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를 하며 중얼 걸린다. 아니, 내가 무슨 야쿠자도 아니고,
여자 몸에 무슨 칼자국이 이리 많나. 성한 곳이 없구나 ㅠㅠ'
세 번째 암에 걸렸다. 샤워를 하며 몸을 살피다가 내 몸의 수술자국들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4개의 흉터,
30대 초반 열여덟 시간여의 진통 끝에 결국 제왕절개를 했던 희미한 흉터, 그로부터 약 십 년 후, 40대 초반 왼쪽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겨드랑이 임파선까지를 절제했고, 얼핏 보면 잘 모르겠지만 오른쪽 가슴에 비해 가장자리가 낮으며 겨드랑이 부분이 조금 꺼져 있다.
그로부터 약 5년 후, 건강검진에서 갑상샘암이 발견되었다. 갑상샘 전절제 수술을 받았다. 목의 정중앙, 목주름 사이, 대놓고 숨겨 놓은 듯한 굵은 절개 자국이 있다. 마지막으로 지난 8월, 반대편 유방에 막 피어난 암세포를 부분절제했다. 솜씨 좋은 의사샘이 유두의 가장자리를 드라마틱하게 절개하여, 걱정했던 것에 비해 수술 자국이 확실히 눈에는 덜 띄지만, 흔적은 남기 마련이다.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땐,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여전사처럼 삶에 대한 욕구가 넘쳐 들렀다. 무엇이든 하면 될 것 같았고, 그저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하며 인생의 모든 면면에 의미를 부여했다. 말라가는 화분이 물을 끌어 호흡하듯, 아무리 초라한 일상이라도 생기를 되찾는 것만 같았다. 수술의 흉터 따위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훈장으로 삼을 수는 없는 노릇이 지겠만, 샤워를 할 때면 수술 자국은 자연스레 의미를 입었다. 소중한 아기를 세상밖으로 꺼냈던 숭고함 같은 걸로 말이다.
회사의 오너 내외는 내게 특별한 분이셨다. 인간적이고 따뜻한 회사, 나를 존중해 준다고 생각했다. 5년 전 카페를 폐업하고, 다시 시작한 직작생활에 쉽지 않았기에 연봉은 낮았지만 마음이 편했다.
실질적인 오너는 직함이 전무였고, 사업자 상의 대표자는 전무의 아내였다. 그녀는 자금관리를 맡고 있었다.
가족회사인 만큼 경영에 참여도가 높았다. 자금 집행이나 여러 가지를 실질적으로 최종 승인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나는 그녀와 자주 긴밀하게 소통해야 했다. 그녀는 사회경험이 전무했고, 유일하게 해 본 돈벌이라고는 조카들을 돌봐준 것뿐이라고 했다. 처녀 때 회사에 취업을 하기 싫어 도망 다니다가 선을 봐서 결혼을 했고, 엘리베이터 엔지니어였던 남편이 시간이 흘러 회사를 차리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회사의 대표가 되었다고 했다.
많이 도와달라며 작은 덧니를 드러내며 꾸밈없이 웃었다. 그녀는 그저 자신은 뒤에서 편히 일할 수 있도록 서포트 해주는 듯한 존재인 양 행동했다. 돈이 나가는 부분에선 꼼꼼하고 가끔 냉정해 보였지만, 분명 여느 오너와는 다른 순수함 같은 게 있었다. 애써 자신을 포장하거나 드러내려고 하는 그런 의도가 없는 대표자였다.
벤츠를 타고 다니지만, 뿌염을 한참 미룬 희끗한 머리에 검은 똑딱 핀을 꽂고 무릎이 늘어 난 면바지를 입는,
그런 그녀가 좋았다.
