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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하 May 15. 2020

세상에 없었던 말차 입문기(3)

휘청휘청 기웃기웃, 한 발짝씩 놀이처럼 하는 차 


잘못 탄 말차는 참…… 맛이 없습니다.


이건 큰 문제입니다. 평온이니 마음의 고요함이니 운치니 해도 이 모든 것은 맛있는 차를 마시면서 느끼는 요소들이고, 결국 '맛있는 한 잔의 차' 가 없으면 차를 연습하고 있을 맛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잘못 탄 말차는 맛이 없습니다. 경험치를 쌓으려면 당연히 여러 번 시도해야 하고, 처음부터 잘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만 최선을 다한 맛없는 말차를 한 사발 말아 놓고 있자면 망친 요리를 눈앞에 둔 것처럼 우울해지기 마련이지요.


선생님이 있으면 조언이라도 구하고, 본격 다도 교실에서 배운다면 풍치라도 즐길 텐데, 내가 차려서 내가 만들고 내가 치워야 하는 내 책상 위의 망한 말차는 슬픈 차일 뿐입니다.


그래도 연습을 안 할 수는 없죠. 이 우울함을 극복하기 위해, 그리고 더 맛있는 말차를 위한 조언을 얻기 위해…



말차가 망해도 걱정하지 마세요. 내 망한 말차를 자랑합시다!


지금은 온라인 친구의 시대. 격식의 두려움에 구애받지 않는 말차의 첫번째 스텝. 내가 하는 일들로 수다를 떨어 봅시다.


저도 처음에는 거품이 잘 나지 않으면 괜히 부끄러운데다 막막하기만 했었는데요, 하지만 비슷한 분들과 만나 말차를 어떻게 만들지, 손을 어떻게 쓰면 좋은지, 참고할 만한 유튜브 영상은 무엇이 있는지, 도대체가 번역된 정보가 없어서 현대 문물인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일본 웹 페이지를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등등을 수다 떨고, 말차도 다른 차랑 같아요! 하는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말차를 하는 가장 중요한 요점을 몸에 익힐 수 있었습니다. 바로


말차는 다른 차와 똑같이 참 즐거운 것



이라는 기분이지요. 


이번에는 그렇게 혼자 펼치는 말차 찻자리를 좀 더 들여다볼까요?








말차를 마시겠다는 일념 하나로 어찌어찌 수소문해서 도구를 갖추었습니다. 찻사발(다완), 거품을 내어 저을 대나무 솔(차선), 말차를 뜰 숟가락(차샤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말차 가루. 이렇게 네 가지가 갖추어지면 가장 간단하게 말차를 만들어 볼 수가 있습니다.


이외에도 쟁반이라거나 다완 밑에 놓을 작은 천이라거나, 갖출 수 있는 도구들을 갖춥니다. 찾아보면 쟁반 위에서 하는 간단한 다도법도 정식으로 존재한다고 합니다. 


찻상 위에 쟁반을 가져다 놓고, 가진 물건들을 나름대로 가지런하게 늘어놓아 보다가 문득 알고 싶어집니다. '원래 다도에서는 이걸 어떻게 놓을까?'



책, 인터넷, 영상, 번역기까지. 현대 문명의 도움을 받아 찾아낸 다도 따라해 봅니다. 500년이 넘게 전해 내려오는 규칙에는 고유한 미가 있기 마련이지요. 따라서 느껴 보고, 그 모양을 응용해 내가 보기에 예뻐 보이는 구성으로도 또 놓아 봅니다.


차선은 전용 받침대가 있어야 하는 줄 알았는데 다완에 그냥 걸쳐 놓는 모습도 다도 책에 종종 보입니다. 그 모양대로 나도 걸쳐 보기도 하고, 전용 받침이 없으면 다른 받침대로 쓸 만한 접시를 찾아다 받침대가 있을 자리에 놓아 보기도 합니다.


전용 물 국자와 솥을 가지기는 아무래도 좀 어렵습니다. 그냥 전기 포트를 사용하는데, 팔팔 끓는 상태보다는 좀 더 낮게, 찻물 온도를 적당히 조절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포트에서 끓는 물을 잠시 옮겨서 식힐 그릇을 따로 놓기로 합니다. 새로운 그릇이 추가되었네요? 그러면 전체 배치에서 이 그릇은 어디에 있어야 아름다울지 생각해 봅니다.



