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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하 Jun 16. 2021

검은 땅 새로 갈아엎은 숲: 다즐링 스프링 스플렌더

정파나 다원


지역 이름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는 분들도 많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홍차 산지인 다즐링(Darjeeling). 다즐링 지역에서 나는 홍차를 그 이름 그대로 다즐링이라 부르니, 아마 한국의 많은 분들께는 지역 이름인 다즐링보다 홍차로서의 다즐링이 더 익숙하실지 모릅니다.


히말라야 산맥의 서늘한 안개를 끼고 있는 다즐링 지역에는 산비탈을 타고 수많은 다원, 즉 차 농장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각 다원은 그 위치와 지형별로 서로 다른 독특한 풍미를 띠는 차를 생산하고, 그래서 한 다원에서 딴 찻잎으로만 만든 싱글 에스테이트(Single Estate) 티는 그 다원의 스타일과 매력을 오롯이 보여 주게 되지요.





오늘 소개드릴 차는 다즐링에서도 줄곧 이름난 다원 가운데 하나인 정파나(Jungpana) 다원의 퍼스트 플러시(First Flush). 초봄에 따서 소비자들에게는 늦봄에 도착하는, 그 해의 첫 다즐링입니다.

 

보통 화이트와인을 닮은 무스카텔 플레이버로 잘 알려진 다즐링 세컨드 플러시(6월쯤에 잎을 땁니다.)가 그 무르익은 맛으로 인기가 많은데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다즐링은 뭐니뭐니해도 첫물차인 퍼스트 플러시입니다.


퍼스트 플러시는 세컨드 플러시나 어텀널(Autumnal; 가을에 딴다고 해서 이렇게 부릅니다.)만큼 맛이 풍부하지는 않지만 봄의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특유의 생동감과, 통통 부푼 햇나물처럼 기름진 향기는 다른 차에서 맛볼 수 없는 퍼스트 플러시만의 특징입니다.


2021년 다즐링 퍼스트 플러시, 정파나 다원 '스프링 스플렌더'(Darjeeling 1st flush 2021, Jungpana T.E. 'Spring Splendour') 입니다.


기다란 이름이지만 이 중에서 진짜 차 이름은 '스프링 스플렌더' 하나! 다원에서 출시하는 여러 차 중에 스프링 스플렌더, 그 중에 21년도 차니까 21년 스프링 스플렌더라고 하면 되겠네요. 이런 차라도 우리는 법은 다 같습니다. 물을 끓여서, 찻잎에 부으면 되지요.



대부분의 홍차는 3g, 3분을 기준으로 우리는 시간이나 찻잎의 양으로 농도를 조절하면 됩니다. 저는 3.3g에 3분 20초 정도로 조금 더 진하게 만들었어요.


덥힌 찻주전자에 잎을 넣고 흔들어서 맡아 본 향기의 첫인상은 숲의 향. 겨우내 얼어 있던 땅이 풀리고 퇴적한 낙엽이 흙에 양분을 넣어 검게 만든, 두릅 냄새, 풀꽃 냄새 나는 갈아엎은 향긋한 땅입니다.


이윽고 차를 우려내면 드러나는 풍미는 흔히 기대하는 퍼스트 플러시의 역동감보다도 섬섬하고 깔끔합니다. 꼭 취나물이나 고사리 새순 같아요. 새로 짠 흰 목면이 이런 느낌일까 싶습니다.



그냥 먹기에는 마치 갓 딴 산나물처럼 기운이 조금 세고, 식사를 곁들이거나, 레몬 파운드 케이크도 어울릴 것 같은 맛. 저는 마시다가 급히 달걀과 아보카도로 브런치를 만들어 왔어요. 함께 먹어 보니 과연 잘 어울립니다.


이 풋풋하고 살랑살랑 움직이는 자그마하고 가득한 향긋함들. 마치 요정의 숲 같다는 생각을 하다 보면, 스플렌더(찬란함이라고 해야 할까요?) 라는 이름이 어떤 식으로 붙게 되었는지 짐작할 것 같습니다. 봄의 찬란한 기적은 여름의 폭발적인 성장, 세상을 울긋불긋하게 물들이는 가을과도 다르고, 얼어 있던 땅에서 모든 새싹들이 고개를 내밀어 황량하던 땅이 푸르게 물들고 자그마한 꽃잎들이 해를 향해 열리기 시작하는 것이겠지요. 그런 풀 위에 어른어른 내리쬐는 봄의 광채.


찬란하고 아름다운 봄은 모르는 사이 곁에 다다라 있습니다.



* 매거진의 모든 리뷰는 주관적 감상이며, 가게 연혁 등을 직접 인용하지 않는 이상 제가 즐기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옮깁니다. 따라서 현재 시점과 다르거나 잘못된 정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오류가 있을 시 알려 주시면 반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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