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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진 Jul 10. 2023

책이 출간되고 나서야 작가가 되고 싶어졌다.


한 존재가 삶 속으로 찾아들었을 때, 생명의 탄생과 함께 모든 것이 변했던 듯이 내 이름이 선명하게 박힌 책 한 권이 세상을 흔들어 놓았다. 선명했던 두려움과 기쁨사이에서의 혼란,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고, 여러 날이 흘러도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 했다. 누군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작가'라는 호칭이 묵직하게 나를 눌렀다.


출간 이후,  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작가라고 불렀다. 어쩐지 맞지 않은 옷을 걸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주변 작가님들을 보면 대부분 읽고 쓰는 삶을 살고 계신 것 같은데, 나는 글쓰기에 대한 열정도, 독서에 대한 열정도 많지 않았다. 나에게는 누구나 생각하는 '작가'라는 모습도 그런 루틴도 없었다.  그저 갑자기 글이 쓰고 싶은 마음에 불타올랐다. 우여골절 끝에 좋은 출판사를 만나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책이 나오고, 저절로 두 번째 책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 사이 갑상선 암치료를 받았다. 아픔 속에서도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INFP, 나는 계획적인 J와는 완전히 반대의 성향이다. 직관적이며 생각과 감정에 집중하지만, 의문을 품고, 육감을 발달시키기를 원한다.


갑상선암 수술 후, 방사성 2차 치료를 남겨두고 있었다.  그런데 일전에 유방암 치료를 받았을 때의 방사선을 수술 부위에 조사하는 치료를 생각했다가 큰코다치고 말았다. 이번 치료는 내가 받았던 치료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었다. '방사성 요오드' 알약을 삼키는 일이었다. 격리 병실에서 고용량 방사성 알약을 삼키고 온몸으로 방사능을 소화해야 했다.


'위장에 고용량의 방사능을 넣는다고?'


 그 사실을 입원 전 검사를 받으며 알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 두려워할 이유도 없었다.


수술 후 남아있는 암세포를 사멸하기 위해서라도 그 무시무시한 것을 위장에 넣는다니,  섬찟했다. 암세포만이 아니라 몸의 다른 부분이 분명 커다란 타격을 입을 것이다. 암세포가 얼마나 무시무시하면ㅠㅠ 암을 두 번이나 겪고 있으면서 '암'을 새삼 느꼈다. 치료에 대해서 미리 알았다 하더라도 별반 다를 건 없겠지만, 이 정도로 무신경할 줄은 몰랐다.


체력이 바닥났다. 경험해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갑상선 전절제 후, 씬지록신으로 호르몬을 대체하며 살아야 하는 마당에 그 마저도 약 한 달간의 기간 동안은 허용되지 않았다.  그런 상태로 일상은 똑같이 지속되었다.  몸의 무게가 10톤은 나가는 것 같았다.  정오를 살면서 한밤중 같은 느낌이었다.  간수치와 콜레스테롤 수치가 급격히 올라, 처음으로 내 피에, 수치라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Ron Lach 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8258882/


자주 꿈을 꾸었다. 꿈이 꿈인지, 현실이 꿈인지도 모를 상태였다. 다른 세상의 존재들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어디론가 나를 데리고 가려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엘리베이터를 타고 끝도 없이 내려가고 있었다. 문득 집에 두고 온 물건이 떠올랐다. 지인에게 '지금 급하게 집에 다녀와야 한다'라고 양해를 구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려는 찰나 지인과 눈이 마주쳤다. 지인들이 귀신으로 변해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다시 눈을 감으면,  파티에 있다. 중학교 동창 모임이었다.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며 한참을 즐겼다. 어떤 무리들이 나를 에워쌌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자기들끼리 웃다가 나를 보며 음흉한 미소를 흘리며 물었다.


"넌 병원에서 왔다며?"

"병원에서 온 게 아니라 퇴원했는데"


고개를 돌렸다. 동창들이 사라졌다. 검은색 옷을 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 꿈속에서는 무섭지 않았는데, 생각할수록 등골이 서늘했다.  

 

어느 날은 자려고 누웠다. 어디선가 요란한 소리에 흠칫 놀라 깨어났다. 내 코에서 나는 소리였다. 뇌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놀라서 깨어났다가 잠들기를 반복했다. 그 와중에 또렷한 의식하나를 밤새도록 경험했다. 한숨도 못 잔 것 같았는데 신기하게도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어떤 날은 기분이 몹시 가라앉았다.  심술이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누군가를 마구 괴롭히고 싶었다. 극도의 피로감과 싸우며 돈을 벌기 위해 출근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펐다. 어떤 날은 그와는 정반대였다.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 너무도 감사해서 가슴이 뜨거웠다. 내게 일상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과 삶에 대해, 나라는 존재에 대해 경외심을 가졌다.



 

이제는 그 사실을 잊을 만큼 회복이 됐지만, 암환자라는 정체성은 생활에 변화를 몰고 왔다. 전보다 훨씬 더 시시콜콜하게 내 입에 들어가는 음식들에 대해서 시시비비 했다. 아침에 일어나 달리기를 하고, 맨발로 흙길을 거닐었다. 삶을 더 충실하게 살고 싶어서 슬퍼졌다가 환희에 차올랐다.

 

어느 사이, 나는  몹시도 작가가 되고 싶어졌다. 아기가 태어난 순간, 엄마가 됐다. 엄마 역할을 하기엔 너무도 서툴고 부족했지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던 것처럼  출간은 나에게 작가라는 정체성을 가져다 주었다.

Ron Lach 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8258882/

그것은 다독을 하거나, 꾸준히 글을 쓰지 않아도 삶의 지축을 흔드는 일이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생각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때로는 꿈속에서도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면서도 되뇌었다.


악몽에 시달리면서도 이야기들을 연결했다.


어설픈 문장들은 곧잘 허공에 흩어 사라졌지만,


점점 알게 되었다.


나는 정말이지, 책이 출간되고 나서야, 작가가 되고 싶어 졌다는 사실을.









사진출처 : Vlada Karpovich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405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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