오너부부는 직원들을 살뜰히 챙겼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직원이 열명 남짓이었다. 음식솜씨가 좋은 그녀는 직원들을 위해 요리하는 것이 취미였다. 소고기를 직접 갈아 만든 패티를 넣은 햄버거, 샌드위치, 쿠키뿐 아니라 한입에 넣기 힘들 정도로 재료와 정성이 가득한 김밥이나 도시락 등을 사무실로 날랐다. 집으로 직원들을 초대해 음식 솜씨를 뽐내기도 했다. 사무실엔 일주일에 한두 번 출근을 하거나, 그렇지 않은 날도 많았는데 출근을 할 때면 나뿐 아니라 딸아이를 위해 준비해 온 간식이나 작은 선물 등을 웃으며 내밀었다. 직원용 겨울 외투를 사면서 딸아이의 외투까지 신경 써 주시는 따뜻한 오너였으니, 나로서는 감사할 뿐이었다.
" 장팀장님만 있으면 저는 걱정이 없어요. 다른 직원들 다 그만둬도 팀장님만 있으면 돼요. "
대표는 좋은 게 생기면 나와 나누려 했고, 업무가 과다해 보이면 개인적으로 포상을 하기도 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사적과 공적의 경계?
주로 빌라와 관공서, 학교등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보수하던 회사는 과거, 대기업 엘리베이터 영업경력이 있던 이사님이 영업 능력을 펼치면서 급속도로 성장해 나갔다. 대규모의 지식산업센터등의 계약이 줄지어 들어 오고, 직원도 점점 늘었다. 엔지니어 출신의 대표님 내외는 실질적인 경영이나 관리에 대한 부분에 대한 이해가 낮았고 자연스레 내가 실질적인 관리 전반의 업무를 관리하게 되었다.
왜 그렇게까지 일을 하는지, 타 부서에서 이해 안 간다는 핀잔도 자주 들었지만, 직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최소한의 인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다. 챗GPT를 활용하여 데이터를 자동화하여 효율적인 업무시스템을 만들고, 무엇이든 회사의 입장에서 생각했다. 회사가 직접적으로 내게 요구를 했다가 보다 자발적인 과제가 되었다. 무엇 하나도 나를 거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문제는 초창기부터 함께 일하던 직원이 그만두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파트타이머였지만, 워낙 손발을 잘 맞추고 스마트한 친구였다. 회사가 성장하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일을 했으니 가랑비에 옷이 젖듯, 우리는 충분히 모든 업무가 커버가 될 만큼 배테랑이 되어 있었다. 그녀가 그만두는 것은 너무 아쉬웠지만, 새로운 직원이 온다 해도 파트타이머로 일했던 그녀보다 더 많은 시간을 근무하니 그녀만큼은 아니더라도 인수인계만 잘한다면, 시간이 해결해 줄 거로 생각했다.
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녀의 후임으로 온 그녀는 왜 이렇게 인수인계를 길게 받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시작으로 업무가 쉽다는 둥, 자신만만해했다. 그런데, 막상 인수인계 기간이 끝나고 전임자가 퇴사하자 똑같은 실수를 매번 반복하며 매일 처음 있는 일일 것처럼 행동했다. 하필 바쁜 시즌이었다. 그녀의 업무 외에도 다른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고, 신규 현장들도 줄줄이 대기하고 있었기에 그녀의 업무를 살피고 도우며 그녀가 하는 어이없는 실수들을 수습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야만 했다. 저녁이 되면 녹초가 되었다.
그녀는 2달여 만에 크고 작은 사고를 거듭하다가 개인적인 사유라며 퇴사했다. 그녀가 퇴사한 이후, 끌어당김의 법칙은 그녀와 비슷한 에너지를 가진 그녀들이 줄줄이 데려왔다. 모든 업무를 직접 진행하면서 가르치다가 하나하나 넘기며 가슴이 답답해졌다. 회사에서는 파트타이머가 하던 일이었으니 인건비를 아끼려 했지만, 나는 사람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끝내 파트타이머로 대우받았던 그녀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엉키곤 했다.
