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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하 Jun 09. 2021

삶에서 보석 같은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자고 생각했다


밤에 집에 돌아오면, 열한 시 이십 분.


차를 마시고 자기에는 늦은 밤, 그래도 문득 차를 마시고 자야겠다고 생각할 때.


간혹 늦은 밤에 홀로 차를 마시고 있으면 마법 같은 고요한 순간들이 나타납니다. 그럴 때를 놓치지 않자고 생각했어요.


문득 자리를 정리하려다가 멀리서 본 자정의 다탁.


지금까지 벌써 열 편 정도 리뷰를 쓰면서, 작지만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일상의 소중한 것은 참 많지만 막상 말하려면 말문이 막히곤 해요.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막막하기 때문이겠지요. 왜 막막하냐고 하면, 그 감정과 그 시간의 기분을 언어로 바꾸어 기록하지 않고 그저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때 그렇게 느끼는 시간 자체를 즐기고, 남기지 않기를 기조로 한두 해를 지낸 적도 있어요. 기록에 대한 압박을 받지 않는 것은 좋았지만 잡아 주는 것이 없으니 삶이 바빠질수록 그 시간에 차분히 집중하는 일도 어려워졌습니다. 리뷰를 쓰기로 결심하기 조금 전까지는 느긋하고 깊숙하게 차와 향을 즐기는 시간이 정말로 드물어졌지요. 세상의 모든 선택에는 장단이 있다는 점이, 이런 것을 말하는 걸까요?



제가 취미에서 마음으로 느낀 점을 기록해 놓고자 하는 용도, 그렇지만 그렇게 하는 김에 여러분께 소개할 수 있을 만큼 정리된 언어로 써서 남겨 놓고자 하는 의도로 시작한 이야기들은 몇 편만에 제가 자신의 삶을 더 아름다운 것으로 들여다보도록 만들었습니다. 차분하게 느낀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좋아하는 것을 (진짜로 전달되게) 말하려고 언어를 모은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런 글을 한 편 만들어내기 위해서 원래 그럭저럭 알고 즐기던 물품들이 만들어진 배경과 제게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세세히 살피면서, 혼자 즐기는 이 취미가 그 언제보다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일상의 풍류를 리뷰한다. 그런데, 그렇다면 일상을 리뷰, 즉 되돌아보게 됩니다.


내 삶에서 일어나는 일에서 좋은 부분을, 정성껏 살피고 다듬어서 남에게 보여줄 수 있을 정도로 정돈된 형태로 남기고, 소개한다.


이 일은 생각보다도 많이 즐거운 것이었습니다. 단지 무엇을 즐기고 그 감상을 쓸 뿐인데도 자신과 자신의 시간을 보고 받아들이는 깊이가 달라졌다고 느꼈어요.


아직 가지고 있는 것들만 해도 반조차 쓰지 못했기에 앞으로도 이 시리즈는 계속해서 이어지겠지만, 또 중간중간에 이렇게 감상을 말하고도 싶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그 때가 생각보다도 빨리 오네요.



삶에서 보석 같은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자고 생각했습니다. 문득 차를 마시다가, 문득 자리를 정리하다가, 향을 피워 놓고 앉았을 때 잠시 느껴지는 바람, 바람에 실려서 연기가 흐르고 연기가 흘러서 나에게 와닿는 느낌. 삶에서 감각에 집중하는 순간은, 어쩌면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세상과 내가 이어져 있다고 체감하는 결정적인 순간.


그저 일기일 뿐인 감상이었다면 이만큼 읽어 주시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전해지는 마음이 있다면 기쁩니다. 이 자리를 빌어 읽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도 드리고 싶네요! '읽는 사람이 있다' 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쓰지 않았겠지요. 그렇게 때로 존재만으로 사람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런 보이지 않는 연결을 위해 작가들도 글을 써 나가는 것아겠지요. 제가 여기서 전해 드리는 것은 일상이지만, 일상의 기쁨만을 정제해서 전해 드리니 부디 전해 받는 쪽에서도 일상의 즐거움이셨으면 좋겠어요.


러면 다음 글에서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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