정해진 형식을 하나하나 따르지 않고 있는 대로 시작한 말차는 완벽하지 않지만 자유롭습니다. 도구가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지식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그런데 지금 이 찻상을 어떻게 더 아름답고, 조화롭게 만들 수 있을까?' 를 생각하며 딱 한 발씩만 바꿔 보고 찾아 보고 나아갑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완전히 도구가 갖춰지지 않아도, 모든 형식을 따르고 있지 않아도 스스로 확립한 내적 질서에 따라 차의 마음, 차의 평온을 느끼는 순간이 옵니다. 문득 차를 저으면서 대나무 솔이 도자기를 긁어 사각사각하는 소리를 듣거나, 그 순간 가볍게도 손이 움직이는데 차분하게 가라앉은 어깨를 압니다. 살짝 열어 둔 창에서 살랑살랑 오후 공기가 불어 들어오고 있습니다. 눈은 젓고 있는 차를 향하고 있어서 창문은 보고 있지 않지만 지금 날씨를, 지금 이 공간의 온도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충만을 겪을 때마다 마음은 한 발씩 자라납니다. 그리고 좋은 순간은 한 번 반짝이고 사라지지요. 


그러니 좋은 찻자리를 느꼈던 것은 어제의 일, 오늘은 또 새로운 날의 차. 무엇보다도 아직까지 별로 아는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알아보고 싶습니다. 닿기 어려운 규칙, 형식을 또 한 번 찾아 보고, 또 한 부분 가져와서 또 한 번 차를 마십니다.


앞서서 이 말차 입문기가 '마음을 먼저 했다' 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실은, 이런 말차는 마음이 앞섰다기보다는 같이 갑니다. 형식과 마음이 어깨동무를 하고 서로 조금씩 배워 가며, 딱 한 걸음씩 천천히 함께 나아가는 기록입니다.


그러면서 외우지 않고, 많은 규칙 목록에 압도당하지도 않고 조금씩 알게 됩니다. '차 가루를 넣기 전에 찻사발을 더운물로 덥히세요. 그리고 덥힌 찻사발은 다건으로 깨끗이 닦은 다음 가루를 넣습니다.' 누군가 절차를 알려주고 시키는 대로 따라하는 것과는 다른 수많은 시행착오가 이 사이에 있습니다.


그 속에서 차를 이렇게도 타 보고 저렇게도 망쳐 보고, 도구에 더 친해지고, '차 숟가락은 물로 설거지를 하지 말고 그냥 수건으로만 닦으라구요?' 같은 말을 알음알음 듣습니다. 대나무로 된 차 숟가락을 수건으로 닦으며 오래 쓰면 길이 들어 반질반질 윤이 나게 된다니 내 숟가락도 그렇게 될지 기대가 부풉니다.


그러다가 문득 '차를 타는 순간 온도를 유지해야 차가 맛있으니까 찻사발을 미리 덥혀야겠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찻사발 안에 물기가 남아 있으면 기껏 체친 가루가 도로 뭉칠 수도 있겠으니 덥힌 다음 닦고 나서 차를 넣어야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출석부를 보고 외우는 친구들의 이름과 얼굴은 헛갈릴 수 있지만 한 명 한 명과 즐겁게 놀면서 기억한 친구들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잊어지지 않습니다.






자료를 열심히 찾는다면, 다도를 하는 절차를 찾아내어서 단계별로 메모할 수는 있을 거예요. 하지만 형식을 안다고 해도 몸에 익숙해지기를, 정식 다도에서도 결국 목적합니다. 




차는 배우는(習う) 것이 아니라 익숙해지는(慣れる) 것.



말차 다도를 다룬 영화, <일일시호일> 에서 다도 선생님(키키 키린 분)은 수많은 절차에 어려워하는 주인공들에게 '차는 배우기보다도 익숙해지는 것' 이라고 했으니까요.


무엇보다 고상한 교양을 위해서 말차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다른 모든 차와 마찬가지로 즐거워서 하고 있는 말차이기에 하나씩 친해지고 한 발씩 익혀 나가 모든 순간이 나에게 재미있고자 하지요.






<세상에 없었던 말차 입문기>, 다음 편에서는 절판된 책을 찾아 지인의 지인의 대학 도서관을 털고, 다람쥐 도토리처럼 물 건너 말차를 아껴다 공수하는, 말차 레벨업을 위한 온갖 무대뽀 탐험기가 이어집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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