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땀띠가 났다. 한낮엔 몇 걸음 걷는 것조차,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힘들다. 푹푹 옥수수를 삶고 있는 듯한 가마솥 같은 지구 걱정을 뒤로한 채, 다시 에어컨에 켜고 있는 요즘이다.
이번 휴가의 멤버는 한솥밥을 먹는 식구들이다. 우리 집엔 한 지붕에서 3세대가 살고 있다.
결혼 후 동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외국으로 건너갔다. 제부가 학업을 마친 후, 한동안 외국에서 맞벌이를 하다가 자리를 잡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제부는 곧 운이 좋게 대기업에 입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났다. 제부가 바람이 난 것이다. 동생 부부는 서로에게 첫사랑이나 다름없는 새내기 커플로 오랜 기간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
제부가 외국에서 학업을 마칠 때까지 동생이 직장을 다니며 뒷바라지를 했는데, 학비뿐만 아니라 철딱서니라고는 없는 남편을 어르고 타일러, 허리띠를 졸라매고 겨우겨우 졸업을 시켰다. 동생의 노력들이 빛을 발하고 있는 시점, 제부가 대기업에 입사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동생은 아이 둘을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왔다. 부모님은 졸지에 이혼한 자식이 나뿐 아니라, 하나가 더 추가되었고, 돌봐야 하는 손주도 둘이나 늘었다.
지난 시간들은 우리 모두가 가족으로서 적응하는 기간이었다. 어른뿐 아니라, 아이들도 함께 살게 되면서 생긴 규칙들과 분위기, 장점과 단점 등을 받아들이며 달라진 삶을 경험하고 있었다. 이번 휴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움직이는 나와, 계획 하에 움직이는 동생,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휴가 준비는 자연스럽게 동생의 몫이 되었다. 6월 초부터 일정이며 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하더니 동생은 곧 숙소를 잡아 놓았다. 7월 중순이 되자, 식단을 짜서 여행 날짜에 맞춰 식재료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나는 여행에서 하늘이와 내가 입을 옷가지 등을 챙기고, 여행 전날 인터넷으로 주문하지 못한 품목들을 마트에서 함께 구입하는 일만 함께 했다.
문득, 동생이 준비한 메뉴들이 우리의 식성과는 무관하게 동생네 가족 위주로 짜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샤브샤브, 외국 카레, 스파게티, 피자 등은 사실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조카들을 위한 메뉴였으니 두말할 것도 없었다. 나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메뉴와 비용 등 여러 가지 부분을 함께 챙길걸 하는 아쉬움과 숙소와 수영장 비용 등을 생각해 보면 똑같이 비용을 부담하는 것도 불합리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리조트에서 아이들과 장기자랑을 하고, 산책을 하고, 수영을 하고, 물 썰매를 타고, 숲 속의 카라반에서 바비큐를 구워 먹고, 마시멜로를 구워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문득문득 올라오는 불만의 목소리는 조용히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둘째 날 카라반에서의 아침, 잠자리만큼 심기가 불편해져서 잠에서 깨어났다. 잠자리가 불편해서 잠을 설친 것이다. 전날 하늘이와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별똥별을 보느라 한참을 누워 있던 사이, 우리의 잠자리가 우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테이블 침대로 정해졌고, 나는 잠에서 깨자마자 허리가 아파서 잠을 못잤다고 몇 번을 투덜거리며 말했다. 그 말속에는 ‘네가 지온이랑 함께 잔 진짜 침대가 가장 편하고 좋은 자리이고, 내가 하늘이랑 잔 자리가 제일 불편한 자리야, 이 여행에서 내가 희생을 하고 있다’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 하늘이와 이번 여행의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하늘이는 모든 시간이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고 했다.
“엄마, 그렇게 많은 별들은 처음 봤어.”
“근데 하늘아, 우리랑 이모네는 취향이 진짜 다른 것 같아. 너무 예뻤지? 다음엔 우리 둘이 와서 실컷 보자.”
카라반 마당에 누워 우리는 2시간 동안 하늘을 봤다. 카라반 마을의 불빛이 하나 둘 꺼지자, 별빛은 점점 가까워졌다. 까만 밤하늘에 보석처럼 박힌 아름다운 별들을 보고 있으니, 밤을 꼬박 새워도 좋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번쩍하고, 섬광처럼 스치는 별똥별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어둠 속에서 벌레들의 움직임조차 우리를 불편하게 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바닷가에서 봤던 밤하늘 생각도 나서, 그 시절 바닷가에서 듣던 노래와 하늘이가 좋아하는 BTS의 노래를 번갈아 들으며 감성에 흠뻑 젖었다.
“하늘아, 우리 둘이 왔으면, 더 재밌었을까?”
하늘이는 "그랬을지도 모르지"라고 대답했다가 다시
“우리 둘이 왔어도 엄청 재밌었을 것 같아”라고 바꾸어 말했다.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하늘이와 물속에서 4시간을 함께 보내주지는 못한다. 하늘이는 작년에 코로나로 인해 물놀이를 못 했다고 엄청난 기대를 했었다. 버킷리스트의 항목에도 들어있었다. 나는 아마 물속에서 4시간이나 있었다면 현기증이 나서 떡실신 했을 것이다. 조카가 있어서 하늘이의 물놀이는 훨씬 신나고 재밌다. 어른들에게 보여줄 퍼포먼스를 구상한다고 그 둘은 방문을 걸어 잠그고,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 아이들의 밤은 마치 한여름 밤, 축제 같았다. 막내 지온이는 펄쩍펄쩍 뛰며 환하게 웃었고, 지온이의 웃음은 보기만 해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아기 티가 남아 있다. 막내라는 이유로도 충분했다.
동생이 바비큐를 구울 때 자연스레 나는 상을 차리고, 바비큐와 함께 시원한 캔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평생 하고 또 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어린 시절 우리만 아는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나, 고기 진짜 잘 굽지 않아? 점점 잘 굽는 것 같지? ㅋㅋㅋ”
“그러네. 웬만한 남자보다 네가 낫다 하하, 평생 네가 구우면 되겠네, 넌 앞으로 쭈욱 혼자 살아라, 알았지?ㅋㅋ ”
하필 우리가 배정받은 카라반은 높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었다. 거기서도 맨 끝, 가장자리였다. 첫날 다른 리조트에서 재료를 많이 소진하고도 고기며, 음료, 맥주, 옷 가방 등으로 양손이 모자를 정도였다, 게다가 글을 쓴다고 챙겨 온 오래된 노트북까지(결국, 펼치지 못했지만^^). 동생과 나는 끙끙거리며 식재료를 들고 언덕을 오르내렸다. 숨이 타들어 갈 것 같았다.
“다른 때는 진짜 다 괜찮은데 이럴 때는 남자가 필요하긴 해. 무거워 죽겠다. 헉헉헉”
“아까 옆 방 아저씨가 짐 나를 때, 우리 것도 미친척 하고, 슬쩍 올려놓고 싶더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