(자연 숙성하지 않은 보이차는 차도 아니다, 찻잎에 향으로 장난친 걸 먹지 마라, 등 과격한 발언들이 횡행합니다.) 권위주의적인 세계가 차의 문화에도 있습니다.


복잡하고 무서운 차 세계에서 길을 잃지 않고 즐거움을 찾아가려면 그러므로 '내 취향' 을 알고 쫓아가는 탐구심과 자부심이 있어야 합니다. 내 감각, 내 즐거움에 당당해지는 일이지요. 


고상한 취향이니 나와의 만남이니, 명상이니 정신 문화니 해도 차는 본질적으로 참 쉬운 것입니다. 물을 부으면 우러날 뿐인 차 한 잔입니다. 그런데 해발고도 2800미터 높은 산에서 나는 차가 좋고, 300미터 높이 차밭에서 나온 차는 상대적으로 운치가 부족하다고 쉽게 말해지는 세상입니다. 실제로 가격도 수 배에서 수십 배까지 차이가 나니(고산 차는 가격이 꽤 비쌉니다.) '제 입맛에는 낮은 게 좋던데' 라고 하면 왠지 고산운(이름도 있어요. 고산 차에서만 나는 운치를 고산운이라고 부릅니다!)을 몰라서 이러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품종이 저지대에서 자라면 말하기 좀 부끄럽다고도 여겨집니다.


일반적으로, 재배하는 지대가 높아지면 향과 무형의 운치가 강해지고, 지대가 낮으면 맛과 풍미가 뚜렷해집니다. 저는 고산 차 취향이긴 하지만 때로 고산 차들은 맛이 상대적으로 부족해 '밋밋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청아할' 때도 있지만 말이지요. 대만 차 가운데 부드러운 우유 향이 특징인 금훤 품종은 그리 비싸지 않고 보편적인 차이며, 해발고도는 애초에 언급되지도 않는데, 금훤 우롱은 제 대만 차의 기억 중에서 첫사랑이자 지금까지도 줄곧 좋아하는 차입니다.




 


'처음부터 좋은 차를 접해야 한다. 좋은 걸 알면 그 아래는 거들떠보지 않게 되고, 좋은 차를 알아보는 안목이 빠르게 생긴다. 잘 배워서 지름길로 가라.'


차 세계에서 종종 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만 저는 이 멘트에 회의적입니다. 오히려 향이나 미술 같은, 차와 붙어 있는 다른 분야에 입문할 때는 최대한 천천히 가려고도 노력 중입니다. 어째서냐 하면 취향은 학문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저는 가이드 없이 차를 헤집고 다녔기에 입문한 첫 3년여간이 매일매일 새로운 발견과 기쁨으로 가득했습니다. 마치 세상을 처음 알게 되어서 모든 것이 새롭고 놀라운 일들뿐인 아이처럼, 찻집에 가서 알록달록한 틴을 벽 가득 진열한 것을 봐도 즐거웠고, 시즌 상품 패키지 디자인을 봐도 이런 기획을 하다니, 하고 놀라웠으며, 새 지역과 새 품종 차를 마셔 보는 일은 말할 것도 없이 흥분해서 일기를 써야 하는 일이었지요. 만 원이 안 하는 찻잔들을 보면서도 두 시간 동안 즐거울 수 있었고 찻잎을 덥힐 때, 물을 부었을 때, 우린 후, 뚜껑에 남은 향과 잔 안에 남는 향이 모두 다르다고 구분하게 되자 모든 기물들을 들었다 놓았다 킁킁거렸습니다.


제가 지금 가진 감각과 지식은 좋은 선생님을 두고 엄선된 차를 마시며 연구했다면 일 년만에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3년간 매일매일 즐거울 수 있는 것을 굳이 1년으로 압축해서 소비해야 할까요? 세상에 재미있는 컨텐츠는 적고, 저는 새로운 것을 조금씩 오래오래 즐기고 싶어서 배움을 아끼기까지 합니다. 무엇보다 좋은 차를 알아맞히기 위해서 차를 마시는 것이 아니고 즐거우려고 차를 마십니다. '좋은 것을 알아봐야 한다' 는 말도 때로 압박이 될 수 있습니다.


차는 취향이고, 차는 취미이고, 취미는 처음부터 즐거울 수 있습니다. 배우는 과정도 즐겁고 배운 후에 새롭게 보이는 것이 있어서 좋기도 하지만, 결코 그렇게 배워서 깨달은 즐거움이 차를 처음 알아서 놀라워하는 즐거움보다 가치로운 것은 아닙니다. 둘은 평등합니다.


모두에게는 각자의 속도와 방식이 있으며 그 지점에서만 누릴 수 있는 고유한 기쁨이 있습니다. 차가 등산이라면 정상에 도달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 걷는 어느 지점에서든 거기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있습니다. 알록달록한 가향 차 패키지는 얼마나 감탄스럽나요! 이를 두고 고작 '찻잎에 장난친 물건' 이라고만 여긴다면 그 쪽에서 차의 가능한 즐거움 가운데 하나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티 클래스에 가세요. 차를 더 알고 배우고 싶고, 차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기만 해도 흥미롭고 감탄스러워서 메모를 멈출 수 없는데다 예시가 되는 차를 마실 때마다 놀랍고 감탄스러워 매 순간 기쁘고 즐겁다면 그 티 클래스는 나에게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그런데, 단지 차를 배워야 할 것 같아서 가지는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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