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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하 Jun 13. 2021

차거품에 반짝이는 윤슬: 우지의 말차

교토 훈옥당

교토 훈옥당 시리즈  번째 리뷰입니다.


1. 비 내리는 교토의 책방: 사카이마치 101

2. 안개 속에 감춘 싱그러움: 미야마의 연꽃

3. 파삭거리며 눈꽃 부서지는 소리 들리고: 키타노의 매화

4. 차거품에 반짝이는 윤슬: 우지의 말차





말차를 탈 때 흔히 향을 피워 놓습니다. 은은하게 바람을 타고 전해 오는 향, 물 끓는 소리, 느긋하게 차를 만들면서 공간과 향기와 소리가, 감각이 어우러져 확연한 '지금' 이라는 시간을 만드는 순간은 선명하고도 특별하거든요.


그런데 그 말차를 향으로 만들어 두었다니 이것은 풍경 속에 풍경을 그려 놓은 것인지, 가만히 앉아서 불만 붙이면 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가성비 향인지, 하여간에 호기심이 동하는 컨셉이었습니다.


우지의 말차(宇治の抹茶).


우지는 교토 시내는 아니고, 교토 시내에서 반 시간 정도 나가면 닿을 수 있는 근교입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신사라는 우지가미 신사(宇治上神社)가 있고, 공기가 깨끗하고 물이 맑아 차로도 무척 유명합니다. 실제로 일본에서 처음으로 차 재배를 시작한 곳도 우지이고, 지금도 우지 차라면 좋은 차라고 치지요.


우지가미 신사(왼쪽)와 정경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사찰 뵤도인(平等院)(오른쪽). 둘 모두 교토 일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문화재입니다.


센차, 말차, 교쿠로 등 우지에서 나는 차들은 다양한 형태로 가공되지만, 오늘은 우지의 말차(宇治の抹茶)가 제시하는 말차에 집중해 보기로 해요.


'산 능선까지 줄지은 차나무가 비탈에 무늬를 만드는 우지의 아름다운 차밭. 바쁜 일상 속에서 한순간의 여유를 찾게 하는, 그윽한 말차 향입니다.' (훈옥당 공식 페이지)



확실히 꽃이 기조인 다른 향들에 비해서는 느낌이 새롭습니다. 보다 촉촉하고 차분하다 싶고, 자, 이런 첫인상 다음에는, 그렇지요. 고요히 기다립니다.


주변 분들께 말차를 맛보여 드리면 종종 하시는 말씀이, '미역 같아요' 라거나 '어쩐지 해조류……' 라는 반응이 있습니다. 맞아요. 잘 만든 말차 중에서는 고소함과 부드러운 감칠맛이 강해 꼭 갓 구운 김 향기가 나는 것처럼 짭쪼롬한 바다 향이 느껴지기도 하고, 또 어떤 종류의 말차는 차 본연의 쌉싸름한 맛이 주가 되면서 거품을 일으켜 부드러운 질감으로 마시도록 의도한 것도 있습니다.


이 향은 그런 말차의 면면들 중 딱 가운데입니다. 맑은 날 산뜻한 향기. 쌉싸름하고 고소하고 희고 사각거리는, …… 차 거품 위로 떨어져 반짝이는 햇볕 같아요. 윤슬이라고 하던가요.


 

우지의 말차(宇治の抹茶)에는 진짜 말차와 백단, 계피를 배합해 특유의 쌉쌀한 향을 살리고 맛의 테두리를 잡았다고 하는데, 그 비율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아 의도한 대로 산뜻한 차 향기를 느끼게 하는 듯합니다. 이런 곳에서 가게의 오랜 노하우를 엿보게 되는 것일까요?


코 끝에 느껴지는 고소함은 은은한 풀의 촉촉함. 짙은 녹음과 햇볕이 만드는 여름의 향기입니다.



* 매거진의 모든 리뷰는 주관적 감상이며, 가게 연혁 등을 직접 인용하지 않는 이상 제가 즐기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옮깁니다. 따라서 현재 시점과 다르거나 잘못된 정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오류가 있을 시 알려 주시면 반영하겠습니다.


* 직접 찍은 사진 외 인용되는 사진은 브랜드 공식 페이지에 게재되어 있거나,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C) 라이선스에 해당하는 저작물입니다.


* 오늘의 커버 사진 : 백이나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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