그런 시간들이 7개월여간 이어졌다. 점점 무기력해졌다. 몸은 여기저기 쑤시고 아팠다. 감정조절도 되지 않았다. 회사에만 가면 몸이 후끈거리고 열이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감정을 쏟아부을 수도 없었다. 잦은 설사와 소화불량으로 살이 빠졌다. 피로와 무기력, 에너지 고갈로 더는 회사를 다닐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급기야 내과, 가정의학과, 신경정신과까지 오가며 검사, 치료, 상담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두 손을 들고 말았다.
" 저 이러다 쓰러져 죽을 것 같아요."
그간 내가 호소하듯 퇴사를 결심을 할 때마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퇴사를 만류하던 대표도 내 상태가 심각해 보였는지 말했다.
" 팀장님 푹 쉬시고, 언제든 이곳은 열려 있다는 것만 기억해 주세요"
그 말이 저주처럼 들렸다. 몸 회복하면 다시 와서 죽도록 일해 달라는 말로.
다행히 후임자가 괜찮은 사람으로 채용이 되었다. 문득문득 나의 손때가 지워지는 것 같은 허무함도 잠시들었지만, 해방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오르락내리락하던 감정의 물결도 신기하게 잦아들었다. 하지만 약해진 체력은 생각한 것보다 극심했다. 잠을 충분히 자도 얼마 안 가 에너지가 방전되어 기운을 차릴 수가 없었다. 풀로 충전한 스마트폰 배터리가 2시간도 안되어 방전되는 것이다.
두려울 만큼 몸이 이상했다. 쉬어도 나아지질 않았다. 샤워를 마치고 화장대 앞에 앉아 습관적으로 해오던 유방암 자가 검진을 하다가 수술한 부위의 반대편에 유방에 작은 멍울이 만져졌다.
맙소사!
그럼 그렇지,
몸이 심상치 않더라니!
극심한 피로와 설사 그리고 체중감소, 게다가 오른쪽 멍울, 분명 암이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째가 되니 그간 몸이 무얼 말해주고 있었는지, 너무 늦게 알아차린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음날, 두려움을 안고 가장 빠른 검사를 해준다는 병원에 방문했다. 엑스레이 검사에서는 특별한 암소견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바로 초음파로 넘어갔다. 수술받았던 유방엔 재발은 없었다. 문제는 반대편 유방이었다. 초음파를 대자마자 시커먼 종양이 보였다.
"아흑"
의사도 놀라는 눈치였다. 엑스레이 결과와 초음파 상, 종양의 크기와 단단함을 측정해 보고는 아직 단단하지 않은 걸 보아, 양성 종양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모양도 이쁘다고. ㅜ
"선생님 조직검사 바로 해주세요."
그렇게 세 번째 암진단을 받았다.
인생이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할 힘이 있고, 극복하지 못하면 계속 같은 현실을 반복해야 한다고, 인간관계도 일도 돈도 다 그랬다. 결국 문제의 근원은 나 자신에게 있었다. 내가 그 중심에서 상황을 간파해야만 해결책이 보였다.
나는 주 3번 이상은 걷거나 달리기 위해 노력했고, 명상을 하며 잠들었다. 술 담배를 즐기거나 자극적인 음식을 즐기지도 않았다. 가정엔 불화도 없었고, 오히려 집에선 즐거울 일이 많았다. 결국 나는 회사에서 최선을 다해 일을 하다가 암에 걸린 것이다.
아이고, 이렇게 억울할 수가!
아무리 암이 흔한다고 해도 걸리 않는 사람이 훨씬 많다. 누군가는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을 암수술 세 번이나 받는다는 것은 분명 암에 걸릴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 내 안에 있는 것이다. 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 세 번째 암선고는 나로 하여금 미지의 공포와 무력함으로 한없이 나약하게 만들었다.
회사는 내게 어떤 의미였을까?
무엇이 문제였을까?
