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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하 Jun 08. 2021

이슬을 흐트러뜨리는 가을 바람: 무사시노 하츠카제

도쿄 향아당

도쿄 향아당 두 번째 리뷰입니다.


1. 억새꽃은 달빛에 흔들리고: 무사시노 츠키카게

2. 이슬을 흐트러뜨리는 가을 바람: 무사시노 하츠카제 


시리즈에 관한 설명은 이전 글을 참조해 주세요.




무사시노 하츠카제(むさしの初風).


무사시노에 부는 첫 바람이라는 이름입니다.

푸른 빛깔 라벨에, 백단과 박하 조합이라고 써 있으니 패키지만 보아도 청량한 향이겠구나, 싶은데요,


테마가 된 와카를 찾아 보니 사이교 법사(西行; 헤이안 시대 승려이자 와카 시인)가 읊은 구절로


구슬처럼 늘어진
 이슬 흩어 버리고
무사시노의
풀잎을 눌러쥐는
가을날 첫 바람

玉にぬく  露はこぼれて
武藏野の  草の葉むすぶ  秋の初風



가을의 시작은, 문득 바람이 쌀쌀하다고 느낄 때라던가요?


풀잎에 구슬처럼 종종 늘어서 있는 이슬을 휭 하고 흩어 버리고, 풀이 우거진 들판(무사시노)을 꾹 눌러 불어 들에 무늬를 새기는 가을의 첫 바람.


생각보다도 초가을 감성이었습니다. 이 계절에 피우기에 대놓고 '가을 바람' 으로 끝나는데요?!


설명지에 향마다의 와카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어쨌든 불을 붙여 보았습니다.


향아당의 이 시리즈는 향연이 정석적으로 우아하게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이 좋다 싶습니다. 마치 선향이라는 깃대 끝에 바람에 나부끼는 흰 깃발을 매달아 놓은 것 같아요.



감상은 생각보다도 여름에 좋다! 입니다. 지금쯤 구매하시면 딱 필요할 때 피우시겠다 싶어요. 서늘하게 그늘진 침엽수림 속을 거니는 듯 시원하고, 몸의 열이 식는 느낌입니다. 그야말로 쌀쌀함을 안은 가을 바람인데, 정말로 가을에 피우면 너무 쓸쓸하고 추워질 듯하고, (물론 그 때가 되면 또 쓸쓸한 가을 느낌을 최고로 즐길 수 있는, 계절에 딱인 향이라고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6월이잖아요?) 좀 늦여름이다 싶을 때 한 줄 피우면 피서용 가을 바람을 불러 오는 마법을 부리겠네요.


향조는 달고 시원하고 사각거리는 편입니다. 얼음물에 담갔던 수박 같아요.



무사시노 시리즈의 테마가 전통과 현대의 만남인데, 무사시노 하츠카제는 정말로 전통 향료(백단, 감송, 안식향, 용뇌 등으로 보통 절에서 피우는 향이나 제사에서 피우는 향 같은 느낌)와 현대 향료(자스민, 페퍼민트, 라벤더 등 허브향과 여러 꽃향)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았구나 싶습니다. 저는 둘 중 고르라면 고민 없이, 항상, 언제나, 전통 향 파여서 소장하고 있는 컬렉션은 대부분 절간 향이거든요. 그런데 무사시노 하츠카제는 제 취향에도 맞는데다 전통 향의 어쩔 수 없는 무게감도 가뜬하게 덜어 놓았고, 이 정도면 트렌디한 카페에서도 디퓨저로 둘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시간을 타고 흐르며 서서히 섞이고 바뀌어 가는 흐름처럼, 가을의 첫 바람이 시원섭섭하게도 불어 오고 있습니다.



* 매거진의 모든 리뷰는 주관적 감상이며, 가게 연혁 등을 직접 인용하지 않는 이상 제가 즐기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옮깁니다. 따라서 현재 시점과 다르거나 잘못된 정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오류가 있을 시 알려 주시면 반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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