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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하 May 07. 2020

세상에 없었던 말차 입문기(2)

가진 건 진심뿐인 사랑의 세레나데, 그대여 뽀얀 거품을 내어 주오...



말차를 시작하겠다고 할 때 부딪히는 벽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두려움.


말차는 무척이나 고상한 문화라는 인상이 있습니다. 말차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도 '거래처에 방문했는데 말차를 내주어서, 관련 예절을 몰라서 잔뜩 긴장한 채 대접을 받았다.' 라고 이야기할 만큼, 일상 예절은 아니고 따로 배워야 하는 교양입니다. 


말차는, 차를 마시기 위해 특별히 마련된 방(다실)에 들어가는 법, 들어가서 걷는 법, 인사하는 법, 앉는 법, 서는 법이 모두 정해져 있습니다. 다실 면적, 도구를 배치하는 방법, 위치는 cm단위로 정해져 있고 도구를 다루는 방식과 순서도 엄격합니다.


이러니 다실까지는 없어도 좀 각을 잡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거품을 내도 잘 내야 할 것 같고, 내가 만든 차가 '제대로 된 말차' 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이렇게 따라하는 정도로 어디 가서 말차를 마신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두려움, 차를 즐기기 전에 걱정부터 앞서고 만 것이지요.


엄청나게 이것저것 필요할 것 같았는데 막상 가진 건 그릇 하나와 솔 하나뿐. 이걸로 내가 말차를 만들 수 있을까?


다행히도 저희는 속된 말로 짬이 있었습니다. 이런 두려움은 보통 사람들이 차를 처음 볼 때 가지는 인상이니까요. '내가 차를 마신다고 해도 될까?'

 

한때 저도 가진 적 있던 이 두려운 감정은 일단 마시기 시작하면 슬슬 사라집니다. 이걸 내가 혼자 할 수 있을까, 제대로 하긴 하는 걸까, 하는 마음을 넘어서 '차는 범접하기 어려운 우아한 문화' 에서 '차는 물을 부으면 우러나는 것' 라고 여기게 된 경험이야말로 저희의 무기였죠.


두려움에 대응하는 법 : 그러니 일단 해 봅시다!



2. 어려움.


라고 생각하자, 어려웠습니다. 당시는 국내에 변변한 일일 체험 말차 클래스도 없었거든요.


차를 혼자 한다고 생각해 보면, 찻잎을 주전자에 옮기는데 그 전에 주전자를 덥힌다거나, 개완이라는 녀석은 주전자와도 생긴 모양이 달라서 쥐는 법을 연구해야 한다거나 하는 디테일이 있습니다.


말차는, 이를테면 저어서 거품을 내지요. 이 단계를 '격불' 이라고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처음 저어 보면 사진처럼 거품이 뽀송하게 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금에서야 말하자면 격불에서는 손목을 가볍게 쓰는 스냅이 중요한데요, 누군가 한 번 알려주면 쉽게 터득할 수 있지만 혼자 깨닫기는 꽤 어렵습니다. 가볍고 발랄하게 젓지 않으면 차가 꼭 녹조류가 자란 늪같이 되거든요.


사진 속 완벽한 거품의 말차
제 말차는 어쩐지… 잘 안됐어요.


거품이 잘 나지 않아도 두려워하지 않고, 가루에 물을 타면 된다고 용감히 생각하는 건 좋은데 그래서 내가 만든 차가 괜찮은 차인지 더 노력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것이 말차 익히기의 어려움입니다.







정식으로 다도 선생님을 두고 말차를 배우는 경우에는 먼저 절차부터 배웁니다. 도구 이름, 차를 만드는 순서를 하나하나 익히는데 처음에는 무엇인지 잘 모르는 채로 따라하게 되지요. 관심이 적은 분들은 지겨울 수도 있고, 관심이 좀 있어도 지겨울 수 있습니다.


한 번에 그야말로 수많은 것을 외워야 하거든요. 말차에 필요한 기초 도구 목록을 잠깐만 살펴볼까요?



말차를 만들려면 필요한 것 :


차를 담는 다완, 차를 젓는 차선, 차를 뜨는 숟가락(茶杓), 완을 닦을 때 쓰는 다건, 다른 도구를 닦을 때 쓰는 비단 손수건(帛紗), 차를 체에 거르기 위한 거름망, 체 친 차를 옮겨담아 둘 차 통, 다완을 덥힌 물을 옮겨 놓을 퇴수기, 물을 담아 놓는 물통(말차 전용으로 제작된), 물을 뜨는 국자(말차 전용), 물을 끓이는 솥(말차 전용), 솥에 불을 올릴 화로(말차 전용), 화로를 설치할 다실 등.



말차 한 잔을 만들기 위한 무척 기본적인 도구 세트


그뿐일까요. 솥에는 뚜껑, 손잡이, 받침 등을 가리키는 용어가 따로 다 있고, 물 국자도 마찬가지이며, 국자를 놓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고, 계절과 차 종류에 따라 위 도구들의 서로 다른 버전을 사용해야 합니다.


찻수건은 접어서 허리띠에 끼우고 빼내서 접고 다시 무릎 위로 갔다가 도로 접어서 뚜껑을 한 번 닦는데, 뚜껑을 한 번 닦고 다른 그릇을 닦기 위해 다시 손수건을 펼쳤다가 접고… 해야 합니다.


영화 <일일시호일> 에서, 찻수건 다루는 법을 설명하는 장면. 따라해 보시겠어요?



이 귀찮고 복잡한 과정을 헷갈리기만 하면서도 따라하는 이유는,


 과정에 익숙해지면 어느새 그 과정에 담긴 마음을 알게 되기 때문

 

니다.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물을 뜨세요.' 보다,


'물을 뜰 때는 손가락을 이렇게 두고 국자의 마디 근처를 잡습니다. 물은 국자에서 2/3정도 뜨고 찻잔에 반 정도 부은 다음 되돌려 놓습니다.' 


라는 명확한 지시가 있으면 이런 것들에 신경쓰느라 잡생각이 없어집니다. 나중에는 머리로 기억하지 않아도 몸이 따라갈 정도가 되면, 고요히 이런 일들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절차가 다도의 식(형식), 그리고 절차를 따라 하면서 어느새 깃드는 것이 다도의 심(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보통은 형식을 먼저 합니다. 조금 전에도 설명했다시피 '고요한 마음' 이라고 말로 해도 전해지지 않고, 형식을 따르다 보면 어느새 깃드는 것이 마음이니까 형식이 갖춰지기 전에 마음을 알기는 꽤 어렵거든요.


그런데 형식을 배우려고 해도 어디 배울 구석이 없는 우리 청년들은 어떻게 할까요?


감함과 진심밖에 없는 저희는 무려 다도를 마음부터 시작하는 파격을 시도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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