지난 5월, 세 번째 암진단을 받기 2달 전, 그때도 나는 이 회사를 벗어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퇴직의사를 밝힌 세 번째 시도였다. 생각해 보면 처음 이 회사에서 내가 받은 급여는 세전 210만 원 식대포함 -> 이 급여는 그동안 내가 받은 최저 급여였다. 나이가 있어 취업도 쉽지 않고, 집에서 가까웠으며, 30분 일찍 퇴근하여 무언가를 배우며 다른 일을 구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5년 차, 퇴사 직전 연봉은 410 식대지원 유류비 지원 지급 등으로 훨씬 조건이 좋아졌다.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할 때마다 월급을 인상해 준 덕분이었다. 물론 회사 성장률에 감안하여 매년 전 직원 연봉인상분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노력한 것에 비하면 글쎄다, 결론은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하지 않았으면?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월급이 많든 적든 열심히 최선을 다해 몸이 부서져라 일을 했다.
도. 대. 체. 왜?
나도 나를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런 걸 업보라고 해야 하나? 이게 업보라면 전생에 노예였거나 공주라서 노예들을 산채로 태워 죽였을 지도.
나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알고 싶었다. 심리 상담센터에서 비용을 지불하고 검사를 했다.
MMPI2 / TCI 검사를 받았다.
� MMPI-2 (Minnesota Multiphasic Personality Inventory-2)
• 가장 널리 사용되는 성격 및 정신건강 평가 검사
• 개인의 정서적 문제, 사고방식, 행동 패턴을 파악하는 데 활용
• 임상 장면에서 우울, 불안, 스트레스, 성격 특성 등을 폭넓게 평가
� TCI (Temperament and Character Inventory)
• 인간의 성격을 **기질(타고난 부분)**과 **성격(경험으로 형성된 부분)**으로 나누어 평가
• 기질 4가지(예: 자극추구, 위험회피 등) + 성격 3가지 차원으로 구성
• 개인의 성향, 동기, 대인관계 스타일을 이해하는 데 도움
결과는 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삶을 지배해 온 커다란 시스템이.
"혜진 님은 어린 시절, '한계'를 배운 적이 없어 보여요. 어린 시절, 엄마가 아이에게 아이가 할 수 있는 한계에 대해서 설정해 주고 알려주어야 하는데, 그걸 배우지 못한 게 가장 큰 원인으로 보여요. 그래서 자기의 '한계'를 벗어나 번아웃이 올 때까지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거예요. 완벽주의 기질도 높고, TCI에서는 자기 초월성이 월등히 높게 나왔어요.
게다가 사람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서 사람을 실제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으로 인식하기도 하고, 스스로도 그렇게 되려고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거예요. 특히 타인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 장점과 단점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연습이 필요해요. 회사에 대해서두요."
그랬다. 한계, 나는 한계를 배운 적이 없다. 어린 시절, 나는 엄마에게 인정받기 위해 살았다. 엄마를 위해 고추를 따고, 엄마를 위해 밥을 하고, 설거지와 청소를 했다. 칭찬도 듣지 못했고, 오히려 미처 하지 못한 집안일로 혼이 나기 일쑤였다. 그래서 조급함이 만들어 놓은 과도한 완벽주의 기질이 생겨 난 건 아닐까.
그때, 엄마를 돕고자 하는 아이의 마음에 " 고맙다. 잘 했다." 칭찬해주고, "이건 네가 해야 할 일이 아니야. 엄마 일이야. "라고 잘 알려주었다면, 뜨거운 태양아래서 꾹꾹 참아가면 고추를 따고, 엄마에게 보여주기 위해 참고 또 참고 참으며, 하나 하나 점검하며 나를 다그치는 습관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습관들이 과다한 오너십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퇴사를 하고 나니 다시 보였다. 회사가, 오너들이, 그리고 내가.
그랬다. 그들은 하나도 특별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나 역시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